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중국 여행 -『대지』와 『중국의 붉은 별』
Ⅰ
비밀의 공간
어린 시절 벽장이나 다락, 심지어는 장롱 속에 숨어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껴본 기억.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쪼그려 앉아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은신처 본능’ 등으로 불리는 이런 심리는 재미가 있기도 하거니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 위한 본능적 행위”로 해석된다고도 한다. 또 정서적 과부하, 불안, 자율성 욕구 등이 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좁고 은밀한 공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느끼는 것이다.
다락방이 있었다. 높이는 60~70cm로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넓이는 10㎡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꽤 널찍했다. 최고의 은신처였다. 심지어 누워서 한숨 잘 수도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기어들어가야 하는 출입문을 제외한 4면 모두 책이 쌓여 있었다. 물론 형과 누나들의 책이었다. 거기서 책을 뒤적이는 것이 꽤 재미있는 일이어서 틈나는 대로 기어올라갔다. ‘다락방 서재’였던 셈이다.
즐겨 읽었던 책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한 대역판으로 외국의 문화나 시사문제 등이 영한 대역으로 소개되어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작은 교양지다.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어판은 1978년, 영한 대역판은 1980년부터 발간된 것으로 나온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 같다. 아무튼 영어는 모르지만, 번역이 돼 있으니, 초등생이었던 나도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잊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기사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달라이라마에 대한 기사였다.
중국의 문화혁명, 보다 정확히는 홍위병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모택동 어록’이란 말 뜻을 알 수 없었다. 마오쩌둥 어록이란 말이지만, 우선 ‘어록’이 무엇인지 몰랐고, ‘모택동’도 어렴풋이 중국 지도자의 이름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은 몰랐다. ‘홍위병’이란 말도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열정적으로 ‘주석’의 말을 따르고, 집단적으로 중국을 휩쓸고 다닌다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스토리는 티베트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 이야기다. 달라이라마가 죽고, 그 환생을 찾기 위해 고위 승려들이 티베트 전역을 여행한다. 우선 달라이라마 사망 전후에 태어난 아기들을 찾아낸다. 그 아기들 앞에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집어 들게 한다. 그러면 달라이라마의 환생이라면 정확하게 선대 달라이라마의 물건을 가려내 집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신비하고 재미있었다. 기사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과 달라이라마의 망명까지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두 기사 때문에 지금까지 중국의 문화혁명과 티베트 관련 스토리는 늘 나의 관심을 끈다.
바로 그 다락방 서재에서 알게 된 작가는 펄 벅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름 표기 때문이다. 다른 저자들은 모두 ‘이름 + 성’으로 표기돼 있었지만, 유난히 이 사람은 ‘펄 S. 벅’이었다. 중간에 왜 ‘S.’가 들어갔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 매일 고민했다. ‘펄 벅’, ‘펄 에스 벅’, 아니면 ‘펄스 벅’? 어쨌든 그런 고민 때문에 ‘대지’를 이곳저곳 펼쳐서 읽어 보기도 했다.
또 한 사람 고민을 안겨준 저자는 중국의 린위탕이었다. 그의 책은 한자로 ‘林語堂 全集(임어당/린위탕 전집)’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의 한자 실력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였지만, 문제는 ‘당(堂)’자였다. 그때 나의 상식으로 이것은 어떤 출판사를 지칭하는 한자였다. ‘삼성당’, ‘집문당’ 등등. 그러나 또 다른 상식으로는 000전집이라면 작가 이름이 붙거나 ‘한국 문학’이나 ‘세계 문학’ 같은 특정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 붙어야 했다. 그런데 출판사 이름 같은 것이 붙었으니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단행본으로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였다. 우선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그다음은 ‘이렇게 말하였다’라는 제목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 책을 부여잡고 다락방에서 잠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든 읽어보려고 무진 애를 쓴 기억은 있다. 그 후에도 『차라투스트라…』는 10~20년 주기로 한 번씩 읽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충분히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더 질문하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했고, 또 꺼렸다. 우선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또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기가 싫었다. 이런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해서, 예컨대 초행길 운전에서 길 물어보기가 싫어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을 헤매고 다닌 적이 많다. 이런 나에게 오늘날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나, 채팅으로 질문만 하면 척척 답변을 내놓는 AI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락방 서재는 내게는 본격 독서를 위한 기초를 닦아주는 곳이었다. 세계 여러 지역, 특히 중국의 이야기는 나를 매혹시켰다. 그것은 후에 내가 외국 문학과 국제정세에 늘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Ⅱ
『대지』
『대지』/펄 S. 벅/도서출판 길산/2020(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 있다.)
‘다락방 서재’에서는 여기저기 펼쳐지는 대로 조금씩 읽어봤고, 후에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제대로 읽었으며, 최근에는 2020년판으로 다시 읽었다.
펄 S. 벅은, 내게는, 세계를 향한 관심의 창을 열어준 이름이다. 그의 작품 『대지』를 통하여 중국의 근대사를 접하고, 그 관심이 한편으로는 티베트로,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중국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으로 이어졌다. 거기서 또 나아가서는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억압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음울한 닫힌 사회의 풍경을 들여다보는데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성향이 러시아문학, 그것도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더 끌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펄 벅은 선교사의 딸로 젖먹이 때 중국으로 갔으므로 사실상 중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흔한 표현으로 ‘푸른 눈의 중국인’인 셈이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수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펄 벅 재단을 통하여 고아원을 설립, 전쟁고아들을 돌보았고,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도 썼다. 이 책도 나의 ‘다락방 서재’에 있었고,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1931년 발표된 『대지』는 퓰리쳐상 수상작이자, 펄 S. 벅이 1938년 미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표작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중국, 즉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에 이르는 격동기를 살아간 농부 왕룽 일가의 3대에 걸친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삶의 터전이자 영혼의 뿌리로서 ‘땅’의 의미, 자연과 역사가 만들어내는 재난과 격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묻는다. 이 책에 묘사된 당시 중국인들의 실생활을 통해 중국 근대사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얻는 것 또한 큰 소득이다.
이 작품은 1937년 미국에서 ‘The good earth’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으며 국내에서도 광복 후 상영되었다. 엄청난 메뚜기 떼가 농작물을 모조리 먹어 치워 농토가 폐허로 변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이 시기 대기근으로 주인공 왕룽이 농토를 버리고 유민으로 떠돌기도 한다. 나도 어릴 때 이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 나게 들었던지 실제 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니면 실제 봤던가…? 아무튼 수십 년이 지나 이 작품을 다시 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기억나는 대목은 이 메뚜기 떼 밖에 없었다.
『대지』는 3부로 구성되며 내가 읽은 책은 3권짜리로 각 부가 별책으로 되어 있다. 도입부부터 인상적이다. 주인공 왕룽이 그 일대 최고 부잣집의 하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결혼이란 것이 별다른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룽이 하녀를 내어주는 데 대한 감사의 선물을 그 부잣집에 갖다 주고 아내를 데려오는 것이다. 여인은 박색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 집 도련님들이 건드리지 않아서 몸을 건사할 수 있었다. 왕룽은 떠나기 앞서 몸을 씻는다. 씻는다기 보다 물을 묻혀 닦는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물을 낭비한다고 야단을 친다. 왕룽은 몸 닦은 물은 다시 밭에 뿌릴 것이니 낭비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안심시킨다. 그만큼 삶이 궁핍한 것이다.
왕룽의 아내는 출산과 그 뒤처리도 혼자 다할 만큼 억척이다.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조금씩 모으고, 그 모인 돈으로 땅을 한 뙤기씩 사들인다. 결국 부잣집은 아편에 찌들어 몰락하고, 그 집 땅이 모두 왕룽의 차지가 된다.
그렇게 먹고살만해지면? 남자는 당연히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간다. 그렇게 왕룽은 첩을 들이고, 얼마 후 아내는 병을 얻어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하고 눈을 감는다.
제1권이 왕룽이 집안을 일으키는 이야기라면, 제2권은 왕룽의 세 아들이 어떻게 격동기를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장남 왕따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놀고먹는 한량이 된다. 둘째 왕얼은 일찍이 장사를 배워 곡물상에다 가난한 농부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을 해서 더 큰 부자가 된다. 셋째 왕싼은 군벌이 되어 ‘왕후 장군’이란 별칭으로 그 일대를 호령한다. 2부는 주로 셋째 아들 왕후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3부는 손자 세대 이야기다. 신문물이 밀려들어오고, 군벌은 쇠퇴하며 젊은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손자들 중에서도 삼남 왕후의 아들 왕위안이 중심이다. 그런데 이 왕위안은 고뇌하는 ‘햄릿’ 형 인간이다. 혁명에 얽혀 체포된 것을 집안이 총동원되어 뇌물로 빼내 미국으로 도피시킨다. 미국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왕위안은 조국의 현실에 직면한다.
한때 중국 공산당정부는 펄 벅과 이 작품 『대지』를 혐오했다고 한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평가가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뒤집어보면 그만큼 당시 중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차피 소설 한 권에 당시의 현실을 모조리 담을 수는 없다. 한 단면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보여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대성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중국의 현실은 또 다른 측면에서 펄 벅이 묘사한 당시의 중국과 유사한 혼란과 진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 1세대가 일구어 낸 것을 2세대가 누리지만, 이어지는 변혁 속에서 3세대는 혼돈에 빠져 있다. 일자리는 없고, 당장의 생활고와 암담한 미래 때문에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Ⅲ
『중국의 붉은 별』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두레/2013
『대지』는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나를 이끌었다. ‘다락방 서재’에서 본 문화대혁명 스토리, 거기에 나오는 ‘홍위병’, ‘대자보’, ‘사인방’ 등등 알 듯 말 듯한 용어들은 당시 내게는 ‘신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 뜻은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중국, 이른바 ‘죽의 장막’ 너머에 있는 그 신비한 중국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바로 그즈음에 알게 된 것이 이 책, 『중국의 붉은 별』이다. 에드거 스노의 1937년 작품이니 내가 처음 구했을 당시인 70년대 전반에도 이미 케케묵은 책이었다. 그래서 헌 책방을 뒤져 찾아낸 것으로 기억한다.
에드거 스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1928년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 중국은 물론 인도차이나 미얀마 인도 등지를 누비며 ≪시카고 트리뷴≫, ≪뉴욕 선≫, ≪헤럴드 트리뷴≫, ≪런던 데일리 헤럴드≫ 등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중국의 붉은 별』은 그의 대표작이다.
에드가 스노가 방문했던 1936년 당시 중국공산당은 바오안(保安)이란 곳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장제스의 국민당군에 쫓겨 도망치던 이른바 ‘대장정’ 막바지, 옌안(延安)으로 옮기기 전에, 머물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몇 달을 지내며 마오쩌둥, 린뱌오, 저우언라이, 펑더화이 등과 직접 인터뷰를 했다. 특히 마오와의 인터뷰는 열흘이나 계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서방세계는 중국의 오지에 피해 들어간 공산당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현지에서 취재를 하고,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이 공개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관심을 끌었겠는가!
에드가 스노는 언론인으로서 비교적 엄정하게 글을 썼지만, 공산당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바오안의 생활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댄스파티, 마약 의혹, 밤새 일하고 병사들이 들고 가는 들것에 누워 잠을 자는 ‘들것 이동’ 같은 흥미거리도 많다. 평범한 배우에서 마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아내가 된 장칭, 훗날 마오의 후계자로 지명되었으나 소련으로 도피하다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속을 알 수 없는’ 린뱌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을 끌고 내려왔던 최고 사령관 펑더화이 등 지도부 유명 인사들의 묘사는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펄 벅의 『대지』가 그려낸 근대 중국의 민중적 삶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중국 공산주의의 태동과 혁명의 실체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혁명에 몸담은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들이 직면한 고난, 이상, 그리고 현실적 갈등을 솔직하게 보여 줌으로써 당시 외부에서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마오쩌둥과 홍군, 중국 혁명의 실체를 처음으로 상세히 알린 르포르타주다. ‘이념을 추종하기보다는, 이념이 태어나는 현장을 기록한 작품’,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르포’ 등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마오 연구에 필수적인 중요한 자료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후에 운동권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접한 ‘홍위병’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미지의 뒤에 도대체 어떤 맥락과 기원이 있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다. 펄 벅이 들려준 “중국 민중의 땅에 뿌리내린 삶”이 『대지』였다면, 에드거 스노는 그 땅 위에서 이상이 현실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것을 『중국의 붉은 별』에 담아낸 것이다.
『아리랑』/님 웨일스/동녘/2005
에드거 스노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책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님 웨일스는 에드거 스노의 부인이었던 헬렌 포스터 스노의 필명이다. 남편과 함께 1930년대 격동기 중국을 취재하면서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중 하나인 『아리랑』은 옌안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을 취재하여 쓴 책이다.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족] 또 다른 대지
『대지』/에밀 졸라/문학동네/2021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작품 중에도 『대지』가 있다. 원어 제목의 뉘앙스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번역본 제목은 펄 S. 벅의 『대지』와 똑같다. 그러니 중국의 ‘대지’와 프랑스의 ‘대지’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제목만 같지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소재나 주제의식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의 '대지'는 아름답고 풍요롭지만 탐욕과 증오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소설은 주인공 장 마카르가 곡창지대인 보스평야의 한 마을 드넓은 땅에 씨를 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묘사는 아름답지만, 왠지 조금은 불안한 느낌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느낌이 ‘현실’이 된다. 전혀 그런 뉘앙스가 없지만, 독자로 하여금 다가올 그 ‘무엇’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서술, 그것이 거장의 솜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은 참전용사로 무대가 되는 로뉴 마을에서는 ‘흘러 들어온’ 이방인이다. 그는 리즈와 프랑수아즈라는 마을의 자매와 가까워진다. 언니인 리즈를 사랑하지만, 이뤄지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수아즈와 결혼하지만, 모든 것은 비극으로 끝난다.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이 사랑과 우정과 가족 간의 우애를 모조리 집어삼켜버리는 것이다. 사촌끼리 결혼을 하고, 그 남편은 또 다른 사촌인 처제를 겁탈하고, 그것을 언니가 돕고, 급기야는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법적인 상속 절차를 마치고 땅을 차지하자 그 땅을 물려준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들… 이 모든 것이 로뉴 마을을 통과하는 간선도로가 개통되면서 땅 값이 치솟은 데 따른 비극이다. 결국 신성했던 어머니 ‘대지’는 세속적인 ‘재산’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주인공 장은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전쟁터로 떠난다. 드넓은 대지에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광경을 뒤로한 채…
『대지』는 1887년 출간 당시 존속살해, 근친상간, 가족 학대 등 금기와 폭력이 난무하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요즘말로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이니 그럴 만 도 하다. 땅은 농부에게 삶의 터전이자, 기쁨의 원천이고, 인생의 무대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신성한 존재’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농부는 묵묵히 땀을 흘리고, 겸허하게 기도하고(밀레의 그림 「만종」을 떠올려보라), 소박하게 쉼을 누리는 아름다운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그것을 뒤집어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드러내 버린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장은 그런 인간 막장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해탈에 이른 ‘성자’인가. 씨를 뿌린다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이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다시 인간을 품고, 생명을 품는다.
펄 벅의 ‘대지’가 유유히 흐르는 대하(大河)라면 에밀 졸라의 ‘대지’는 소용돌이치는 격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