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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서

by 봄비


말그릇이 비어

허기진 오후에

옆마을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

마을 입구에 심긴 느티나무 아래에

잠시 누워본다.


움직이는 건 나뭇잎과 구름뿐

때로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보다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싶을 때가 있다.

파란 심장이 아파

발을 뗄 수 없는 내가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깊고 그윽하게 떠갔으면 좋겠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잎이 말라 마름병으로 빨간 점박이가 생긴

느티나무 잎들은

아침부터 휘파람을 불고,

노란 아기새 한 마리 날아와

나뭇가지 위 벌레를 쪼아대더니

고개를 갸웃갸웃

네가 시인이 되고픈 그이 맞냐,

여기서 널 기다렸다,

너에게 시 한 편 선물하겠다 한다.


100년이 채 안 된 느티나무 아래서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보자기에 싸 집에 가지고 왔다.

보자기 풀어보니

느티나무 씨 몇 개

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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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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