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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n 13. 2024

7. 소설 쓰기의 매력

-초단편 소설, <제자리걸음>

 '나의 삶을 재료로 소설적 글쓰기'라는 수업에서 나는 끝내 초단편(A4용지 1~2매) 소설을 제출하지 못했다. 강사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과제라거나 약속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온화한 말뿐이었다. 역시나 써오지 않은 수강생 속에서 단 한 명, 소설을 써온 이에게 작가는 메일주소를 알려달라며, 읽어보고 꼭 소설에 대하여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쓰는 이'는 '쓴 이'의 정성을 알아주는 것일까. 


  쓰면서 배우기 위해 한 편을 완성해 보려고 한다. 글을 쓰는 일은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쓰므로 파생되는 여러 일을 알게 되고, 걱정하고, 때론 두려워하며,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소설이라고 믿는 글을 쓴다. 강사가 보여준 '쓰는 이의 진지한 모습'에 늦은 답장을 보낸다. 


  <제자리걸음>     

  “당신은 양파 같은 사람이에요.”    

 

  만지면 눈물이 나는 양파 같다고 했다. 까도 까도 항상 그 모습인 양파. 무심한 듯 땅만 보고 걷는 그녀는 용케도 별일 없는 나의 일상을 기억해 냈다.   

  

  “당신은 피부가 없는 사람 같아요.”

  “무슨 의미예요?”     


  그녀의 입에서 투명하게 튀어나온 ‘의미’라는 단어를 곰곰이 되뇌어 보았다. 조금 더 예쁜 단어를 골라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의 걸음걸이처럼 말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공중에서 흩어졌다.  

   

  “음,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모습이 마치 벽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요. 나쁜 의미는 아니고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부러웠나 봐요.”     


  누군가를 만나고 친해지는 게 나에게는 물속에서 숨 쉬는 일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프로젝트를 함께 할 때 간신히 ‘인간관계’라는 것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업무 장소가 바뀔 때는 다시 보자는, 아니 이제 일없는 이상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암묵적 규칙을 눈빛으로 교환하며 헤어졌다.    

 

  나의 인간관계는 항상 튼튼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그 높고 두꺼운 벽은 나를 조난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다치지 않기 위한 마음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장처럼 변해버렸다.     


  그녀는 한 번도 다쳐본 적 없는 사람처럼 다가왔다. 마치 아기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손을 내밀고, 말을 걸었다. 피부가 없는 것 같아서 얼마큼 다가가야 아프게 하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픔을 걱정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여름이에게 들었습니다. 우쿨렐레를 좋아한다고요. 저에게도 시간 되면 함께 연습하자고 하더라고요.”

  “네 잘하는 건 아니고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하는 정도예요.”   

  

  해로움이 없는, 평범함을 가장한 특별한 말이, 둘만의 시간으로 쓰인 문장들이 흔하고 낡은 노랫말처럼 읽혔다. 나의 유일함이 그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나의 좁고 미숙한 인간관계를 보여줄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오해와 편견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포기하며 헤어지는 일은 벽을 더욱 쌓게 한다. 


  아무렇지 않은 관계란 얼마큼의 거리를 두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지만 벽을 쌓지는 않는 것 같다. ‘벽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하듯이 둘러놓은 경계를 가볍게 넘어온다. 그녀의 특별해 보이는 일상이 부러웠고, 그녀의 특별함 속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바보스러워서, 감추기 위해 벽을 세우지만, 그 벽은 이미 막기 위한 일이 아니라 다가가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우쿨렐레 연습은 잘 되고 있어요?”     


  오늘도 스스럼없이 들어오는 그녀에게서 최대한 뒷걸음질 치려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못했다. 



  <작가노트>

  글을 쓸 때면, 그날 마음에 드는 음악 한 곡을 반복 재생시켜 놓는다.

이 글을 쓸 때는 멜로망스의 '그 밤'을 들었다. 듣는 음악도 글에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본 이들은 글의 장르를 '로맨스'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관계'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관계에서 사랑을 완전히 

소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로맨스'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랑, "아직도 그런 뜨뜨미지근한걸 믿어?" 타짜 아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xs6HC54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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