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내려갈 결심
"여보, 우리 시골로 내려가서 살아보는 건 어때?"
"음~~~~시골이라~~~시골 어디로 가지?"
"같이 찾아보면 되지. 어딘들 도시보다는 낫겠지. 난 아이들에게 자연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어. 다른 건 물려줄 수 없어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면 되지 뭐. "
시골로 내려가 보자고 먼저 말한 건 나였다. 도시에서 세 딸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세 딸들을 띄엄띄엄 낳아서 첫째가 열한 살, 둘째가 여섯 살, 셋째가 두 살일 때였다.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학교 방과후수업에서 하는 플룻을 배우고 일곱 살때부터 다니던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게 전부였다. 가끔 종이접기나 어릴 적에 발레를 잠깐 배운 적은 있지만 학과공부를 위한 학원에는 다니지 않았다.
첫째는 피아노학원에서 돌아오면 집에 가방을 내려놓고 무조건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특히 친구들과 달리기를 잘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열 바퀴도 넘게 계속 뛰었다. 그때 딸을 잘 설득해서 달리기선수가 되도록 했어야 했던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결국 첫째 친구 엄마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우림 엄마는 우림이를 잘 챙겨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이 말은 첫째를 데리고 공부를 시킬 줄 알았는데 방목한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늦게 셋째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첫째를 잘 챙겨주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벌써부터 엄마들 치맛바람과 경쟁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시골행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서울로 유학와서 학교를 다녔지만 어릴 때 살았던 시골의 정서가 내 안에 살아 있었던 듯하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내가 시골로 내려갈 결심을 한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세 딸들 모두 알러지가 있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했고, 둘째는 비염이 있었고, 셋째도 한동안 아토피로 고생했다. 그래서 더 시골에 내려와 내가 먹을 것만이라도 친환경농사를 지어 건강한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생태마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17년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