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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엄마 이름

-우리 모두 작가여, 나도 박작가!

by 봄비

나의 이야기책 네 번째 이야기


4월 9일, 벌써 다섯 번째 모임이다. 한 주 한 주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은 6명 모두 모이셨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6명이 최선의 인원인가 보다. 다른 할머니들도 더 오시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과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함께 읽었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의 걱정 가득한 마음과 윗목같이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담긴 시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는 엄마는 힘들어도 괜찮고, 배불리 드시지 못해도 괜찮고,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해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모두가 잠든 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숨 죽여 울던 엄마를 보고나서는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고백하는 시다.


시를 함께 읽고 할매들에게 당신의 엄마는 어떤 분이셨는지 물어보니 너무 무서워서 어렸을 땐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시질 않는가? 오마나! 예상 밖의 대답이라 기대가 와장창 깨지는 듯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많은 식구들 챙기며 억척스럽게 살아야먄 했으니 많이 엄하시기도 했겠다 싶다. 울 엄마도 상냥하고 사랑 가득한 엄마는 아니었으므로... 손님들이 올 때는 맛있는 걸 내오시고, 자식들은 손도 못 대게 하셨다는 어머니, 시집 오기 전까지 명절이면 새 옷을 해입히시며 엄청 챙겨주셨던 어머니, 친척 시조카들까지 열 명도 넘는 식구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챙기느라 억척스럽지만 딱 부러지게 일을 잘하셨던 어머니, 어렸을 때 갱식이(김치죽 같은, 김치와 나물에 수제비와 밥 등을 넣고 끓여 양을 배로 늘린 음식)를 자주 해주시던 어머니 등 할머니들마다, 아줌니들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다르지만 그리운 건 매한가지다. 물론 엄마가 보고싶지 않다는 할머니도 계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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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생각하며 그림도 그렸다. 종순아줌니는 그림 못 그린다고 자신 없어 하신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뿜뿜하셔서 옆에 계신 김할머니에게 "김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우리 모두 작가여~ 나도 박작가!"라며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와우! 스스로 작가라고 말씀하시니 나도 기분이 좋다. 지난 수업 때 칠곡할머니들 시를 읽어드리며 우리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스스로 작가라고 하시지 않는가!

또 영주할머니는 오늘 수업 덕분에 엄마 얼굴도 그려보고, 엄마 이름 처음 써본다며 가슴 벅차하셨다(엄마 이름 쓰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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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너무 즐겁다. 지금보다 윤택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연륜과 지혜와 가슴 따뜻한 추억이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다. 할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섬광처럼 번쩍! 빛난다. 할머니들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애정이 듬뿍듬뿍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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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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