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니... 어디서 누군가 이별하고 있나 보다. 가엾다... 가엾어...”
철이 바뀌어 당연히 떨어지는 낙엽도 나의 엄마에겐 누군가의 삶이자 낭만이었다.
책임감 없는 내 아버지라는 사람과의 장난 같은 하룻밤도 엄마에겐 로맨틱한 청춘으로 기억되었듯이.
충동적인 선택으로 빚어진 나라는 결실도 엄마에겐 ‘백설’이라는 어여쁜 이름을 지어줄 만큼 소중한 선물이 되었듯이.
나의 엄만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도 엄만... 흰 눈이 펑펑 오면 후라이드가 그렇게 먹고 싶어. 술도 잘 못하면서 맥주가 막 생각나고. 눈 오는 날 허름한 치킨 집에 앉아 그렇게 닭 한 마리 뜯고 있음, 네 아버지가 찾아올 것만 같아
엄마가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한 사람이라는 것이지, 좋은 엄마가 아니었단 뜻은 절대 아니다.
나의 엄마는 오로지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엄마였다.
꼭 문어 엄마처럼.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저출산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저출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실행되기 전이었던 거겠지만.
아무튼 다시 말하면, 당시엔 미혼모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나라에서 큰돈을 빌려주거나, 분유 값을 준다거나, 취직을 시켜준다는 등의 혜택 따윈 없었다.
나의 엄마는 홀로 나를 키워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했다.
미성년자 딱지를 떼자마자 집을 나왔다던 엄마는 주방 일에 꽤 솜씨가 있어, 주로 식당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낮에는 밥집에서, 밤에는 치킨 집에서 일을 한 것이 엄마의 20대라고 했다.
내가 태어난 뒤, 엄마의 3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낮에는 밥집에서, 밤에는 치킨 집에서 나를 업고 일을 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엄마는 내게 컴퓨터는 못 사줬을지언정, 절대 내 밥을 굶기거나 나를 꾀죄죄한 차림으로 밖에 내보내는 법이 없었다.
내 옷은 비싼 메이커는 아니었어도 늘 섬유 유연제 향이 폴폴 기분 좋게 올라오는 채로 곱게 다려져 있었다. 하루 세 번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고 정돈하는 것은, 엄마가 내게 유일하게 꼭 지켜달라며 약속을 강요한 일이었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기 전에 차려둔 내 아침식사에는 못해도 계란프라이 한 접시는 올려져 있었다. 급식비는 절대 밀리는 법이 없었고, 저녁은 늘 엄마가 일하는 백반 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먹곤 했다.
“하이고~ 야가 백씨 아줌마네 딸이 맞는가? 볼살이 통통하니 피부도 희고 아주 부잣집 따님 같으네~!"
식당 한구석에서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날 보고 주로 하는 말이었다.
반면, 제때 끼니를 해결할 시간도 없이 일하던 엄마는 종잇장처럼 볼품없이 말랐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그을린 피부색이 엄마를 더 빈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게 했다.
엄마가 풍기는 가난의 향기는 그 어떤 비누, 섬유 유연제 향으로도 덮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하나도 닮지 않은 공주 같은 딸이라 식당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말해도,
엄마는 바보처럼 씩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렇죠? 우리 백설이 예쁘죠? 나랑 안 닮아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엄마는 예쁜 것은 모두 내게, 맛있는 것도 모두 내게 주었다.
내가 무럭무럭 자랄수록, 엄마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클수록 자기가 쓸 것을 아끼고 또 아꼈다.
엄만, 남들에게 있는 것이 내겐 없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전부였고, 엄마는 오로지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엄마가 무적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한 번도 내게 지친 기색을 보이거나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 후, 학교에서 거의 놀다시피 자습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아주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이미 숨을 거둔 엄마가 누워있는 한 병원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감기 몸살 한 번 안 치른 우리 엄마가 죽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엄마가 혹시 내게 숨긴 질병이 있었을까?
엄마는 날 위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목숨을 앗아간 사유는 너무도 하찮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영양실조로 쓰러지시면서 머리를 크게 부딪히셨어요. 결정적 사인은 뇌출혈이고요. 근데 얼마나 오래 잘 못 드셨는지 심장도 이미 제 기능을 못한지 오래였던 것 같네요.”
의사가 보기 좋게 볼살이 오른 날 조금 의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6.25 전쟁 통도 아니고 요즘 같은 세상에 영양실조라니...”
의사는 자리를 뜨며 나지막하게 누군갈 탓하듯 허공에 대고 말했다.
엄마의 유일한 가족은 나였으니, 아마 날 탓하는 말이지 않았을까.
엄마는 못 먹어서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잘 챙겨 먹기만 했어도 엄만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엄마의 몸은 기우뚱 넘어지며 그나마도 제일 무거운 머리부터 추락했을 것이다.
그 결과 엄마의 삶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이 파도처럼 한바탕 날 휩쓸고 가자, 타닥타닥 맨발에 박힌 모래알처럼 날 따갑게 깨운 것은 분노였다.
엄마는 자신을 돌봤어야 했다.
딸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은 분명 엄마의 잘못이었다.
힘이 들면 힘이 들다 말을 하고, 잘 먹으며 쉬었어야 했다.
가진 돈으론 살 수 없는 것은 안 된다 내게 말을 해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줄줄이 외며 그리 천진난만하게 엄마를 옥죄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우리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맛있는 백설기가 두 덩이 있으면 나 하나, 엄마 하나 먹어도 될 것을 굳이 내게 두 덩이를 다 먹여야 자신의 배가 부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식을 위한 사랑이 넘쳐흘러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살을 깎아 내는 것이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인 사람.
엄마는 자기 마음에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남겨뒀어야 할 사랑을 내게 다 써 버려서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남겨뒀어야지... 아주 조금이라도.
엄마가 떠나고 남긴 것은 엄마의 희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통장 하나뿐이었다.
엄마 입에 들어가야 했을 밥 한술, 물 한 모금이 차곡차곡 입금되어 있었다.
내 앞으로 남겨진 통장 이름은 ‘백설이 대학 자금’이었다.
그마저도 딱 2년제 전문대를 겨우 다닐 수 있는 비용이었지만.
난 엄마의 죽음이 나를 위한 희생 때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엄마를 문어 엄마로 만든 것이었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죄책감으로 한동안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깊은 바닷속에 갇혀 나올 수 없었다.
꽤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