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았다. 드라마 보단 영화를 즐기는 내가 오랜만에 끝까지 다 본 국내 드라마였다. 공감할 수 있는 장면, 대사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당연 ‘오애순’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마음이 갔다. 누가 보아도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애순이가 장녀라는 점, 그리고 그녀가 원래는 새침 떠는 문학소녀였다는 점이 그랬다.
애순이만큼 시, 소설 등 문학을 즐기는 나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폼 떨어지는 말, 일은 죽어도 할 수 없는 새침데기였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애순이처럼 교복을 입고 양배추를 팔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면, 난 아예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가면을 쓰고 시장에 나갔을 것이다. 그만큼 어린 시절, 나는 ‘내 기준에서 ‘창피한 일’은 죽어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부모님 덕에 원하는 공부를 실컷 할 수 있는 비교적 풍족한 시절을 보냈으니까. 당시, 생계를 걱정할 필요 없었던 어린 나는 그렇게 평생을 고상 떠는 문학소녀로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는 문학소녀보다는 쌈닭에 가깝다. 물론 지금도 시와 소설을 즐기고, 심지어는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문학을 애정한다. 다만, 어른이 된 나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내고, 싸워야 할 때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 내겐, 지켜야 될 존재가 생겼기 때문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4화 중
극 중 애순은 어느덧 중년의 엄마가 되어 귀한 아들을 시궁창으로 몰아넣은 이를 찾아다니다 남의 머리채를 잡는다. 문학소녀로 불렸던 그녀이지만, “양배추 달아요” 한 마디를 못 내뱉던 그녀였지만, 소중한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머리채를 잡은 그녀로부터 우아함, 고상함 등의 단어는 떠올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 해야만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쌈닭 모드로 전환되는 때는 바로 사랑하는 엄마를 지켜야 할 때다. 세상은 거칠고, 엄마 아빠는 나를 그런 거친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지 않았는가. 이제는 내가 엄마를 거친 세상으로부터, 때로는 친절하지만은 않은 타인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때다. 예를 들자면, 운전 중인 엄마에게 뒤에서 이유 없이 빵빵대는 경우? 엄마를 향한 폭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뒤 차 주인의 클락션 소리에 나는 맞서 싸운다. 점점 힘이 약해지는 엄마를 위해, 내가 강해진다.
아직 내게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아본 경험은 없으나, 앞으로도 난 고운 엄마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쌈닭으로 변할 준비가 되어있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쌈닭이 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