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Yeo Oct 11. 2024

4화.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이유

“매니저님! 저 술 한잔 사주심 안돼요?”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설거지까지 끝내느라 퇴근이 늦어진 유혁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유혁이는 붙임성도 좋고 싹싹한 편이라 나도 가깝게 생각하는 직원이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레스토랑이라는 직장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직원 전체 회식이 아니라 단둘이 술이라. 

것도 이 야심한 시간에.

“저랑 매니저님 둘 다 내일 오프인데.”

그게 뭐? 하는 표정으로 내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유혁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오늘 생일이시잖아요.”

잊을 뻔했다. 

오늘 내 생일이었지. 

씩 웃는 유혁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다소 꿀꿀한 오늘 같은 날, 홀로 집으로 가는 것보다 과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을지.
“날 새겠어요, 매니저님! 가요~ 네? 가시는 거죠?”
유혁의 재촉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근데... 내 생일은 어떻게 알았어요?” 

한 선술집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스친 생각이다. 

유혁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제... 지점장님이랑 말씀 나누시는 걸 들었어요.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우리 레스토랑 지점장은 목소리가 아주 크기 때문에 납득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저께 지점장과 나는 사무실에서 결코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 생일, 그러니까 오늘을 기점으로 나의 월급 중 10%는 ‘미래생명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반환된다. 

쉽게 말하면 나라에 내는 세금이 10%가량 증가하는 것인데 이유는 단 하나다. 

내 나이 서른이 되기까지 내가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새 생명을 탄생시키지 않았다는 것. 

나는 이 나라에 살며 여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셈이다. 

“여기랑, 여기에 사인하면 돼. 어이구... 뭐 하느라 여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았어...”
무려 생명 다섯을 탄생시킨 지점장이 계약서를 내밀며 나를 꾸짖듯 말했다.
“그러게요.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난 사실 전혀 죄송하지 않았지만, 지점장님을 상대로 싸워봤자 내게 바뀌는 것은 없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바라는 대답을 해 주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지점장을 상대로 말다툼을 해 봤자 하루아침에 내가 챙길 월급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앞으로 내게 닥칠 불이익이 점점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 근데 걱정 마세요. 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매니저님 나이.”
유혁이 맥주잔을 거머쥐며 날 안심시키듯 말했다. 

유혁이 내 나이를 모른 척해 준다는 것은, 내 나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주면 고맙겠어요. 레스토랑 직원들이 다 알게 되면, 나 너무 미움받지 않겠어요?”
나도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들어 유혁과 잔을 부딪쳤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묘하게 죄인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일단 전... 매니저님 나쁘게 생각 안 해요. 어떻게 살다 보니... 서른이 된 것뿐이잖아요?”

유혁이 맥주를 입에 털어 넣는 내게 위로하듯 말했다.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이 먹는 것을 축하하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은 사람은 생일날 미움받거나 위로받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저로서 이해는 좀 안 가지만요. 매니저님처럼 예쁜 여자가 아직 싱글이라니.”
“네?”
“에이. 다 아시면서요 뭘. 매니저님 예쁘잖아요. 우리 레스토랑 직원들, 유부남 포함해서 한 번씩은 다 돌아가며 매니저님 짝사랑했을걸요?”

유혁의 말에 난 픽 웃으며 앞에 놓인 안주 한 점을 집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유혁의 말에 침묵으로 대답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동의의 의미를 내비치고 말았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유독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일이 잦다는 것은 이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이 모든 사람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님을 나는 중학생 때 처음 알았다. 

백옥같이 희고 고운 피부, 그 덕에 더욱 검어 보이는 내 머리카락, 늘 좋은 향기를 풍기는 나는 주로 반에서 ‘예쁜 애’로 불렸다. 

이름 덕에 아예 ‘백설 공주’라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로선 당연히 싫지 않은 별명이었다. 

초등학교 때처럼 ‘없는 게 많은 애’로 분류되는 것보다는 백만 배쯤 더 나았으니까. 

“근데 왜 나한테 아무도 고백 안 했을까요? 지금쯤 아이가 한 서넛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내 앞으로 안주를 밀어주는 유혁의 움직임을 살피며 물었다.
“매니저님! 진짜 몰라서 묻는 거 아니죠? 매니저님은 그냥 예쁜 게 아니라, 개 예뻐요. 남자들은 적당히 예뻐야 넘볼 틈이라도 엿본다고요. 매니저님이랑 같은 직종에 있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넘볼 꿈이나 꿔 봤겠어요?”
“그게 뭐예요. 바보같이.”

유혁의 말에 나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미소를 내보였다. 

이 친구가 날 이렇게까지 비행기 태우는 이유가 슬슬 궁금해지려는 참에, 

“근데, 오늘 제게 용기가 생긴 거예요. 매니저님께 고백할 용기.”
유혁이 내게 얼굴을 바짝 내밀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오늘의 유혁은 도무지 예측 불가했다. 

레스토랑에서야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이니 통제가 쉬운 친구 거니, 했는데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오늘 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갔어야 했다. 

이 어린애와 이런 얘길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전 그제까지 매니저님이 올해 벌써 서른이신걸 몰랐잖아요? 이유가 뭐가 됐던 매니저님은 지금 여러모로 조금, 아니 많이 급하신 상황인 거고. 그렇죠?"

유혁의 말은 질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혁의 눈에 난, 나의 처절한 바람과 달리 결혼을 ‘못한,’ 출산을 하지 ‘못한’ 여자로 비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겠지.

“제가 올해 스물다섯인데, 딱히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그만큼 제가 매니저님을 오래 좋아했고... 저랑 만약에 올해 안에 결혼만 하셔도 일단 추가 세금은 어떻게 막을 수 있잖아요? 제가 또 20대 중반이니까 청약 당첨 율도 훨씬 올라갈 거고.” 

느물거리는 웃음을 내보이며 맥주잔을 또 감아쥐는 유혁을 보며 난 생각했다. 

내가 세금을 10%나 더 내면서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말한다면, 유혁은 과연 내 말을 믿을까?
“생각보다 더 어리시거나 당연히 결혼 상대가 있으신 줄 알고 마음을 접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단 걸 알게 된 거죠. 어쩌면 매니저님은 나처럼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혁의 말은, 내가 이 가당치도 않은 고백에 얼씨구나 넙죽 절이라도 하며 승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듯, 유혁은 쉬지 않고 입을 나불댔다.

“아, 혹시 저희 부모님 생각이 걱정이시라면 염려 마세요. 저희 집은 여자 나이 서른 초반까지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셔서요. 아마, 우린 아기도 빨리 가질 수 있을걸요? 여기, 제 핸드폰 좀 보세요. 제 성적 유형검사 레벨 나오죠? 저 무려 레벨 10이에요! 테스트론 레벨이 일반 20대 남성에 비해 약 5%나 높다고 나와 있어요.”

몇 년 전에는 성격유형을 서로 물어대고 난리 더만. 

성적 유형검사란, 내 몸속 호르몬 수치, 혈압이나 체중 등 종합 건강 상태를 종합해 성적 욕구가 얼마나 높은지,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자주 성관계가 가능하며 얼마나 건강한 정자와 난자를 생성할 가능성이 높은지의 여부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검사를 말했다. 

테스트론 수치는 사실 섹스 드라이브와는 큰 상관이 없다던데. 

문제는 신빙성이 완전히 검증되지도 않은 이 검사 결과를 최근 결혼정보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이 많아질 정도로 사람들이 수치와 등급을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유혁은 이제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기대와 우수에 차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어떤 30대의 싱글 여자들은 이런 프러포즈를 가장한 고백을 유혁의 바람대로 매우 감사히 생각하며 승낙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실제로 은경 언니가 작년 서른여섯을 넘기기 직전, 자기보다 14살이 많은 남자에게 ‘감사하며’ 시집을 갔다. 난 은경 언니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동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것은 은경 언니가 한 선택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평범했다. 

난 오로지 날 위해 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날 위해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으며, 배우고픈 공부가 있었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고달팠다. 

나의 엄마는 나의 멋진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였다. 

가장 중요한 존재를 잃으며 얻어낸 이 삶을 아직 나는 누군가와 나눠 쓸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바뀌어 버린 이 세상은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난 서른이 되자마자 혼자라는 이유로 아무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절세미인에서 아무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눈앞의 멍청이의 뺨을 한 대 갈겨줄까, 아니면 시원하게 쌍욕을 뱉어줄까 고민하다 새로 주문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그냥 웃으며 진실을 말해 주기로 했다.

“유혁 씨 마음은 고마운데, 전 받아 줄 수 없네요. 제겐,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이전 04화 3화. 꼭 문어 엄마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