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생활은 힘들어

by 봄비

떠돌이 생활 열흘도 안 되어 힘이 빠졌다. 속초에서 위경련 때문에 더 놀라서 빨리 쉬고 싶었다. 마음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아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말이다. 속초에서 아이들과 설악산에 갔다가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무작정 보은 읍내에 가서 방을 얻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5층 아파트의 4층 집이었다. 벽지도, 장판도 오래 되어 딱 보기에도 낡아보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사 날짜까지 며칠이 필요해 남편 이모님 댁에 며칠 있기로 했다.

무작정 찾아갔지만 선뜻 받아준 이모님댁에서 고구마를 캐고, 밥을 하고, 일손을 도우면서 지냈다. 이모님은 시어머니 언니인데 천상 농부였다. 이모부는 돌아가셔서 혼자 생활하고 계셨는데 살림보다는 농사에 더 열심이셨다. 아침 일찍 풀을 뜯으러 가시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고구마를 캤는데 몇십 박스는 됐던 것 같다.

보나콤에서는 우리가 보은 읍내에 집을 얻었다고 하니 놀랐다. 우리가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은 읍내에 집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읍내로 이사한 후, 나는 잠깐이라도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은 반대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아이들 홈스쿨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막내는 이제 27개월 되어 손이 많이 가야 할 시기였는데 막내를 데리고 첫째와 둘째 공부를 봐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보나콤에 얘기해서 아이들 공동수업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우리는 보나콤 일원이 된 것도 아닌데 남편은 10월부터 출근하는 것처럼 대원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점심 때쯤 내가 아이들을 태우고 대원리로 갔다. 남편은 양계장에서 같이 일하기 시작했다. 홈스쿨을 같이 하자고 말은 했지만 홈스쿨은 내 차지가 된 것이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누군가 남편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남편은 힘들지 않노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8시 넘어서 혼자 잠들어버리곤 했다.

나는 아이들 재우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과 큐티를 하고, 공동수업에서 낸 숙제 챙기다 보면 대원리에 갈 시간이 되어 아이들 챙겨 대원리로 가고, 아이들 공동수업하고 나면 또 아빠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그 기다림의 시간이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 해먹고, 또 재우고....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10개월 동안 이어나갔다. 어떻게 그 시간을 건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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