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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곳, 그랜드 캐년

절친 부부와 함께 했던 한 달

by 전지은


새벽 5시 반, 호텔 앞으로 검은 미니밴 한 대가 왔다. 맨 뒷좌석에 젊은 커플이 타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저희는 한국에서 신혼여행 왔어요. 앞으로 삼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제일 무게가 많이 나가는 남편이 앞자리에 타고 가운데 좌석에 친구 부부와 나, 셋이 앉았지만 넉넉한 다리 공간으로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이드는 M이라는 미국 이름을 썼다. 5시간쯤 가야 오늘의 첫 목적지 인 세도나(Sedona)가 나온단다. 맨 뒤 좌석의 신혼부부는 이어폰을 서로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듣는 듯했고, 우리는 광활한 경치를 감상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에 친구 남편은 계속, ‘어떻게 이렇게 넓을 수가 있지?’ 하며 감탄을 했다.


한 시간쯤 갔을까. 후버댐(Hoover Dam)이 나왔다. 댐 건설 때문에 만들어지게 된 세계적인 인공 호수, 미드 호수(Lake Mead)가 이어진다. 미드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가이드가 건네주는 유부초밥과 음료수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까지 준비한 여행사의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 돌아와서 계산 명세서를 보니 이미 대금을 지불한 것들이었다. 허기를 채우고 차는 계속 달렸다. 네바다(Nevada) 주를 지나 애리조나(Arizona)로 들어섰다. 이어지는 지평선에서 조수아 추리(Joshua Tree)도 만나고 바람에 굴러 다니는 검불들도 만났다. 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지만 계속 달려야 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이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이프와 사별하고 딸 하나를 키운다는 가이드의 말이 ‘슬픔을 구걸’하는 듯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남편도 옆에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 번 운전을 하고 다녀 봤던 길이라 익숙한 설명들도 있었고, 이번에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라는 이야기도 했다.


5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멀리 붉은 돌산들이 나타났다. 세도나는 미국 내에서 기(氣, Energy))가 제일 센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이곳에서 며칠씩 묵으며 기를 받아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도 예전에 이곳에서 서너 번 묵었었지만 기를 받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붉은 산들이 영험해 보였을 뿐. 세도나 입구의 벨 락(Bell Rock)은 에너지의 소용돌이(Vortex)가 가장 큰 곳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모여 요가를 하거나 기도, 명상을 하며 영적 수련을 하기도 한다. 방문객들 중에는 에너지를 받아 사람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갖기도 하고 에너지가 신체의 어느 부분에 닿아 힐링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듣고 벨 락(Bell Rock) 중간쯤 올라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기를 받아 보려고 애썼지만 별 느낌은 없었다.

이어서 세도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홀리크로스 대성당(Chapel of the Holy cross) 방문. 1956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내 나이와 동갑이다. 성 십자가 성당은 매년 수백만명의 순례자와 관광객이 방문한다. 커다란 붉은 바위 위에 ‘베드로의 바위처럼 견고한’ 두 개의 뾰족한 건물로 지어진 성당은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제대로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도 기가 많이 나온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작용으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단다. 이곳에서도 촛불 밝히며 친구 사돈의 쾌유를 빌며 기도 했다.

시내로 내려와 거리 구경을 좀 한 후, 수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는 다음 만날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2시간 반쯤 걸렸나 보다.


그랜드캐년의 사우스 림(Grand Canyon South Rim)! 드디어 친구의 남편이 제일 와 보고 싶어 했던 곳에 도착했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그랜드 캐년은 애리조나주 북서부의 고원지대가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생긴 협곡이다. 폭은 0.2-29Km이고 443Km의 길이를 자랑한다. 이 길이는 서울 부산 간 거리와 비슷하다. 이 협곡에는 지구의 신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식물과 지형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1919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BBC가 지정한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곳 1위로도 지정되었다. 그랜드 캐년을 눈도장 찍고, 공기 좀 마시고, 사진 몇 장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그 울림이 컸다. 경이로움 그 자체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곳. 이런 곳을 한 번만 봐서 되겠느냐며 다음에 또 같이 오자는 권유를 슬며시 건네 보았다. ‘그럴 길 바라봐야겠네요. 백분의 일도 못 본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침 일몰 무렵이어서 해지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뷰 포인트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찼다. 기웃거리며 포인트를 하나 얻어 보려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다음 행선지를 위해 떠나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트레일을 따라 좀 걸었고 아찔 하게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사진도 몇 장 건졌으니 다행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저 감탄하는 친구 부부에게 이곳을 보여 줄 수 있었던 일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랜드 캐년 이스트(Grand Canyon East) 쪽으로 빠져나오며 캐년 아래로 넘어가는 일몰을 감상했다. 어둠이 깔리고 도착한 곳은 페이지(Page, Arizona). 이틀 밤을 지낼 할러데이 인(Holiday Inn)에 체크인을 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또 볼거리가 남았단다. 이 밤중에?라고 의문이 들었지만 가자는 데로 가 볼 수밖에. 밤이어서 호수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는 파월 호수(Lake Powell) 입구의 언덕. 주위는 깜깜하고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북극성과 가까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목성을 바라본다. 그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지구의 행성들.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도 그 별빛처럼 깜깜한 밤에 빛이 되어 어둠 움을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밤은 쌀쌀했지만 은하수 강을 가슴에 품으며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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