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리로 이사하다
무작정 보은에 집을 얻고 10개월 동안 대원리를 오갔다. 세 딸들을 챙겨야 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대원리에 우리가 살 집을 짓느라 남편은 바빴다. 남편도 처음 집을 짓느라 몸이 피곤하였을 터다. 물론 혼자 짓는 게 아니라 옆에서 도우는 정도였지만 노동을 안 하다가 갑자기 몸을 쓰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나도 나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원리에 오면 있을 곳이 딱히 없다는 것도 힘들었다. 주로 식당동이나 교육관에 있거나 다른 지체들의 집에 있을 때가 많았는데 추운 겨울에 교육관에 마냥 있는 것도 힘들었고, 남의 집에 오래 있는 것도 힘들었다. 떠돌이 생활을 끝낸 것이 아니었다.
홈스쿨을 하던 아이들이 간혹 읍내에 있는 수영장에 올 때는 우리집에 들러 같이 떡볶이를 먹거나 같이 놀기도 했다. 아이들만 온 것은 아니고, 아내와 딸은 대원리에 살고 밖에 일이 있어 대원리에는 일주일에 3-4일 있었던 P가 아이들을 인솔해 왔다. 자유로운 그는 늘 얼굴에 웃음이 있었고, 기발한 발상이 머리를 맴돌아 가끔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재밌었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공동체 식구들과는 달리 예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우리를 대해주었다.
경량목구조로 짓는 집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0년 7월 우리는 보은 읍내에서 18km 떨어진 대원리로 이사했다. 이삿짐센터에 맡겨 이사하긴 했지만 남편은 웬만큼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문앞에 두고 그냥 가라고 했다. 아직 위치가 정해지지 않아서 직접 정리하겠다면서 돌려보낸 것이다ㅠㅠ 그래서 우리는 3일에 걸쳐 짐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넓지는 않지만 깨끗한 집에 들어오니 신이났다. 제일 큰 방을 아이들 공부방으로 만들었다. 홈스쿨을 위해서 나란히 붙어 있는 책상을 들이고 책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남편과 나의 책도 책장에 빼곡하게 꽂혔다. 가장 작은 방에 우리 침대를 놓았는데 문제는 옷이었다. 시골에는 일복이 따로 있다 보니 도시에 살 때보다 옷이 배로 늘어났다. 옷장이 따로 없으니 매우 불편했다. 결국 2-3년 만에 제일 큰 방이 안방이 되어 붙박이옷장을 들이게 되었다.
딸들은 신나게 놀았다. 읍내에서 오가다가 편히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집이 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매일 밖에 나가 놀았다. 공동수업이 있긴 했지만 과다한 숙제는 없었기에 맘 놓고 놀 수 있었다.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여름엔 개울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엔 눈이 오면 버섯창고가 있던 언덕에 올라가 볏짚을 넣은 비료푸대를 타고 썰매를 탔다. 아이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