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가본 곳
2학기가 시작된 2009년 9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첫째와 둘째, 그리고 막내까지 데리고 이삿짐을 쌌다.
갈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이삿짐센터 컨테이너에 보관하기로 했다. 비용은 들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아파트는 팔리고, 갈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영주 생태마을은 아무리 생각해도 갈 수 없었다. 이삿짐을 맡기고 당장 우리가 써야 할 물건만 트렁크에 싣고 첫날은 용인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자기로 했다. 당시 책 교정 보는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마무리해서 출판사에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셋을 씻기고 찜질방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옷을 벗으려던 찰나에 입구 쪽에 여탕을 몰래 훔쳐보려던 어떤 남자를 발견했다. 나는 너무 놀라 일하는 직원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 아저씨는 도망갔는데 놀란 가슴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떠돌이생활 첫째날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세상이 무서웠다.
그날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깨다자다 반복하면서 깊이 자지 못해 너무 피곤했다. 다행히 다음날은 일을 끝내고 옥천에 사는 남편 선배네 갔다. 무작정 찾아갔는데 5일이나 머물렀던 것 같다. 선배는 흔쾌히 안방을 내주고 5일이나 우리를 먹여주고 재워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은인이다. 그 선배 부부는 요즘에도 가끔 만나 식사를 하곤 한다.
5일 후에 보은의 보나콤이라는 곳을 찾았다. 남편은 홈스쿨에 관심이 있고, 양계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곳이 아이들 교육을 홈스쿨로 하고, 친환경 양계로 자립하고 있는 공동체였다. 사실 귀농하려고 할 때 첫째 친구 엄마가 보나콤을 가보라고 소개했었지만 공동체는 가고 싶지 않았다. 왠지 힘들 것 같았다. 보나콤 달걀을 먹고는 있었지만 공동체라는 말에 마음이 닫혀 있었는데 홈스쿨을 하고 계신 지인이 또 한 번 보나콤에 가보라고 해서 방문해 보기로 했다. 2박 3일 있는 동안 눈물이 계속 났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생태적으로 살아보겠다는 게 나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길이 막혔을까 원망스럽고 서러웠다. 부모님께도, 형제들에게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하는 현실이 슬펐다.
남편은 보나콤에 가자마자 양계장에 가서 일을 하고 왔다. 나는 세 아이 케어하느라 힘든데 남편은 일이 더 중요했는지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으로 일을 하고 왔다. 그러고는 우리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더 눈물이 났다. 왜 여기여야 하는지 나는 잘 몰랐다. 막막하기만 했다.
남편 친구에게 콘도 열쇠를 받는다고 다시 용인으로 갔는데 시동생집에 갔더니 찬밥 신세다. 시동생이 없는 상태에서 동서와 조카만 있었는데 아무래도 동서는 남편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다섯이나 우루루 몰려가니 불편했나 보다. 서러웠다. 시동생이 없는 줄 알았으면 우리도 가지 않았을 텐데... 원래는 그 집에서 하룻밤 자겠다고 했으나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한테 연락해 하루 재워달라고 했다. 저녁만 먹고 바로 시동생 집을 나와 오빠네 가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빠는 우리 사정을 듣고는 응원해 줬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나 보다. 속초에 도착한 날 밤, 극심한 복통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남편을 깨워 응급실에 갔다. 아이들이 자고 있어 다 깨우지는 못하고 막내만 데리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 위경련이라고 했다. 통증 링거를 맞느라 몇 시간을 비웠는데 첫째와 둘째가 깨지 않아 다행이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응급실행이었다. 세상에 그런 통증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