주연과 조연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

by 노멀휴먼

나는 어릴 적부터 주인공보다는 조연의 자리에 더 끌렸다.


누구보다 주목받는 자리보다,

조금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주인공을 꿈꾼다.

주인공이 되면 유명해지고, 부유해지며, 명예도 얻는다.

게다가 후세에도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다.


역사책을 봐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우리는 ‘태·종·태·세·문·단·세’ 같은 이상한 단어를 외우며

왕들의 이름을 줄줄이 암기했다.

역사는 언제나 주연, 즉 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묵묵히 조연의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연이 없었다면,

그 유명한 주인공들은 역사책 한 페이지조차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역사 속 영웅 유방과 항우를 떠올려 보자.

두 사람은 한 나라를 이끈 주연이었지만,

그들 곁에는 수많은 조연들이 있었다.

결국, 조연들의 마음을 얻은 유방이 황제가 되었고,

질투와 시기에 빠진 항우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천하를 거머쥔 주연의 운명조차

조연들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결정된 셈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을 보게 된다.

그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는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주연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라고.


주인공이 되어야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학예회 때 나는 연극을 했다.

주인공 배역을 두고 경쟁이 치열했지만,

정작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건 악당 역할을 맡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연기할까를 고민하며

무대 위에서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반면, 주인공으로 뽑힌 아이는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잊었고,

주인공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연습을 소홀히 했다.

그 와중에도 조연 역할을 맡은 그 친구는

자신만의 색깔로 배역을 완성하며 빛났다.

결국 그는 학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생이 되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를 꿈꾸지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리고 리더는 무거운 책임과 부담을 짊어진다.


반면, 능력 있는 조연은 한 발 물러서

넓은 시야로 상황을 파악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치 바둑판 위에서 돌을 두는 주연이 아닌

훈수를 두는 조연처럼 말이다.


주연으로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것도 좋다.

그러나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유롭게 빛나는 삶 또한 충분히 의미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주연이 빛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연이 필요하다.


위대한 주인공은

능력 있는 조연이 함께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서 빛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만의 빛을 발하며,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


조연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멋지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결국 인생의 의미란,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삶의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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