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대한 환자의 방문
여느 날처럼 출근한 나는 새로운 환자들의 정보를 챙기다가 한 남자의 몸무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790파운드, 무려 358킬로그램이다. 한국 남성의 평균 체중이 대략 70킬로그램 정도이니 그 다섯 배가 되는 과체중이었다. 심각한 질환으로 분리되는 비만 중에서도 중증 비만이었다. 남자는 흉통 때문에 입원했는데 워낙 과체중이다 보니 특별한 간호가 필요할까 싶어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이었다.
남자의 흉통은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지고 불규칙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심박동 수를 조절하기 위해 가벼운 전기충격요법과 함께 약물요법도 병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었다. 그가 지닌 모든 질병의 원인은 고도비만이었으므로.
나는 남자와 퇴원 준비를 위한 면담을 하기로 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자는 묻는 말에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지만 보행 보조기를 이용하여 침대에 오르내리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등 별 불편 없이 지낸다고 했다.
“그러면 변기에는 어떻게 앉고, 샤워는 어떻게 하나요?”
“변기에 올려놓는 것 있잖아요. 변기의 걸터앉는 부분을 올려버리고, 대신 변기 위에 플라스틱 용기를 올리는 거예요. 그러면 변기가 높아지고 앉는 부분도 넓고 평평해지지요. 그걸 놓은 지 오래되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기에 앉는 것은 문제가 없어요. 볼일을 마치면 옆의 세면대나 보행보조기를 잡고 일어나면 되고요.”
볼일을 본 후 뒤처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화장실이 넓다고 해도 움직 일 수 있는 공간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공간 안에서 혼자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럼 샤워는요?”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오는 방문 간호조무사의 도움을 받아요.”
“음식은요? 요리는 누가 하죠?”
“채소와 우유와 빵 등은 동네의 브라운백(커다란 식료품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식품을 커다란 봉투에 담아 빈곤층에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집 앞까지 갖다 줘요.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지났거나 거의 만료된 것이 대부분이라 받는 즉시 먹어치우죠.”
“운전은요?”
“지금은 안 해요. 차가 없어요. 몸에 맞는 차가 없어서 운전을 못할 뿐이지 운전면허증은 있어요.”
남자가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여주면서 신분증으로만 쓴다고 설명한다.
“병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려고 밖에 나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시에서 운영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요. 빈민층은 어디서든 편도 1달러에 이 버스를 이용할 수가 있거든요. 집에서 정류장까지 그리 멀지 않아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면 걸을 만해요. 그런데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딱히 불편함은 없어요.”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남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이왕 병원에 입원한 김에 영양사를 만나 식이요법을 배우면 어때요?”
“아뇨. 인터넷에 관련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시도했겠죠.”
웃으면 답하는 그에게 나는 다시 질문했다.
“과체중은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나요?”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체중 때문에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조금 조심하면서 산다면 말이에요. 생각을 달리하면 이것도 사는 방법의 하나이거든요. 내게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뭘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바뀔 거면 진작 바뀌었겠죠. 안 그래요?”
그리고 그날 오후 다른 병원에서 후송된 또 다른 여자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서른 살이었고 체중은 270킬로그램이 조금 넘 었다. 그녀 역시 남자와 똑같이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중환자실에 도착한 즉시 공교롭게도 심장마비를 일으켜 코드 블루를 불러야 했다.
코드 블루가 발령되면 누구든 응급상황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심폐 소생술을 실시한다. 여자를 담당했던 간호사는 나보다도 작은 키에 몸무게는 45킬로그램이 겨우 넘었다. 그녀가 침대 위에 올라가다시피 해서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는데 양손이 환자의 가슴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5분도 되지 않아 간호사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흘렀다.
코드 블루 방송을 듣고 달려온 다른 의료진이 그녀와 교대했다. 침상에서 내려서는 그녀의 가운 전체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중환자실 의사는 살이 쪄 짧아진 환자의 목을 겨우 젖히고는 인공호흡기관을 밀어 넣었다. 인공호흡기를 걸고도 심장박동이 돌아오지 않아 심폐 소생술은 계속되었다. 전기충격요법과 약물요법까지 숨 가쁘게 병행되었다.
45분이 지났다. 통상 심폐 소생술을 40분 이상 실시했는데도 심장박동이 돌아오지 않으면 콜 오프를 한다. 즉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심폐 소생술을 멈추는 것이다. 모든 의료진이 손을 멈추자 신기하게도 모니터에서는 맥박이 나타나더니 동시에 심장 박동이 돌아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맥박 재봐, 뛰는 게 확실한지. 심장 소리도 들어보고.”
“어! 뛰어. 정말 뛰네.”
“살았어! 살았다고!”
“오케이, 다행이네. 아직 젊은데.”
누군가 한마디 던졌다.
“살리긴 했는데 이제 어쩔 거야. 깨어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고, 앞으로 경과가 더 큰일이겠어. 누가 간호를 할지.”
그렇다. 깨어나서 별문제가 없으면 다행이겠지만 심폐 소생 술을 하는 동안 산소가 부족하여 뇌라도 손상되었거나 낮아졌던 혈압으로 신장이 손상되었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많았다. 이런 합병증은 환자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회복이 더뎌지면 환자를 어디로 퇴원시켜야 할지 고려할 점이 많아진다.
“천천히 생각하자고. 깨어나는 것부터 봐야지. 오늘은 사람을 살린 것만 생각해. 모두들 수고했어.”
나는 담당 간호사와 함께 심폐 소생술에 사용되었던 기구들과 약병들을 정리하면서 언뜻 환자복 아래 드러난 다리를 보았다. 과장을 좀 하자면 내 허리보다 굵어 보였다.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만개한 꽃다운 나이인데 어쩌다 저렇게까지 되었을까 싶다.
세상의 거짓말들이 다 그렇겠지만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라는 말처럼 새빨간 거짓말이 또 있을까. 세상 어느 누구도 물만 마시고 살찌는 사람은 없다. 중년의 몸무게를 어쩌지 못하는 나도 곧잘 그런 핑계를 댄다.
“별로 먹는 것도 없는데 왜 이리 체중이 늘까. 갱년기를 지나 며 호르몬 균형이 깨졌나 봐.”
운동 부족과 식욕 때문에 살이 찌는 게 확실한데도 핑계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괜히 해보는 말들이다. 대충 정리가 끝나고 퇴근 시간도 가까워졌다. 그때 병동 입구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오늘, 이상하네. 이번엔 180킬로그램이야. 68세나 되었는데 아직도 이 체중을 유지하다니 대단하네.”
“병명은 뭐야? 왜 중환자실로 온대?”
“대퇴골절이래. 집에서 넘어졌대.”
“수술실로 바로 안 가고 왜 중환자실이야?”
“너무 뚱뚱하니까, 심장부터 먼저 챙겨보고 갈 모양이야.”
중환자실에 도착한 환자는 생각보다 그리 뚱뚱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앞서 본 두 환자 때문인 것 같았다. 360킬로그램의 절 반밖에 안되니까. 환자는 심전도를 찍고 몇 가지 혈액검사를 한 뒤 수술실로 향했다.
막 퇴근하려는데 중앙 공급실에서 호이어 리프트가 준비되었으니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호이어 리프트는 말 그대로 말을 들어 올리는데 쓰는 기구이다. 널따란 천을 환자 밑에 넣고 천 의 양쪽 끝에 고리를 묶어 지게차 같이 생긴 기구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거대한 환자가 셋이나 있으니 기계를 준비해 둬야 아 에 환자들을 씻기거나 X-Ray를 찍을 수 있다. 어떻게 말을 들어 올리는 기구를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워 있는 거대한 환자들을 움직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엘리베이터에 꽉 들어차는 기계를 간신히 중환자실로 옮기고 다시 퇴근 준비를 했다. 차에 시동을 걸며 생각해 본다. 남자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체중이 불었고 왜 줄일 생각을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과체중이나 비만 환자들이 정신적 결핍감을 포만감으로 채운다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정설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치료가 병행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도 스트레스가 많을 때 음식을 많이 먹는다. 특히 소금을 많이 뿌린 감자 칩이나 땅콩이나 오징어 등은 술안주로 먹는 경우가 많다. 칼로리를 따지면 그야말로 칼로리 폭탄이다. 그러나 먹을 때는 칼로리를 아예 무시하고 폭식을 한다. 다음 날 아침 퉁퉁 부 은 얼굴을 보며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들은 잘 참고 견디고 인내심도 꽤 있는 편인데 유독 운동만은 늘 작심삼일이다. 나의 의지박약 이 운동할 때 가장 드러난다. 핑계는 늘 그렇다. “이 나이에 너무 마르면 없어 보이잖아. 좀 넉넉해야 푸근해 보이지.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지는 않지.”
넉넉해 보이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것으로 이어지다가 결국은 병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으로 이어질까 새삼 걱정이 되었다. 한동안 열심히 했던 계단 오르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비만은 일종의 자기 학대다. 토하기 직전까지 먹는 것.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먹고 쉬고 또 먹는 생활을 반복하는 오늘 만난 환자들에게 치료의 손을 내밀어 보고 싶었지만, 그러나 스스로 인정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비만 치료는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오늘은 나의 저녁 식사가 근사하다. 늦은 퇴근 후 컴퓨터 앞에서 뭔가 하고 있으면 아주 가끔 남편이 저녁을 차려놓고 날 부른다. 메뉴는 삼겹살. 파무침에 깻잎과 마늘까지 제대로 준비된 한 상이다. 소주도 한 잔 걸친다.
술기운과 과식으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눕는다. 눈앞에는 한국 케이블 TV가 켜져 있다. 화면이 보였 다 지워지고 또 보이길 반복한다. 2킬로그램은 족히 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