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몽글몽글해지는 건 내 마음만이 아니었어
나의 이야기책 세 번째 이야기
정 아저씨는 바쁘다고 안 오시고, 성년할머니는 다른 동네 갔다고 안 오셨다. 봄이라 여기저기 바쁜 일이 많으신가 보다. 윤영쌤은 아무렇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할매가 한 분 이라도 안 오시면 서운하고, 휑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오늘도 수업 시작 전 순찬할머니네와 춘식할머니네 뛰어갔다 왔지만 할머니들은 집에 안 계셨다. 일부러 안 오시는 듯하다.
몇 분 안 되시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할머니들과 아줌마들과 함께 고고고!
요즘 종순아줌마의 참여율이 좋다. 몸이 좋아져서 텐션이 업 되었다. 글을 쓰라고 하면 힘들어하시고, 자신 없어하시기도 하지만 나름 즐거워하시는 듯하다.
"에유, 난 못혀! 배운 게 있어야 뭘 하지. 글씨도 삐뚤빼뚤, 그림도 엉망이지 뭐!"
하지만 거침없이 글도 쓰고, 그림도 꽤 그리신다.
오늘은 '봄'이라는 주제로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시를 썼다. 처음부터 시 쓰라고 하면 힘들어하시니 봄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말씀하시게 했다. 그리고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글로 쓰라고 했더니 웬걸~할머니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봄에 나는 나물
봄이면 셀레는 마음
가서 냉이 달랭이 곰치 머욱 뜨는 재미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하루가 너무 아십다.
짧지만 나물 캐는 재미와 한 편으로는 시간 가는 게 아쉬운 마음을 잘 담고 있지 않은가. 종순 아줌니는 원래부터 봄이면 들로 산으로 새벽부터 나물을 뜯으러 다니시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프셔서 누워 계신 날이 더 많아졌는데 봄이 되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게 아닌가. 봄이 울 아줌니를 살렸다. 사계절 봄이면 얼마나 좋을까?
봄
봄은 어디서 오는지
저 남쪽 어디에서
따스한 햇볕따라
아니면 땅속에서
새싹들은 뾰족뾰족
돋아나고 내 마음도
따라 설레인다.
팔순이 넘으신 영주할머니의 시다. 이름도 세련되셨는데 시도 간결하고 새련되었다. 영주할머니는 그림솜씨도 기가막힌다. 소학교밖에 안 나왔다고 수줍게 말씀하시지만 글과 그림 솜씨가 뛰어나시다.
봄이 오면
봄이 오니까 바쁘지
풀도 뽑아야지 뭐
밭도 매야지 뭐
바뻐바뻐
나생이도 뜯어야지
겨울에 들어앉았다가 나가
개구리마냥 웅크리고 앉았다가
따땃한 햇볕 아래 나가면 좋지
고만혀!
언년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걸 우리가 그대로 받아쓴 시다. 말이 시가 되었다. 평상시 할머니들의 말이 얼마나 시적인가를 알 수 있다. 할머니들의 실력이 생각 이상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올해 안에 할머니들의 시를 모으면 책이 나올 것 같다. 올해가 다 지날 때쯤 어떤 작품들이 탄생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봄바람에 우리 대원리 마을도. 할머니들 마음도, 아줌마들 가슴도 울렁울렁 몽글몽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