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행기 표를 예매하며 이번이 몇 번 째일까 세었더니, 7번째!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후, 내가 한국을 다녀간 숫자이다. 미국 집을 출발하여 강릉까지 오는 데는 가장 짧게는 20시간, 이번처럼 하루 자며 경유하는 경우에는 36시간 정도 지나야 강릉에 도착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2년 동안엔 코로나라는 불청객 때문에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도 없었다. 비행기들은 임의 대로 결항되고 또 지연되기도 했다. 한국을 오려면 예방 접종 증명서와 코로나 검사 그리고 도착 후 엄격한 자가격리 등으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유리창 너머로 소리를 지르더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30분 안에 갈 수 있다는 상황을 생각하며 오고 갔었다.
처음엔 긴 비행시간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젠 이력이 나서, ‘갔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에 옮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제일 바쁜 시기인 연말에 가게 일은 모른 척, 길을 떠나 왔다. 내 남은 인생의 영순위는 ‘엄마’, 어차피 일월에 올 예정이었으니 그 시간을 좀 당긴 것뿐이다. 내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또 꾸려 갈 것이 분명했고, 이젠 며느리도 있으니 더 안심이 되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며, 그 죄책감에 일 년을 울었다. 몸도 마음도 허물어지던 그 상황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남편은 ‘갔다 올까?’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다녀오라 했다. 칠순의 남편이 혼자 식사 챙기고, 빨래하고, 가게도 가끔 나가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런 불편함도 감수하며 나의 강릉행을 기꺼이 허락해 준다.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지? 엄마를 만날 시간은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모르는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것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이라며. 내 생각에 동조해 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으로 들어간 지 4개월도 안되었고 중간에 한 달간의 여행도 했으니, 실제로 집에 있었던 것은 겨우 2달여 정도이다. 그런데도 또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사실 이젠 모든 것이 미국 집과 강릉에 비슷하게 나누어져 있어 짐을 거의 싸지 않아도 되기는 하지만. 핑계는 비행기표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세일이 전혀 안되어, 이때 가야 그나마 가장 저렴하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전하면서 지금 떠나는 이유를 정당화시켰다.
집을 떠난 36 시간 이후, 강릉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도 실루엣을 드러내는 밤바다와 검은 솔밭, 차가운 밤공기가 반겨주었다. 24시간쯤 자고 나자 몸은 곧 적응되었다. 마침 월드컵 축구를 보며 시차 적응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강릉에 와 있는 이유의 영순위는 ‘엄마 면회’. 이틀 간격으로 면회를 갔더니 어제는 “네가 지은이제?” ‘우리 딸이야” 하신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면 면회를 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매번 콧속을 찌르고 15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 정도의 불편함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외사촌 언니들이 이야기한다. ’언제 엄마 모시고 나와서 집에 며칠 계시게 해 봐.’
꽃피는 봄이 오고, 이 엄동설한이 좀 누그러지고, 코로나 사태가 나아지면 한번 해볼 모양이다. 친구에게 부탁해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엄마를 부축해서라도 차에 태운다. 휠체어에 태워 경포호수를 한 바퀴 돌며 아버지의 시비 앞에서 포즈도 취하게 하고,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동이 트는 새벽을 함께 맞는다. 잣을 갈아 죽을 끓이고 먹여드리며 고소한 지 묻는다. 더 드시고 싶은 것은 없는지 살피며. 뼈만 남은 가는 몸을 따스한 물로 씻겨 드리고 향이 좋은 로션을 발라드린다. 이게 다 나의 허망한 꿈일 수 있고, 희망 고문이라고 할지라도, 내 남은 인생의 영 순위인 엄마와 함께 지내는 남은 시간들에 최선을 다해 볼 모양이다.
먼바다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흰 파도들이 잦아들었다. 파도 위를 떠다니던 갈매기 떼들도 사라지고 소나무들은 춤사위를 버리고 유유히 섰다. 그 푸르름 사이로 걷는다. 들숨으로 차가워진 폐부에서 내뱉는 물기 서린 날숨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는다. 오롯이 엄마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 이렇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해 본다.
몇 달 후면 또 떠나며 여덟 번째의 여행을 준비하고, 또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 하는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만 태평양 위의 하늘길을 다닐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