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책 대충 읽기 3계명

대충 읽고 깊이 사유하기

by 제이슨

이 연재는 어떤 거창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따라간 책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나는 책을 대충 읽는다.

내가 말하는 ‘대충’이란 ‘가볍게’, ‘편하게’, ‘부담 없이’ 등 긍정적인 의미다. 바꿔 말하면 읽고 있는 책에서 뭔가 대단한 보물을 캐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것이 내에게 줄 어떤 유익을 애써 찾지 않는다. 그럼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읽는 것 자체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남긴 이런 뜻을 담은 금언도 있으니, 이것이 나만의 생각도 아니고, 크게 틀린 생각도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독서 불구심해(好讀書 不求甚解). 책 읽기를 좋아하되 심오한 해석을 구하지 않는다.”

4~5세기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남긴 말이다.


둘째로는 무슨 책이든 읽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는다.

책 한권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대충’ 읽으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책이란 것은 저자가 어떤 이야기나 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완성시킨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어떤 유기체와 같다. 그러므로 끝까지 읽었을 때 비로소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끝까지 읽으면, 신기하게도 그 책의 윤곽이 내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자리가 잡힌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던 철학서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전체 흐름이 한눈에 보일 때가 있다.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책을 느슨하게, 그러나 끝까지 읽는다. 도연명이 말한 것처럼, ‘좋아하되 깊이 파지 않는 것’은 오히려 더 넓고 멀리 가는 길이 된다.


셋째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다.

앞서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그 책 내용의 윤곽이 잡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거기에서 파생되는 흥미 꺼리나 이어가고 싶은 주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그 꼬리를 계속 잡고 가면 멋진 서사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유익해서 ‘수도원’에 관한 책에 흥미가 끌렸다. 그래서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이 손에 잡혔다. 거기서 다시 중세의 시대상이 궁금해서 ‘중세의 가을’이란 책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르네상스에 관해서, 거기서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에 대하여, 거기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대하여, 거기서 유대인의 운명에 대하여, 거기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로, 거기서 오늘날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시대를 다룬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로…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나간다.

신간 안내나 책 소개 등 아무 도움이 없어도 읽을 흥미진진한 책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알고 보면 ‘명저’들이다. 즉 저절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의 책 읽기 3계명은 ‘대충’, ‘끝까지’, ‘꼬리를 물고’이다.


나는 대단한 독서가도 아니고, 깊이 있는 교양인도 못된다. 그냥 책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게다가 ‘편식’도 아주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독서 경험을 나누려고 하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편식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외국 소설과 세계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기엔 수천 년에 걸친 삶의 냄새와 세계가 담겨 있다. 내 독서란, 말하자면 문명 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이다.

외국 소설을 통하여 세계 각국을, 그것도 여러 시대에 걸쳐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세계 각국의 역사나 풍물 등을 다룬 논픽션이나 가벼운 학술 서적 등도 읽는다.

국내 소설은 외국 소설에 비해서는 많이 읽지 않는다.

반대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자기계발서다. 공감이 가지 않아서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의 책을 읽고 그의 사례를 따라한다고 해서 그처럼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 인간 관계를 잘 맺는 법, 돈을 잘 버는 법 등등의 책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배우고 실천해 봐도 제대로 안 되더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책읽기는 ‘중구난방’이다. 중세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에서 이란으로 이란에서 튀르키예로, 튀르키예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아 참, 시작은 중국이다.

아무튼 이렇게 중구난방 책을 읽다 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어느덧 내 머리 속에 거대한 문명사의 그림이 그려졌다. 만약 이걸 공부라고 생각하고 한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일 터이다. 무슨 학자처럼 이론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그냥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자리잡은 것이다. 대충 읽은 것이 쌓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류 문명사의 한 줄기 거대한 흐름을 접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도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지, 나에게는 또 하나의 삶, 또 하나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은퇴해서 책읽기가 더 자유로워졌으니, 두배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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