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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Oct 11. 2024

1화. 한겨울의 수족관

문어 엄마 

이렇게 추운 날이면 나는 푸른 수족관이 떠올랐다. 

대개의 사람들은 따뜻한 핫초코, 벽난로, 포근한 캐시미어 스웨터 등을 떠올리겠지만 난 달랐다. 

엄마가 죽은 그 해 겨울, 

나는 일부로라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위해 한 대형 아쿠아리움에서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이렇게 빨리 안 나와도 된다니까.”

같이 일했던 은경 언니가 늘 출근 시간보다 빨리 나오는 내게 했던 말이다. 

나보다 7살 위인 은경 언니를 그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내가 약속 시간보다 늘 일찍 나와 일하는 것을 언니는 예쁘게 봐 주곤 했다.
“멍 때리기 좋아서요.”
실제로 그랬다. 

손님이 없는 시간, 수족관이 주는 묘한 백색 소음은 이상하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곤 했다.

“그렇긴 하지? 나도 물고기가 좋아서 여기 취직했잖아. 집에 돈만 더 있었어도 계속 공부하는 건데.” 

해양생물학과로 꽤 유명한 대학에 합격했었다는 은경 언니.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비 벌기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은경 언니가 처한 상황이 나와 비슷해서였을까. 

우린 은근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잘 맞았다. 

은경 언니는 쉬는 시간에 가끔 내게 바다 생물에 대한 재미있는 특징이나 진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내겐 다 같은 물고기도, 은경 언니에겐 같은 물고기가 아닌 것 같았다. 

물고기 자체엔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은경 언니가 얘기해 준 진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약 십여 년이 지난 오늘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얘기가 딱 하나 있다. 

엄마 문어 이야기였다. 


“진짜? 6개월을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은경 언니는 더 신이 나서 말해줬었다.
“어미 문어는 새끼 문어가 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먹이를 찾으러 알을 떠나면, 성게나 불가사리 같은 다른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수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새끼 곁에 머무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엄마 문어는 자기 온몸을 이용해서 알에게 산소를 공급해. 수관으로 물을 뿜어서 이끼가 끼지 않게 물 순환도 시키고 ”

“아니, 아빠 문어는 뭐 하고?” 

“문어는... 보통 교미를 기점으로 죽음이 시작된다고 봐야 해. 수컷의 경우에도, 보통 교미 후 몇 달 이내로 죽어. 어찌 보면, 어미 문어는 새끼들이 태어나기 전까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는 거지. 새끼 문어가 부화하게 되면, 의무를 다한 어미 문어는 마침내 생명의 끈을 놓고 다른 생물에게 먹이가 되며 자연으로 돌아가. 어떤 경우엔, 죽은 어미 문어는 태어난 새끼들의 첫 번째 식량이 되기도 하고.” 

엄마 문어 이야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참으로 기가 차고 슬픈 일이었다. 

엄마 문어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았을까? 

은경 언니의 말을 담담히 듣는 내 뺨 위로 눈물이 주륵 흘렀었다. 

놀란 은경 언니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었지. 

“너 왜 그래? 왜 울어 설아!”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나는 은경 언니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어미 문어가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고.
 리고 죽은 우리 엄마가 꼭 문어 엄마와 같아서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고.




“매니저님, 오늘 엄청 춥죠?”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날 반갑게 반겨주는 사람은 이미 몇 시간 전에 출근했을 막내 조리사, 유혁이다. 

벌써 양파를 한 바가지 깠는지, 눈 주위가 빨갛다. 

“그러게. 이렇게 추워도 거리에 사람만 많더라고요. 오늘 우리 각오해야 돼.” 

씩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유혁을 보며 새삼 생각했다. 

벌써 이 레스토랑에서 일한 지도 6년이 되어 간다. 

몇 년 전, 오르는 방세를 내기 위해 홀 서빙 투잡으로 시작했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4대 보험까지 책임지는 든든한 직장이 되었다. 

현재 통장의 전 재산 일억 이천만 원을 모으게 해준 고마운 직장이기도 하다. 

아, 지금 살고 있는 집 보증금까지 합치면 일억 사천만 원. 

특별히 가슴 뛰는 일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사무치는 일도 지금의 내겐 없다. 

얼마 안 되는 재산에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난 오늘까지 오기 위해 죽을힘을 다 해야 했다. 쉽게 생을 저버리지 않으려 온 힘을 바쳐 이 넓고 깊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헤엄쳐왔다. 

나 ‘백설’이 지나온 다소 시린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의 평화로움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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