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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Oct 11. 2024

5화. 디저트가 달지 않아 맛있다는 사람도 다 있구나

내겐 1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나이는 나와 동갑. 이름은 이영웅. 

나는 이 사람의 이름에 동그라미가 많이 들어간 것이 좋았다. 

다른 이유 없이, 어감도 좋았고 글자도 둥글둥글하니 글로 써서 보면 더 예뻐 보였다. 

내 이름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동그라미가 영웅이에겐 넘쳐났다.

나는 영웅이를 레스토랑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그날의 예약 명단을 확인하던 도중, 한 이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총 4명, 오후 여섯시. 예약자명, 이영웅.”
나는 괜히 그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었다.


영웅이 지인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 난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엄청난 미남은 아니었지만 이름처럼 아주 둥글둥글한 인상에 다정한 미소가 돋보이는 말끔한 사람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아주 비싼 정장을 입었지만 절대 브랜드의 명이 나타나지 않는 깔끔한 스타일, 

담배를 멀리하는지 아주 연하게 풍겨오는 스킨 향까지 내 취향과 비슷했다.

“이영웅으로 예약했는데요.”

“네,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보았다. 

티 나지 않으려 애는 썼지만 그의 시선은 나를 본 순간부터 줄곧 나를 향해 있었다. 

다른 직원이 물을 따르고 음식을 서빙할 때에도 그의 수줍은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난 특히 남자들이 날 힐끔거리는데 조금은 익숙한 편이다. 

시선 하나하나에 반응하면 피곤한 일에 연루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모른 척하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힐끔거리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훔쳐보기만 할 뿐, 내게 먼저 다가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더 재미난 일은 일어나주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연애 경험이 또래보다 드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생각보다 편리한 것이었다. 

이제껏 날 힐끔대던 모든 남자가 내게 먼저 쉽게 다가왔다면 난 정말 피곤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선택권은 보통 내게 있었다. 

그리고 난 영웅이를 처음 만난 날, 그에게 다가가길 선택했다. 

“오늘 드신 와인까지 총 56만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일시불로 도와드릴까요?”
나는 영웅에게 공손하게 카드를 받고, 결제 후 내 개인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카드와 포개어 함께 내밀었다. 혹시 유부남이거나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저 레스토랑 영업이었다 정도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문자가 왔기 때문이었다.

[어제 명함 받은 이영웅입니다. 언제 시간 되시면 커피라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문자로 보아도 참 좋은 이름이었다. 그게 나와 영웅이의 시작이었다. 




영웅이는 여러모로 완벽한 남자였다. 

엄청난 재벌 집안은 아니었지만, 내 예상대로 큰 부족함 없이 자란 것이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찾는데 어렵지는 않으셨죠?”

영웅이가 나와 첫 데이트를 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과 멀지 않은 도심 속 호텔이었다. 지하철역에 내리면서부터 어디로 가라고 이정표까지 붙여둔 이 호텔이 찾기 어려웠을 리가. 

남들은 벌써 아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난 호텔이라는 거창한 곳을 고작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침대보다 푹신한 소파, 은은하게 맴도는 라일락 향기, 주변을 감싸는 클래식 음악 소리에 거의 취해있을 때 영웅이 뭘 마시겠냐고 내게 물었다.
“커피 마실게요.”

개인적으론 생과일 오렌지주스가 더 맛있을 것 같았지만, 첫 만남에 웬만한 밥값에 버금가는 주스를 고르긴 마음이 불편했다. 

그나마 아무것도 섞지 않은 커피가 가장 저렴해서 한 선택이었다.
“더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여기 티라미수도 달지 않고 맛있는데.”

영웅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디저트가 달지 않아 맛있다는 사람도 다 있구나, 생각했었다. 

어쩌다 한 번 먹는 디저트는 내겐 꼭 달아야 했다. 

디저트는 먹어야 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었으니까. 

아마 그때 확신했을 것이다. 

영웅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임을.




아버지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도 없었던 나와 달리, 영웅이는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했던 것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였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하고 싶은 공부를 원 없이 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곧 가족이 운영하는 유통 회사를 이어 받을 예정이라 했다. 

나는 엄마가 남긴 유산으로 겨우 전문대를 들어갔었다. 

당시의 나는,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나의 진로에 대해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부도 그저 그런 편이었던 나는 그냥 수능 점수에 맞춰 생각도 없던 2년제 대학 미용과에 들어갔다. 

미용엔 영 소질이 없던 난 그마저도 얼마 안 가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를 버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아쿠아리움 청소 일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는 온갖 아르바이트로 나 한 몸 먹여 살리기 바빴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엄마의 20대와 상당히 비슷했달까? 

친구도, 남자도 최소한으로만 만났다. 

인간관계가 늘어날수록,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과 여유가 줄어간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일하다 정착하게 된 일터가 바로 지금 내가 매니저로 일하는 레스토랑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월세 방도 있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기도 할 형편이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겐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영웅에게 다가갔는가? 

매우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만, 나는 결혼이 싫은 것이지 연애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같이 하기가 두려운 것이지, 기분 좋은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늘 혼자가 좋다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명절이 되면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특히,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런 날이면 아이처럼 몸을 바닥에 웅크리고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혼자인 것이 서러워서 목 놓아 울어놓고는,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인가. 

하지만 내게 있어 결혼 못지않게 중요한 연애를 아무나하고 할 순 없지 않은가? 

하필 영웅에게 다가간 이유는 또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가 레스토랑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가 나와는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영웅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세계의 여성이라면, 

보통 근사한 곳의 예약을 받는 쪽이 아니라 하는 편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나는 영웅이 나를 결혼할 대상으로 보지 않으리라 확신하여 그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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