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는 삶이 되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잔인한 짓이었다. 항암이란 것은.
이건 마치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곳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격이다. 그냥 피아를 가리지 않고 대대적인 살육을 감행하는 셈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세상에 암 환자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암 병동에는 암 환자들만 있으니까. 특히 유명 대학병원이니 더욱 그러하다. 입원 병실은 늘 만원이고, 외래 진료실 앞 대기실에도 언제나 넘치는 환자들로 앉을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곳에서 나는 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작품 중 하나인 ‘암 병동’을 떠올린다.
그냥 뭉뚱그려서 암 병동이라고 했지만, 실은 크게 3군데를 가리킨다. 하나는 암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는 문자 그대로 병동이고, 다음은 암환자들이 오는 외래 진료실, 그리고 항암주사를 맞는 일일 입원실 등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방사선치료실이 있다.
이곳들이 암 진단 후 끊임없이 드나들어야 하는 공간이다. 물론 그 외에도 각종 검사를 위해 방문하는 채혈실, 영상촬영실 등등도 빼놓을 수 없다. 필요한 경우, 수술실도 드나듦은 물론이다.
항암치료란 약물, 즉 항암제를 투여하는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등 2가지를 통칭하는 말이지만, 좁게는 항암제 투여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한다’는 등의 표현을 쓴다.
항암 치료는 처음엔 통원 치료로 진행되었다. 예약 당일 정해진 시간에 일일 입원실에 가서 병상을 배정받은 다음, 항암제를 맞고 귀가하는 것이다. 들어가 보니 앉아서 항암제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이곳도 매일 대기실에 앉을자리를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환자들로 넘쳐났다. 이 사람들 모두가 암환자라니…
항암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실제 겪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물론 내가 실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을 떠안아 주고 싶다. 사랑한다면 누구나 그런 심정이 아닐까.
첫 번째로 꼽히는 증상은 메스꺼움 설사 구토 복통 오심 식욕부진 등이다. 그 외에 각종 통증과 부종 감각둔화 피로감 가려움 등 항암제 종류에 따라, 또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약물은 세포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항암제는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표적 항암제가 있어, 이것은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한다는데 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환자는 얼마나 힘이 들까. 문자 그대로 온몸을 그냥 들들 볶는 격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항암 치료를 시작한 후 오히려 더 상태가 악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실제로 더 힘든 고통을 겪는다. 어찌 보면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진짜 환자’가 되어버렸고 점점 더 중환자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힘들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슬프다.
방사선 치료는 또 어떤가. 약물치료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부작용에 더해 머리까지 빠진다.
누가 저런 것을 먹을까 싶었던 영양 유동식 캔을 사고, 병원 지하 매점에서 왜 파나 싶었던 비니와 모자를 산다. 속수무책 머리칼이 빠져나가는 머리를 가려야 하니까. 역시 병원 지하 미용실에 왜 있나 했던 가발도 구입한다. 머리를 가린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영양식 캔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견디는 것일 뿐이다.
몸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심리적으로도 약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래도 이 사람은 평정을 잃지 않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지만, 이처럼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병원을 오가면서도 단정한 매무새에 신경을 쓴다.
그런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그러나 완치의 희망으로 견딜 수 있다.
처음에는 씩씩하게 주사를 맞던 모습도 2차, 3차로 갈수록 약해진다. 기운이 떨어지고 날로 쇠약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고개를 돌리면 병실 밖 신록이 파란 하늘과 흰구름과 어우러져 햇살의 프리즘을 만들면서 너울댄다.
아름답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리면 하얀 병실에 낮게 깔린 우울한 공기가 짓누르고 있다. 침대 베개 위에 뉘인 머리에는 맥이 없어 보이고, 창백해져만 가는 낯빛에 울컥 나도 모르게 울음을 삼키게 된다. 그 속마음까지 감춰야 한다. 항암제가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자를 더 힘들게 하고, 그래서 병세를 악화시킨다는 느낌 밖에 없다. 자꾸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쳐드는 절망감을 억누르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우리는 담당 교수님을 만난 후 의료진을 100% 신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실천하기로 했다. 의료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기로 한 것이다. 혼돈의 광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길 밖에 없지 않은가.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온갖 경험담을 섭렵한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믿으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고, 환자도 견디기가 쉬워진 것 같았었다. 항암제 부작용은 피해 갈 수 없지만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일단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는 안도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 결말은 비극이었고, 허탈감과 후회를 남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목숨을 건진, 아니 더 정확히는 수명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항암 치료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몸을 망가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했을 뿐이다. 고통뿐인 고통이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분노마저 느낀다.
그토록 무모한 치료를 왜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