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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un 13. 2023

"내가 누구야?"

오늘도 똑같은 후회를 해 보지만


“엄마. 엄마, 엄마. 내가 누구야?” 한참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시더니,

“내가 천치나?”라고 하셨다.

“아~ 하하하”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고?”

“딸이야, 지은이”

그제야 나는 손뼉 치며 맞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옆에 있던 요양원 원장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딸도 못 알아보실 까봐…’ 그날따라 엄마의 눈은 초롱초롱하고 얼굴이 희고 맑았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에, 나를 알아보는 엄마. 이렇게 총기가 있는 상태가 좀 오래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상태가 좋은 날에는 나도 신이 나, 괜히 과장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민석이가 잘 있고 며느리가 참 예쁘다, 나는 요즈음 강릉을 즐기고 어젠 동해에 갔었다, 그제는 고종사촌 정남이와 전화를 했다는 등등.

내가 미국에서 온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엄마는 내가 강릉을 즐기는 일이 당연할 것이고, 고종 사촌 이름을 잊고 있을 엄마는 그냥 누구 랑 통화를 했나 보다 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의 상태가 좀 좋아 보이면 내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속사포를 쏘아 올리듯, 주절거렸다. 엄마의 기억을 깨우려는 노력이었지만 어쩌면 엄마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었는지도... 무슨 말이라도 계속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며, 난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 기분에 취해 한껏 톤을 높여 좋은 이야기들만 하고 또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이 거의 없고 나를 모르면 금시 풀이 팍 죽어, 요양원 언덕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언제쯤 엄마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내 감정이 좀 편해질 수 있을까? 마음속에 아직도 죄책감이 남아 있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때도 지금도 ‘편안해지자. 편안해지자’ 주문을 외워도 문득 엄마 생각만 하면 감정조절이 안되며 급격한 우울감으로 빠졌다. 엄마를 못 모셨던 자책감, 그 무거운 가슴의 추는 언제쯤 가벼워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의 상태가 좋아 보였던 날엔, 이렇게 좋은 곳에 모셔서, 삼시 세끼 걱정 없고, 혼자 계시는 걱정 안 해도 되고, 이렇게 깨끗하게 입혀 주시고, 이만하면 됐다고 했다가… 엄마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면, 내가 한국에 안 살고 있어서, 모시지 못해서...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주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알쓸신잡>을 시청하게 되었다. 한참 지난 프로그램, 말 잘하는 작가 김영하와 젊은 양자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와 몇몇이 모여하는 토크쇼이다. 그야말로 아 두면 데없는 비한 학사전, 이긴 하지만 그 패널들이 이어가는 이야기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날은 마침 알츠하이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치매의 한 양상이기도 한 알츠하이머. 김영하는 ‘그 치매라는 것이,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와 있으면서 왜 와있는지.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왜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과거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지만 당사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그 토론을 들으며, 엄마 생각을 했었다.

나를 물었을 때. 딸인 것은 기억했지만, 왜 그곳에 마주 앉아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만약 엄마가 네가 내 딸이니, 뭘 하자 하든지, 점심을 먹자 하던지 했다면, 치매가 아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 상황에서, 딸을 안 것 말고는 더 말하지 못했다.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도 가끔 뭘 찾으러 갔다가 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는가? 그러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면, 그제야. 아하~ 내가 참, 그걸 찾으러 왔었지 하고 알게 될 때가 있다. 바로 앞의 미래, 그걸 잊어버리는 것이 치매라는 것을 그보다 더 정확히 알려 준 정의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이 질환을 가장 더디게 진행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려, 자신이 기억 못 하고 있을 때는 다시 상기를 시켜주고 확인을 시켜주는 일. 그것 만이 치매 환자를 돕는 길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엄마 같은 경우에도 나와 같이 살면서 딸 사위 손주가 도와 드렸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이 더 천천히 왔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부재는 어쩌면 엄마의 치매 상황을 더 많이 진행시킨 원인이 아니었을까? 또다시 같이 살지 못했던 것이 죄책감으로 밀려왔다. 그러나 또 어찌 생각해 보면 혼자 생활하는 것보다는 요양원이라는 집단생활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식사도 같이 하고,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므로, 사회성을 좀 천천히 잃을 수도 있으니까.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무엇이 엄마에게 최선이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의 미국 생활을 접고 강릉에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좀 더 자주 왔었더라면, 엄마의 가사 도우미를 좀 더 빨리 고용했더라면, 별의별 생각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지금,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엄마는 홀연히 떠나셨다. 난 그런 생각들에 가슴이 메이고 또 혼자 이렇게 운다. 울고 나면, 자책감에 짓눌리고 있던 가슴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 아무리 후회해도 현재의 상황이 달라질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나의 죄스러움은 업이 되어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더 자주 강릉에 왔더라면...더 오래 강릉에 머물렀더라면... 돌아왔더라면...

엄마의 치매가 예방될 수 있었을까.  

나의 자책은 잿빛 바다 위로 일렁이며 회색 구름과 닿으며 우울한 풍경을 만든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아픔으로 그날의 기억은 온통 뿌옇다. 언제쯤 먼 수평선에 파란 하늘 조금씩 열리며 내 마음도 푸른 물을 들일 수 있을까.


영정 사진 속의 엄마를 오늘도 불러본다. ”엄마!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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