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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by 전지은




무남독녀로 자란 나는 늘 혼자 놀기에 익숙했다. 유년기에 혼자 했던 종이인형 놀이와 소꿉장난,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하며 놀았다. 철이 들며 혼자 하는 여행도 자주 즐겼다. 혼자는 생각보다 훨씬 편하다. 말동무해 줄 친구도 없고 혼자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참 편하다.


결혼을 하고도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휴일이면 커피 한팟을 내려놓고 냉장고 구석을 뒤져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나 얼려 놓았던 음식을 찾아 해동시키고 자리를 잡는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깊은 겨울이면 거실 벽난로에 장작을 가득 넣고 불을 지피며 그 앞의 소파에 기대어 앉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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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잘 되고, 한글을 칠 수 있는 컴퓨터, 미루어 놓았던 책, 7080 대표 가수들의 CD 정도만 있으면 하루를 지내는 데는 별 불편함이 없다. 커피를 마시며 간간히 간식들로 입과 배를 즐겁게 해 주면 더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8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와 새 직장을 갖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밖에 나가지 않고 지낼 수 있나 보았더니 열흘 이상을 집안에서만 지낸 적도 있었다. 조금 걸어가야 하는 우체통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 우편물 조차 퇴근하는 남편이 찾아들고 왔었다.


외출하지 않는 날이면 샤워도 안 하고 엉덩이와 무릎이 툭 튀어나온 편한 바지에 요술 버선을 신고 푸스스한 머리를 손짓으로 빗어 넘긴 채 지냈다. 그런 모습의 나를 보면 남편은 게을러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난 게으른 것 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주어진 일과 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책임을 지고 열심히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것은 처음부터 하지 않고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하다 보니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출근을 하자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지은, 네 도움이 필요 해."


"뭔데?"


"31호 환자 말이야. 독거노인. 좀 횡설 수설 하거든. 집에서 넘어졌다는데 얼마나 다친 건지. 뼈 부러진 데는 없는데. 뇌 경막하에 피가 좀 고였다네.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



함께 일하는 사회 복지사는 의학적 전문분야의 세세한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독거노인 등 지역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환자들의 퇴원 준비 시 의학적인 문제들은 없는지 물어 오곤 한다. 뇌단층 촬영 상으로는 뇌의 출혈은 작은 부분이고 더 이상 출혈도 보이지 않아 수술이 필요 없는 경증 상태였다. 그렇게 설명을 하자 사회 복지사는 혼자 사는 노인이니 퇴원하면 소소한 일상을 도와줄 사람은 있는지 물어본다며 나갔다.


30분이 지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 또 따른 환자를 방문하는가 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돌아왔다. 환자의 퇴원을 유보시켰단다. 내가 "왜?"라는 내 물음에 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전화기를 잡고 돌렸다.


"성인 보호 관찰 부서이지요. 여긴 병원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속사포 같은 보고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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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퇴직 교사로 혼자 살았다. 연금은 한 달에 3천 달러 정도로 적지 않은 액수였다. 한때는 정부가 보조해 주어 산 집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도 절도 없고 월세로 살던 아파트에서도 지난달 쫓겨났다. 월세 400달러 하는 아파트 세가 너무 많이 밀렸고 전기와 가스 비도 밀려 전기와 가스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를 한단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퇴직 전까지는 매일 직장 생활에 바빴고 퇴근 후에는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갖는 등 별 불편함이 없었다. 퇴직 직후에는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친구들과 여행도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은 자신의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어쩌다 그들 가족 사이에 끼면 이방인 같아 싫어 피하게 되었다.


혼자 지내며 쓸쓸해하던 어느 날 시내의 술집에서 우연히 한 젊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집안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젊은 친구는 마약을 판매하다 잡혀 감옥에 갔었고 막 풀려난 직후 노인을 만난 것이었다. 젊은 친구는 며칠만 신세를 지자고 했지만 며칠은 일주일이 되고, 몇 달로 이어졌다.


노인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즐거워 밥도 사주고, 차도 빌려 주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노인의 마음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젊은 친구는 다시 마약에 빠져 들었고 노인은 그를 구하기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엔 동네의 마약 상들이 집안에 들끓었고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젊은이를 구하기 위한 변호사 비용으로 얼마간 모아두었던 은행의 저축도 소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매달 나오는 연금은 살아있어 사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젊은이의 친구, 친구의 친구가 모여들었고 노인은 다시 혼자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을 먹이고 재우고 용돈까지 집어 주었다. 그것은 물론 마약을 하는 것으로 이용되었겠지만 말이다. 지난 10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현재는 어디에도 의지 할 곳이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지금 지내는 곳도 그 젊은이의 여자 친구가 사는 2칸짜리 아파트란다. 젊은 친구는 지금 다시 감옥에 가 있고.


노인은 친척도 하나 없었다.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외아들인 탓에 형제도 없었으며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 쭉 혼자 살았다. 외로움이 몸에 밸 만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늘 외로웠기에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노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짙은 화장에 역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노인의 가족이라며 찾아와 용돈을 달라는 것을 간호사가 목격하여 우리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노인이 넘어진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성인보호 관할 부서에서는 다음 날 아침까지 직원을 병원으로 파견해 노인을 인터뷰하고 보호할 테이니 그때까지만 퇴원을 보류해달라고 했다.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내 몫이다. 상황을 전하고 보호 신청을 한 상태라고도 알려 주었다. 안전하지 않은 퇴원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의사는 퇴원 유보를 흔쾌히 동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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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노인 보호 프로그램에서 직원이 나왔다. 우선 노인은 아파트를 정해 옮겨 가기로 하였다. 프로그램에선 노인이 혼자 독립할 수 있게 상담치료도 해 주고 가정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도 보내 계속적으로 치료 관찰을 하기로 했다. 또 노인의 짐을 찾으러 함께 가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관을 동행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노인이 퇴원해 갈 아파트는 노인들만 모여 사는 공간이다. 대부분은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이다. 매일 함께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병원이나 쇼핑 등을 가기 위한 외출 버스도 있으며, 방문객이 있으면 하루 이틀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손톱 손질과 머리를 손질해 주는 봉사자가 온다는 그곳. 노인은 왜 진작 그런 곳을 가지 않았을까 싶지만 혹 젊은이들의 보복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번 병원 입원이 노인에게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난 혼자서 참 잘 지내는 편이었다.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무척 즐긴다. 그 편안함은 지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의 가족, 나의 관계라는 울타리를 만들자 그 울타리 안에서 보호되고 있는 나를 알게 되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여, 좋은 관계를 만들며 살아간다.


아픔을 나누고 행복을 공유하며 사랑을 이루는 가족은 혼자 일 때보다 훨씬 여유를 갖게 해 주었다. 언제나 서로에게 의지가 되며 잘못이 있어도 쉽게 용서와 이해가 되는 가족은 참으로 든든하다. 혼자는 누구의 구속도 없이 자유로웠을 수 있지만 편안함이 주는 그 반대급부랄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평생 누구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았을 노인이지만 그의 말년은 너무 쓸쓸하고 씁쓸하다. 노인의 사연을 만나며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지난 주말, 캘리포니아에 사는 외사촌 언니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연락을 받고 즉시 병원에 이틀 휴가를 신청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회포를 풀면 삶의 활력소가 될 것 같았다. 아들을 동행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끈끈한 정을 다시 한번 알려 주고도 싶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될 가족.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손 벌려 다 을 수 있는 관계. 내 울타리. 그리고 우리들. 그 안에서 점점 편안해지는 나를 만난다.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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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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