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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책이 뭐여?

-'나의 이야기책'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by 봄비

나의 이야기책 첫 번째 이야기


작년 여름, 선진지 견학으로 부여 송정마을에 다녀왔다. 그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열몇 분이 그림책을 펴내고 마을체험사업을 하고 있었다. 마을 할머니들이 만든 도시락을 먹고, 인형극을 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마을을 함께 돌며 소개해 주는 체험이었다. 마을 카페도 운영하면서 책도 팔고, 커피와 음료도 팔았다. 인형극을 할 때는 조명까지 만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손으로 인형을 움직이셨다.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책을 펴낸 집 대문 옆에는 책제목과 사진이 붙어 있는 문패가 있어서 학생들이 방문할 때는 숨은 그림 찾듯 책의 주인공들을 찾는 게임을 한다.


우리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뿐 아니라 손주들, 그리고 이웃들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라는 선물. 송정마을 어르신들이 그림책을 완성하고 뿌듯해하셨듯이 우리 마을 어르신들도 자신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어 남은 생애 뿌듯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노라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의 세 여자가 뭉쳤다.


우리 마을 인구는 그래도 젊은 층이 많은 편이라 50-60대가 30명이 좀 넘고, 70대 이상이 26명이나 된다. 최고령 어르신은 올해 103세이신 안주훈 할아버지이고, 그 다음은 할아버지와 함께 80년을 넘게 살아오신 101세, 홍소선 할머니다. 99세이신 서순석 할머니까지 장수를 누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거동이 힘들어 집으로 직접 찾아가 구술을 글로 풀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그리고 조금 젊으신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을 통해 글쓰기를 하고 그림그리기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려고 한다. 70대 후반에서 8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고, 이제 막 70이 되신 송명호 아주머니와 73세이신 정원수 아저씨까지 포함해서 첫주엔 여섯 분이 오셨다. 처음엔 어색해하고 어려워하시기도 했지만 갈수록 더 재미있어하시는 듯하다.

아직은 참여자들이 소수다. 첫날 오셨던 이순찬 할머니와 최춘식 할머니는 어렵다며 두 번째날은 참석하지 않으셨다. 시 읽기를 시켰더니 어렵게 느껴지셨나보다. 대신 둘째주에 김성년 할머니와 박종순 어머님이 동참하셨다.


지난 3월 12일에 시작해서 마을 할머니들과 시를 읽고, 감정카드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보고, 수채화물감으로 색칠하기까지 해보았다.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나중에 편집해서 영상으로까지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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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는 계속 "나는 못혀!" "배운 게 있어야 뭘 하지" "뭘 자꾸 시켜~ 힘들게" 등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지만 우리는 옆에서 "너무 잘하셨어요!" "어머나! 색칠을 어떻게 이렇게 잘하셨대?" 하고 칭찬하면 좋아하신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책이 금방 뚝딱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나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고, 조금은 투박해도 말하듯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나간다면 언젠가는 한 권, 두 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역사가 책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 날을 고대하며 아자아자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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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