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성인이거나,
완전히 악마이거나

러시아 감성 – 여행 2제

by 제이슨

『어느 시인의 죽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2024 / 까치

『닥터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열린책들/2022

『제일권』/알렉산드르 솔제니친/분도출판사/1973(절판)


캄캄한 광야를 질주하는 트로이카


전쟁은 그칠 줄 모른다. 왜 꼭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전쟁이 계속될 뿐이다.

2024년 2월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장이 되어버린 곳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은 한 순간에 깨졌다. ’가지런한 삶’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현듯 죽음이 덮치고, 집이 불 타 없어지며, 끼니를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나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색(제23화 「바랄 수 없을 때 바라는 행복」)은 정신적 ‘사치’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절실한 물음이 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는 ‘침략’이라고 했고,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가 불러일으킨 안보 불안, 우크라이나의 민족 문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오랜 갈등의 역사 등등 전쟁을 불러온 온갖 원인이 설명되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뿌리가 같은 민족이고, 그래서,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까지 하지 않을 이유가 해야 할 이유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도대체 러시아는 어떤 민족이고, 어떤 나라인가? 왜 서방 세계에서는 악마 같은 존재가 되어 있을까? 이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집권자 한 사람의 성향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를 가장 깊이 있게 사색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는 러시아를 이렇게 묘사했다.


“러시아 영혼에는 끝없는 이중성이 있다. 완전히 성자이거나, 완전히 악마이거나. 중간이 없다.”


그 자체가 ‘히즈라’인 인도(제22화 「인도, ‘신의 나라’의 인간」)에 비견되는 이중성, 또는 다면성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적 특성은 여기에 극단성이 더해진다. 그래서 러시아는 종종 “캄캄한 밤에 등불도 없이 광야를 질주하는 ‘트로이카’”로 비유된다. 광활한 대륙의 무한질주다. 그래서 “목적지도 없이 메시아적 망상과 파멸 사이를 내달리는 러시아”(베르자예프)란 것이다.


그 이중성을 우리는, 사실은, 이미 익히 잘 알고 또 접하고 있다. 발레 음악 미술 문학 등 러시아 예술은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감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폭력과 침략으로 악명 높다. 하기야 독일의 높은 지성에서도 히틀러의 ‘전대미문의 대학살’이 탄생했으니(제8, 9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지성, 감성과 ‘악마적’ 만행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짐짓 ‘만행’에는 눈을 감고, ‘감성’만 따라가 본다. 누가 알겠는가? 그 속에 어떤 뜻하지 않는 답이 있을지.


마르부르크에서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마르부르크(Marburg).

독일 중서부 헤센(Hessen) 주에 위치한 유서 깊은 대학 도시다.


마르부르크 역에 내린 것은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소박한 역, 번잡하지 않은 시가지, 독일 특유의 음울한 겨울 날씨, 게다가 일찍 해가 진 탓에 캄캄했다. 그나마 어둠 속에 밝혀진 가로등이 유달리 따뜻해 보였을 뿐, 그 외에는 무엇 하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여독’이랄 것도 없었다. 열차는 편안했고, 대학 기숙사 소파였지만, 잠자리도 불편하지 않았다. 느긋한 아침. 길을 나섰다. 구시가지를 통해 언덕을 오른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

언덕을 다 오르면 성(城)이다. 헤센 대공(大公)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과 전시공간으로 사용된다.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은 대공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다. 1529년 바로 이곳에서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가 신학 논쟁을 벌였던 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개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다. 성은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다.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풍광은 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다.


Marburg성과 교회.jpg 마르부르크 성(城)과 성(聖)엘리자베스교회

성(聖)엘리자베스 교회는 1235년 착공, 1283년에 완공된 독일 초기 고딕양식 건축물이다. 16세기 종교개혁 후 헤센주가 루터파로 개종하면서 루터교회가 되었고, 지금은 복음주의 연합교단의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성(聖) 엘리자베스

성엘리자베스는 헝가리의 왕녀다. 그런데 왜 이 마르부르크에서 숭배될까? 그녀는 튀링겐의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해 독일로 왔지만 일찍 남편을 잃었다. 그 후 이곳 마르부르크에서 병원과 구호소를 세우고, 프란치스코회의 ‘청빈’을 실천하면서 자선을 베풀다가 1231년 2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로써 평신도 여성 자비의 화신으로 1235년 시성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가톨릭의 순례지가 되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좁고 집이 다닥다닥 붙어 정겹기 짝이 없다. 걷다가 멈춰 서면 어느 집 대문 앞이지만, 그 앞집의 지붕이 발 밑에 있는 것 같다. 한 구비 돌면 또다른 집 대문이고, 그 앞집 지붕이다. 발에 밟히는 돌 포장길의 약간 우둘투둘한 감촉이 걷는 맛을 더한다.


긴 ‘산책’을 마치고 언덕 한 켠에 자리잡은 전망이 탁 트인 카페 창가에 앉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겨울 날씨에 갑자기 실내로 들어오니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달그락거리는 찻잔 소리, 구름 덩어리처럼 공간에 떠도는 나지막한 ‘대화 뭉치’, 차와 커피의 뒤섞인 향 등이 따뜻한 공기와 하나로 버무려져 방향 스프레이처럼 얼굴에 훅 끼쳐온다. 그리고 들려오는 귀에 익은 피아노 연주. 아늑하면서 달콤한 감성에 푹 빠진다.

그런데 음악이 아무래도… 설마? 혜은이? ‘감수광’? 여기는 독일, 마르부르크인데? 기숙사 방을 내줬던 친구 설명으로 납득했다. 이 카페에서 시간제로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인 유학생. 꼭 한번씩은 한국 가곡이나 가요를 피아노 편곡으로 연주한다는 것이다. 고단한 유학생활 향수를 달래는 묘약인가 보다.


마르부르크 – 한국인에게 아주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다. 중세 느낌의 도시 구조와 경관, 하늘을 찌르는 고딕 양식 성(聖)엘리자베스 교회,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마르부르크 성(城), 오랜 자유주의 전통을 간직한 대학이 있는 곳. 이 정도가 사실상 관광명소의 전부다. 느긋하게 아침 먹고 걸어서 슬슬 돌아다녀도 하루면 된다. 내가 갔을 당시 인구는 6만 명 내외. 그 중 대학생과 교직원이 4만 명이었다고 한다.


『어느 시인의 죽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2024 / 까치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1890~1960)

그는 시인이다. ‘닥터 지바고’는 1957년 완성한 생애 유일 장편소설이다. 소련에서 출판이 금지돼 이탈리아에서 책을 펴냈고, 이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국외 추방을 면하려고 수상을 포기했다. 그만큼 그는 조국 러시아와 모스크바를 사랑했다.


내가 독일의 다른 모든 도시를 젖혀두고, 가장 먼저, 꼭 가고 싶어했던 것은 바로 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때문이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이 너무 아름다웠고, 스무 살의 보리스는 열병처럼 마르부르크를 원했었다. 그 열병이 내게 옮았던 것일까.


보리스의 아버지 레오니드는 유명한 화가이고, 어머니 로자는 피아니스트였다. 예술 ‘금수저’인 셈이다. 10대의 보리스는 음악에, 20대 초의 보리스는 철학에 온 몸과 정신을 던진다. 그리고 마침내 시를 통해 그 모든 것이 꽃으로 피어난다. 그 뜨거운 모색과 열정이 『어느 시인의 죽음』에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농축되어 있다.


책은 1900년 여름 쿠르스크 역을 떠나는 급행열차에서 “검은색 티롤 케이프를 걸친 남자가 차창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때 보리스는 10살. 그가 부모와 독일어로 나누는 대화에 어린 보리스는 끼어들지도 못하지만, 이 만남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후일 그 남자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음을 알게 된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숙명처럼 느껴지는 만남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스크리야빈에 대한 흠모와 음악에 바친 열정으로 이어진다. 보리스는 자작곡을 ‘스승’ 스크리야빈 앞에서 연주한다. 그의 평가는 좋았지만, 보리스는 고통스럽게 음악과 이별한다. 그리고 신칸트주의 철학에 빠져들면서 헤르만 코헨 교수와 마르부르크를 흠모해 유학을 감행한다. 마르부르크의 젖줄 란 강과 시가지가 굽어 보이는 언덕 위의 싸구려 하숙집에 살면서 논문을 완성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철학을 포기하고 시인의 길로 돌아온다.


여기에 첫사랑과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이별(애써 그렇게 묘사한 것일까?), 그리고 마르부르크 이후 베네치아 여행을 거쳐 모스크바에서 펼쳐지는 문학 여정과 또 다른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이 이어진다. 책 제목에 나오는 ‘어느 시인’은 바로 이 마야코프스키를 가리킨다.


한국어 번역본은 ‘까치글방’에서 1977년 11월 초판이 나왔고, 2024년 10월 3판 5쇄까지 나왔다. 뒤에 그의 단편소설 4편과 해설이 붙어서 책이 좀 두꺼워졌지만,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 본문은 120여 쪽에 불과하다. 그러나 빠르게,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철학적이고 함축된 언어로 사물과 심리가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문이지만 시를 읽는 것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스물 셋의 나는 이 책을 읽다가 가보지도 않은 마르부르크에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다.

마르부르크에 도착한 첫날 느낌을 보리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목을 길게 뽑고 두리번거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시청과 800년 묵은 고성, 그리고 대학교의 석조 조형물이 3층을 이루며 어지러울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이 솟아 있었다….나는 기차에서 객실에다 넥타이와 더불어 내 모든 세상살이를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했지만, 그것은 이제 옷걸이나 화물 선반이나 재떨이처럼 무의미한 사물이 되었다. 시계탑 위로는 구름들이 흥겹게 거닐었다. 구름에게는 이곳이 낯익은 곳인 듯싶었다. 하지만 구름 또한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 보금자리를 지키는 구름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낮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밑으로 펼쳐진 평원의 고요함과 교감했다. 그들은 내가 느끼는 경이감을 타고 높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늘의 침묵에서 땅의 침묵으로 라일락의 향기가 피곤한 듯 물결치며 내려왔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새들이 지저귀었다. 나는 근처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지붕의 윤곽은 호기심으로 가득해서 물었다 – 이것은 모두 어떻게 끝나려는가?
도로들이 괴이한 난쟁이처럼 절벽 밑에 매달렸다. 언덕을 타고 골목집들이 촘촘히 들어섰다. 집들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넓게 지어서, 튀어나온 대들보 위에 공간이 들어섰고, 길 양편에서 마주보는 집들은 처마가 서로 닿을 듯해서, 길 위로 서로 손을 내민 듯한 인상을 주었다. 길은 포장을 하지 않았다. 마음 놓고 편히 돌아다닐 그런 길은 아니었다.(pp.44~45)


이렇게 나의 마르부르크 여행은 파스테르나크에서 시작해 혜은이로 끝났다. 뭔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기억에 남게 되었을 것이다. 파스테르나크의 흔적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파스테르나크 스트랏세(Pasternak Straße)‘라는 도로명 외에는.


『어느 시인의 죽음』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음악에의 열정을 불태우다가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마르부르크로 떠나기가지의 시기를 그린다.

파스테르나크는 부모의 예술혼을 이어받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감수성과 열정이 대단한 소년이었다. 문학과 음악을 다 좋아했지만, 처음에는 음악에 열정을 바친다. 그러나 흠모하던 스크리야빈은 그의 자작곡을 들은 후 미묘한 평가를 해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칭찬으로 듣고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예민한 파스테르나크는 그 뉘앙스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서서히 음악과 작별을 고한다.


사춘기를 갓 넘긴 그의 열정은 시(詩)와 철학을 향한다. 열정적인 모색과 습작을 계속하지만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부과한 기준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철학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이때 접한 것이 마르부르크 학파(신칸트학파)이고, 그 창시자인 헤르만 코헨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마르부르크 대학이 아닌 마르부르크란 도시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매혹된다. 그리고 과감하게 유학을 떠난다.


제2부는 마르부르크 대학 코헨 교수 아래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다시 시(詩)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논문도 호평을 받았다. 이제 박사 논문을 손보고 있다. 이때 과거 자신이 과외선생으로 가르쳤던 여학생의 자매가 여행을 왔다가 그를 만난다. 소녀가 여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렇게 자매는 떠나는데, 역에서 작별인사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출발하는 기차에 뛰어오른다.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 베를린까지 함께 여행하고 혼자 마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리고 논문을 검토하다가 또 좌절한다.


내 사고는 철학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문학적 감동에 이끌려 전개되었다. 비록 내 일이 논리와 상상력과 종이와 잉크를 통하여 성취되기는 했어도, 그 성취의 과정에서 내가 쓴 글은 문학적인 표현의 인용이나 비유 따위로 잔뜩 치장이 되었다.(p.52)


그렇게 학위를 포기해 버리고 귀국길에 오르기 전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다. 이 여행은, 특히 베니스는,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그의 예술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제3부는 ‛어느 시인‘, 즉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흠모의 정과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당시의 여러 시인 작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선배‘ 시인으로는 알렉산드르 블록(1880~1921)을, 동시대 시인으로는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1893~1930)를 각별히 꼽는다. 특히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애정은 여인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애절하다. 물론 이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시인으로서의 우정이다. 마야코프스키가 읽어주는 시를 들을 때 자신의 모습을 파스테르나크는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나를 완전히 잊고, 내 온 마음을 바치며 열광의 상태에서 그 시를 들었다. 나는 일찌기 그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큰길과, 개와, 대리석과, 나비와, 이발사와, 빵집 주인과, 양복점 사람들과, 엔진이. 왜 내가 그런 것들을 여기에 나열하는가? 지금은 누구나 그 시집의 10판은 사서 읽을 수가 있으며 그 안에는 더위에 짓눌린, 신비한 여름의 애기가 있음을 다 알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흰 철갑상어처럼 요란히 달려갔다. 그의 시에는 멀고 먼 지평선에서 들려오는 듯한 거친 :외침이 담겨 있었다. 그 안에는 심오한 행동이, 독창적인 창조와 무한의 원천이며 삶의 모든 순간과 연결이 되는 행동이, 그것이 없으면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풀이할 수 없는 혼이 거기에 있었다.(p.96)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나는 마야코프스키를 신격화했다. 나는 내 영혼의 꿈이 실현되어 인간이 된다면 그것이 곧 마야코프스키라고 생각했다.


어느 시인이 동시대의 다른 시인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마야코프스키는 1930년 4월14일 권총으로 자살한다.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코프스키의 내면에 일렁이는 갈등을 보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시(詩)에 자신의 생명을 쏟아부으면서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부치고 있었던 것이다.

마아코프스키(앞줄 왼쪽)와 파스테르나크(뒷줄 왼쪽). 앞의 여성은 마야코프스키의 애인 릴리 브릭이다.

이렇게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했지만, 사실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자전적 에세이로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삶과 어떤 사건보다는 내면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포기하는 장면,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 철학을 포기하는 장면,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흠모, 그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장면 등 장면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통스럽게 그려지는지, 그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또 한가지 난관은 시(詩) 그 자체다. 사실 파스테르나크를 중심으로 블록, 마야코프스키 이 3자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알렉산드르 블록은 상징주의 시인으로 그의 시는 약간은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느껴지며 묵시록적이다. 반면에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는 미래파 시인으로 때로는 다이내믹하고 때로는 포효하는 듯한, 그래서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파스테르나크는 탈(脫)낭만주의적이지만 특정 유파의 범주에 넣기는 곤란하다.

이들 세 시인의 공통점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 제정(帝政)의 붕괴, 볼셰비키 혁명 등을 거치는 격변 속에서 겪는 섬세한 지성의 고통이다. 혁명은 그들에게 의구심은 있었지만, 일단은 새로운 시대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블록은 거기에 묵시록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마야코프스키는 당(黨)에 의해 '계관'된다. 이런 상황에서 깊어지는 시인들의 고뇌는 히틀러의 광기를 바라보는 독일 지성인들의 당혹감과 비교된다.(제8, 9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건배를 1, 2」)

이해를 돕기 위해 파스테르나크 시 2편과 마야코프스키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파스테르나크의 시]


《Февраль. Достать чернил и плакать/2월. 잉크를 열고 울다》


Февраль. Достать чернил и плакать!

Писать о феврале навзрыд

Пока грохочущая слякоть

Весною чёрною горит.


Достать пролетку. За шесть гривен.

Через благовест Через клик колёс.

Перенестись туда, где ливень

Ещё шумней чернил и слёз.


Где, как обугленные груши,

С деревьев тысячи грачей

Сорвутся в лужи и обрушат

Сухую грусть на дно очей


Под ней проталины чернеют,

И ветер криками изрыт,

И чем случайней, тем вернее

Слагаются стихи навзрыд


2월. 잉크를 열다. 그리고 울다!

터져 나오는 오열로 2월을 쓰다.

울부짖는 듯한 진창이

검은 봄으로 불타는 동안…


마차를 불러라. 6그리브나(옛 화폐단위).

기도 청하는 교회 종소리, 수레바퀴 신음 그 너머

그곳으로 가라. 난폭한 소낙비가

잉크와 눈물보다 훨씬 더 요란한 그곳으로.


거기, 불타버린 배처럼

수천의 갈가마귀 그 나무에서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파헤친다

눈동자 속 밑바닥까지 말라버린 슬픔을.


그 아래 눈 녹은 땅 조각 거뭇하게 제 몸 드러낸다.

바람은 비명처럼 휘몰아치고

우연일수록 더 진실함으로
시의 행렬이 터져 나오듯 짜여간다.


《Во всём мне хочется дойти/모든 것에서 나는 다다르고 싶다》


Во всём мне хочется дойти

До самой сути.

В работе, в поисках пути,

В сердечной смуте.


До сущности протекших дней,

До их причины,

До оснований, до корней,

До сердцевины.


Всё время схватывать нить

Житейских передряг,

Быть, сущность всего постиг,

Земли и неба.


Я хочу понять судьбу

И слово, и дух,

Чтобы жить, чтобы любить,

Чтобы слышать и видеть.


모든 것에서 나는 다다르고 싶다,

최후의 그 본질에까지.

일 속에서, 길을 찾는 갈망 속에서,

마음의 혼돈 속에서.


지나버린 나날의 본질까지,

그 모든 것의 원인에까지,

그 기초까지, 그 뿌리까지,

그 한가운데까지.


삶의 모든 번뇌의 실타래를

줄곧 움켜쥐고

존재하고, 이 땅과 하늘의 모든 것

그 본질에 이르기를…


나는 운명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말을, 또 그리고 정신을

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듣게 되고 또 보기 위해.


[마야코프스키의 시]


《Послушайте!/들어라! 》


Послушайте!
Ведь, если звезды зажигают –
значит – это кому-нибудь нужно?
Значит – кто-то хочет, чтобы они были?
Значит – кто-то называет эти плевочки
жемчужиной?
И, надрываясь
в метелях полуденной пыли,
врывается к Богу,
боится, что опоздал,
плачет,
целует ему жилистую руку,
просит –
чтобы обязательно была звезда! –
клянется –
не перенесет эту беззвездную муку!
А после
ходит тревожный,
но спокойный наружно.
Говорит кому-то:
«Ведь теперь тебе ничего?
Не страшно? Да?!»
Послушайте!
Ведь, если звезды
зажигают –
значит – это кому-нибудь нужно?
Значит – это необходимо,
чтобы каждый вечер
над крышами
загоралась хоть одна звезда?!


들어라!
별들이 불을 켜는 것은
이것이 누구에게든 필요하다는 뜻 아닌가?
누군가 저렇게 불이 켜지길 원한다는 뜻 아닌가?

누군가 그 빛의 조각을 진주라고 부른다는 뜻 아닌가?
그리하여, 한낮 먼지 폭풍을 뚫고 나와
신(神)에게 달려가
이미 늦었을까봐 떨면서,
울면서,
힘줄 돋은 손에 입맞추면서
애원한다
별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고!
절규한다

별 없는 이 고통을 참을 수 없다고!
그러고는
짐짓 태연하게

그러나 불안으로 서성인다.
누군가에게 말한다:
“이제 괜찮지?
무섭지 않지? 응?!”
들어라!
만약 별들이
불을 켠다면—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뜻 아닌가?
그래서, 매일 저녁
지붕 위 어딘가에
별 하나라도
밝혀져야만 한다는 뜻 아닌가?!


『닥터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열린책들/2022


여러 출판사에서 낸 번역본이 나와 있다.

1957년 작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 그리고 무자비한 독재라는 엄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형해화되고 파편화되는 섬세한 개성과 지성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시적, 철학적 언어로 그려낸 대서사시라 할 만한 작품이다.

1965년 데이비드 린 감독, 오마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국내 상영은 1968년. 그러나 영화는 사랑에 초점을 맞춘 멜로드라마 성격이 너무 짙어 원작의 극히 일부만 표현했을 뿐이란 비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도 명작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라라와 지바고의 로맨틱한 사랑을 기대한다면, 소설에서는 실망할 수 있다. 반대로 소설에서 보았던 격동의 세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엇갈리고 신음하는 인간드라마를 기대한다면, 영화에 실망할 수 있다. 라라의 러브스토리는 이 작품의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중심 테마는 아니다. 「열린책들」판을 기준으로 이 책은 상, 하 2권으로 합쳐서 본문이 1천 쪽이 넘고 총 17부로 구성된 대작이다. 거기에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에 집중하는 부분은 대략 1백여 쪽, 2개 부 밖에 안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또 바로 이 부분이 전체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즉 러브 스토리를 러브 스토리 이상의 그 무엇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러시아 제국의 붕괴에서 볼셰비키 혁명에 이르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905년 혁명으로 러시아는 명목상 입헌군주제로 이행했으나, 곧이어 반동정치로 혁명 세력을 탄압, 제정(帝政)은 극심한 사회적, 정치적 혼란 속에서 간신히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러시아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를 거의 파국으로 몰아갔다. 전선에서는 군수품이 부족했고, 후방에서는 생필품과 식량이 부족했다. 이에 극에 달한 국민 불안이 터진 것이 1917년 2월 혁명이다. 제정은 무너지고, 케렌스키가 주도하는 임시정부가 들어선다.

그러나 케렌스키 정부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민심 이반과 군부의 지지 이탈에 직면한다. 국민은 전쟁 종식과 황제 니콜라이 2세 처형 등을 요구하지만 케렌스키 정부는 이를 외면한다. 전선에서는 수백만 명이 탈영하고, 후방에서는 시위와 파업이 계속된다. 마침내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을 일으켜 무력으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잡는다.


보통 우리는 이로써 소련이 성립되어 공산당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보통 사람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더 처절한 희생이 남아있다. 바로 내전이다. 볼셰비키와 반볼셰비키 간의 내전은 혁명 직후 시작되어 1922년까지 계속되었다. 『닥터 지바고』는 이 시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내전 시기가 주요 배경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주요 작중 인물들의 배경과 시대 상황을 그리는 ‘서막’이다. 주인공은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이다. 애칭은 유라. 그는 몰락한 백만장자 귀족 가문 출신이다.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하고 자살했다. 지바고는 외삼촌에 의하여 대학교수인 그로메코 씨 집에서 성장한다. 그는 환속한 신부로 철학자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해석에 바탕을 둔 진보적 이상주의 성향의 의사가 되고, 그로메코 씨의 딸인 안토니나 알렉산드로브나(애칭 토냐)와 결혼, 아들 알렉산드르(애칭 사셴까 또는 슈라)를 얻는다.


라라는 라리사 기샤로바의 애칭이다. 라라의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양장점을 운영한다. 이들의 후견인 격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죽은 라라의 아버지 친구인 코마로프스키라는 ‘비열한’ 변호사다. 훗날 라라와 결혼하게 되는 파벨 파블로비치 안티포프(애칭 파샤)는 철도 기술자의 아들로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라라와 알고 지냈고, 그녀를 깊이 사랑한다.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전쟁과 혁명, 그리고 내전의 참혹한 현실이 펼쳐진다. 내전은 전쟁보다 더 참혹하다. 적군과 백군이 교대로 점령하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에 집은 불타고 농민들은 도망자가 된다. 병사들은 전투에 내몰리고, 그 가족들은 각각 상대방의 복수와 박해를 피해 떠돌아 다닌다. 가족의 안위에 노심초사한 나머지,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전사는 미쳐버리고, 아내와 자녀를 자기 손으로 목을 베어버린다. 지성인은 지성인의 방식으로,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방식으로 미쳐간다. 이상도 이념도 현실의 참혹함 앞에서 잔인한 미망(迷妄)일 뿐이다. 그 처절한 사연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다.



라라와 코마로프스키는 첫 부분의 중요한 캐릭터다. 코마로프스키는 라라의 어머니 아말리아 기샤로바가 남편을 잃고 모스크바로 이주할 때 양장점과 거처를 마련해주는 등 도움을 주고 그녀를 자신의 정부로 삼는다. 그러면서 라라를 범한다. 라라는 십대 학생이지만 아름다운 얼굴에 벌써 치명적인 여인의 매력을 발산한다. 코마로프스키는 라라에게 빠지고, 라라는 이 역겨운 관계에 어쩔 수 없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뿌리치지 못하고 얽혀간다.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능욕당하는 순결한 영혼’이다. 그러므로 라라는 러시아다. 비열한 호색한 코마로프스키는 러시아의 또다른 얼굴이다. 앞서 소개한 ‘완전히 성자이거나, 완전히 악마’라는 베르자예프의 ‘선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역겹고 저주스럽지만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라라의 모습 또한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러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전환점은 있다. 라라가 큰 사고를 치는 것이다. 파티 자리에서 권총으로 코마로프스키를 쐬버리는 것이다. 물론 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주 경미한 상처를 입히는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코마로프스키는 완전히 두 손을 들고, 아주 ‘품위 있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라라를 도와준다. 변호사로서, 또한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무마하고, 금전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그가 개과천선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로써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흠이가고, 커리어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두번째 주요 에피소드는 지바고와 파벨, 즉 라라의 남편의 만남이다.


권총 사건 후 라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역시 학업을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한 파벨과 결혼해 꿈꾸던 우랄 지방, 유랴틴에 교사로 부임한다. 라라는 당초 자신의 ‘더럽혀진 몸’에 대한 죄책감으로 파벨에게 이별을 통보했으나, 파벨은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둘은 행복했지만, 파벨은 라라의 고백으로 이미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이때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전선에 나가있는 상황이다.


파벨은 라라와 함께 행복했지만, 늘 그늘이 있다. 라라의 상처와 그로 인한 파벨의 상처, 그리고 서로 다른 이상이 둘 사이를 ‘위선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파벨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위선’으로 느껴졌다. 그 돌파구로 파벨은 입대를 선택한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입학허가를 받은 것이다. 라라는 자신이 파벨에게 모성애적 사랑 ‘일부’를 퍼부었고, 파벨은 거기에 반발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파벨도 전선으로 나가고, 얼마 후 소식이 끊어진다.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라라는 파벨을 찾기 위해 간호사 자격을 따고 전방으로 간다. 그곳에서 지바고를 만나다. 지바고와 라라는 이미 학창 시절 모스크바에서 서로 본 적이 있다. 지바고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다.


파벨과 지바고의 만남은 내전시기에 이뤄진다. 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은 끝났다. 이어 내전이 벌어졌다. 라라와 파벨 부부가 살았던 유랴틴은 지바고의 아내 토냐의 외갓집 영지가 있는 곳이다. 토냐나 지바고는 구시대의 귀족이고, 특히 토냐의 친정, 즉 지바고의 처가는 부자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들은 지위가 불안하다. 언제 신변에 위해가 닥칠지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유랴틴 인근 영지 바리키노로 피난을 간다.


모스크바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기차로 가는 여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폭설로 막힌 길을 뚫기 위해 모든 승객들이 제설작업을 하기도 하고, 전선이 가까워지면서 이유없이 정체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지바고는 산책 중 적군 초병에게 걸려 끌려가 스트렐리니코프라는 유명한 지역 사령관을 만난다. 그는 기차 객차를 사무실과 숙소로 쓰고 있다. 그가 바로 라라의 남편 파벨이었다. 그는 혁명이 일어난 1917년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 고국에 돌아와 적군에 합류했고, 탁월한 사고력과 열정으로 반볼셰비키 백군에 여러 차례 혁혁한 승리를 거둬 유명한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냉철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지만, 볼셰비키 당원이 되지는 않았다.


이 만남은 다음, 마지막 만남을 예고한다. 라라가 ‘능욕당하는 순결한 영혼 러시아’라면 지바고와 스트렐리니코프는 그 러시아를 사랑하는 러시아인의 양면이다.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라라와 지바고의 짧은 행복이다.

「닥터 지바고」 영화 포스터

라라는 유랴틴의 집으로 돌아와 딸을 데리고 외롭게 살고 있다. 지바고는 토냐와 아들, 그리고 장인과 함께 유랴틴 인근의 바리키노에 도착해 농사를 지으며 은둔하고 있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가끔 유랴틴 시내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책을 읽는다. 바로 거기서 우연히 라라를 보게 된다. 그리고 라라의 집을 알아내 찾아가고,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사랑은 길지 않다. 어느날 지바고는 적군 편에서 싸우는 파르티잔(유격대 또는 민병대)에 납치되어 본의 아니게 군의관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볼셰비키가 대부분 지역에서 백군을 물리치면서 권력을 다진다. 파르티잔 부대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던 지바고는 기회를 잡아 탈출한다. 그렇게 먼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유랴틴 라라의 집에 도착한다. 라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그렇게 지바고와 라라는 재회한다.


상황은 나쁘다. 지바고의 가족들은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가 해외로 추방되었다.(당시 볼셰비키는 반볼셰비키 주요 지식인과 귀족 등을 대거 해외로 추방했다) 지바고는 볼셰비키의 숙청 대상이다. 어물거리다가는 체포되어 처형당할 수도 있다. 지바고와 라라는 라라의 딸 카텐카를 데리고 바리키노로 숨는다. 그러나 뗄감, 식량 모두 겨울을 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이 행복이 한달도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더욱 애틋하게 사랑을 나눈다. 지바고는 아내 토냐에 대한, 라라는 스트렐리니코프로 알려진 남편 파벨에 대한 의무와 사랑을 서로 솔직하게 토로한다. 가족과 서로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진실하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사랑 또한 더없이 순수하고 절절하며, 진실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둘은 이미 예감하고 있다. 이제 영원한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라라는 떠나고 지바고는 홀로 남는다. 회한에 몸부림치면서. 하필 라라를 ‘구출해서’ 데리고 떠난 사람은 바로 그 ‘비열한’ 코마로프스키다. 물론 그 역겨운 관계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되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바고와 스트렐리니코프의 만남.

이것이 러시아의 운명이다. 라라와 파벨, 지바고와 토냐, 라라와 지바고, 지바고와 파벨, 그리고 코마로프스키. 지고의 사랑과 의미 없는 듯한 희생, 그리고 증오. 그 끝없는 길은 만났다가는 멀어지고, 얽혔다가 풀리는 영원한 실타래다.



『닥터 지바고』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이면서, ‘어머니 러시아’, 그 ‘능욕 받은 순결한 영혼’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 어쩌면 먼 미래에 이루어질 지 모르는 사랑을 그린다. 이는 러시아를 능욕한 소련 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힌다. 공산당 정권은 그 ‘날카로운 비수’를 알아차리고 작가를 탄압한 것이다.

지바고는 파스테르나크 자신이다. 그가 설파하는 예술론, 혁명에 대한 생각, 작품 말미에 붙은 ‘지바고의 시’는 모두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것이다.

지바고는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와 과학이라고요?…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자제심이 부족합니다. 과학은 균형 감각이 있지요. 마르크스주의와 객관성이요? 저는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자기 안에 고립되어 있고, 사실에서 먼 경향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각자가 경험 위에 자신을 검증하려고 애쓰는데 자신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한 우화를 만들기 위해 권력에 앉은 자들이 온 힘을 다해 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제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싫습니다.”


담배 한 모금


담배 한 개비.

인간의 고통과 체제의 냉혹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한 여인의 담배 연기.

‘벨로모르’!

‘벨로모르(Беломор)’란 '백해(White Sea)'란 뜻이다.

옛 소련 담배 이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담배일까?

거기에는 한 여인의 회한과 절망, 짓누르는 삶의 고통,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벨로모르'란 ‘백해운하’라는 뜻의 '벨로모르까날(Беломорканал)'을 줄인 말이다. ‘백해운하’, 즉 백해-발트해운하(Беломорско-Балтийский Канал)는 이름 그대로 백해와 발트해를 잇는 총 연장 227km의 운하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우회해야 하는 바닷길을 6,000km나 단축시켜준다. 소련이 신속하고 자유롭게 함대를 이동시키기 위한 전략적 목표로 건설했다. 건설기간은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강제노동수용소 수인들을 대거 동원해 공사가 진행되었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벨로모르까날_지도.jpg 지도에 빨간 선으로 표시된 것이 백해운하다.

담배 ‘벨로모르’는 이 운하 건설에 맞춰 1932년에 발매되어 소련의 서민 담배로 자리잡았다. 실제 담배갑에는 백해운하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 담배는 과거 우리나라 서민 담배 ‘새마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새마을’은 필터가 없다. ‘벨로모르’는 필터 자리에 속이 빈 원통 형태의 두꺼운 마분지 같은 것이 붙어 있다. 필터 대용물인 셈이긴 하지만, 그냥 뻥 뚫려 있어 아무 것도 걸러주지 못한다. 다만 너무 독하기 때문에 이 원통을 우그러뜨리면 그나마 조금 덜 독하게 피울 수 있다고 한다.

벨로모르 담배JPG.jpg


1990 ~ 91년 겨울. 모스크바.

냉전시대가 저물고 소련이 한국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소련 제국을 현장에서 봐야 했기에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고, 또 소련 전역을 여행했다. 그렇게 강행군을 하면서 오랜 숙원을 떠올렸다. 바로 '벨로모르'다.

우리 일행은 나와 현지인 가이드, 그리고 운전기사 등 셋이었다. 그때는 아직 공산당 집권 시절이어서 이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전화통에 매달리곤 했다. 어느 날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벨로모르' 이야기를 꺼냈다. 시내의 어느 가게, 키오스크에서도 그 담배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전설 속 유물처럼 자취를 감춘 듯했다. 가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나오기는 하는 걸로 아는데, 모스크바에는 아마 파는 곳이 없을 겁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한번 구해 보지요.” 그리고 이틀 후 그가 득의만면한 얼굴로 ‘벨로모르’ 한 갑을 내밀었다. 수소문 끝에 변두리 끝 키오스크 한 곳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나마 더 구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담배는 독했다.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며 음미한다. 연기를 내뿜으니, 십 수년 전 바로 그 여인 – 나쟈의 상념이 현실처럼 가슴을 채운다. 오랫동안 그리던 연인을 만난 것 같다. 행복하다.


『제일권』/알렉산드르 솔제니친/분도출판사/1973(절판)


『제일권(В круге Первом)』은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작품이다. 솔제니친하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 『암병동』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듯한 『제일권』을 제일 좋아한다.

‘제일권’이란 단테의 『신곡』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연옥의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게 배정되는 최상층부다. 즉 천국에 가장 가깝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굴라그 군도’, 즉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지옥에서 가장 바깥쪽 원, 즉 그나마 가장 대우가 나은 곳을 뜻한다.

주인공은 글렙 네르진. 그는 수학자로 개인적인 편지에서 스탈린의 전쟁(2차대전) 수행 방식을 비판한 것이 발각돼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의 아내는 나제즈다, 애칭 나쟈다. 나쟈는 남편의 수감 사실을 숨기고 대학에 다닌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수감자의 아내라는 신분이 언제 들통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은 ‘사치’에 가깝다. 발을 땅에 굳게 디디지 못한, 허공을 걷는 것과 같은 삶이 하루하루 이어지는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려 할 때 나쟈는 담배를 꺼내 문다. 바로 ‘벨로모르’다.


글렙은 운 좋게도 특별 수감시설로 옮겨진다. 비밀경찰의 도청에 누군가의 반체제적 통화내용이 걸렸고, 이 사람을 잡아내기 위해 꾸려진 태스크포스에 속하게 된 것이다. 이 팀은 전원 수용소 수감자들로 꾸려진다. 팀원들에게는 횡재가 따로 없다. 혹독한 환경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힘겨운 강제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엄동설한에도 따뜻한 연구실에 들어앉아 수수께끼의 음성을 분석하고, 그래서 용의자를 특정할 방법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이 제일권이다.


소련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무심한 듯 지나간다. 그래서 더 통렬하다.

예컨대, 이 작품에서 처럼, 전화 목소리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임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전국 수용소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 지 물색한다. 그러면 한 사람이 자원한다. 물론 그는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좀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다. 잘못되어도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삶보다 나빠질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특별 수용소로 가서 따뜻하고 배부른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당국에서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물으면, 음성 분석 전문가가 없어서 일이 진척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또 전국 수용소를 뒤져 적합한 사람을 찾는다. 그동안 세월이 간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배부른 생활 기간을 늘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문가들이 모이면 팀이 꾸려진다. 당초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친 사람은 이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여러분들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그렇게 연구와 분석이 시작되고, 용의자를 좁혀가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세 사람 중 누군가를 콕 집어낼 수가 없다. 수인들은 물론 시간을 끌수록 좋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인내심이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셋 다 잡아들여라!”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 그런 것은 고려할 필요 없다.

이와 관련한 원칙도 있다. 일단 ‘잡아 넣고’ 억울한 사람은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련식 수사와 인신 구속 원칙이다.


나쟈는 글렙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모스크바와 시베리아 만큼이나 먼 두 사람의 거리. '광기 서린' 독재가 갈라놓은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가버린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솔제니친은 이념의 강고한 독재 아래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를 '처절하게' 묻고 있다. 그 답변 없는 물음에 대한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자아... 그 둘을 버무려 내뿜는 것이 바로 나쟈의 벨로모르 한 모금 연기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모스크바 공간, 나의 '벨로모르' 연기 한줄기. 거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강제노동수용소 시절의 솔제니친

글렙 네르진의 캐릭터는 솔제니친의 자화상이다. 그는 실제 수학 교사였고, 포병장교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지도부의 거듭되는 오판으로 수많은 장병들이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다 못해 이를 친구에게 편지로 알린다. 스탈린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전투 중에 그냥 끌려 나와 굴라그 군도로 보내진다. 그는 실제로도 글렙 네르진처럼 비교적 대우가 좋은 ‘샤라시카’라는 특수수용소에서도 생활했다. ‘샤라시카(Шарашка)'란 수감자들 중 고급 두뇌를 모아 연구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는 곳을 말한다.


솔제니친은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하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을 썼고, 그의 작품은 냉전 당시 비밀리에 발간, 유통되는 소련의 반체제 출판물을 뜻하는 ‘사미즈다트(Самтздат)'를 통해 확산돼 서방에도 알려졌다. 그리고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소련 국내에서는 그의 처리를 두고 심각한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1974년 소련은 그를 추방한다. 솔제니친은 당시 서독과 스위스를 거쳐 1`976년 미국에 정착한다.

1974년 솔제니친이 서방세계로 나오고, 굴라그 군도의 참상을 낱낱이 고하는 ‘수용소군도’가 공개되었을 때의 세계적인 반향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야말로 세계는 솔제니친 열풍이었다. ‘수용소군도’는 국내에도 ‘순식간에’ 번역돼 나왔고,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의 다른 작품들도 속속 번역, 출간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의 이런 열풍을 감안하면 솔제니친은 급격하게 ‘잊혀진 작가’가 된 느낌이다.

1976년 미국에 정착했을 때 솔제니친은 반소련, 친서방, 미국 체제 승리 등의 아이콘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을 아연실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개 강연에서 미국의 ‘천민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는 ‘반소련 = 친미’라는 냉전적 공식에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시 기독교공산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슬라브공동체의 전통에 바탕을 둔 ‘슬라브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도 무국적자로 살다가 소련 붕괴 이후인 1994년 러시아로 돌아간다.

소련 붕괴 후 초기에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다가 후에는 반대자가 되었고,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후에는 푸틴 지지로 돌아섰다. 푸틴의 러시아 민족주의와 솔니친의 슬라브주의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한 옐친보다는 접점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푸틴은 실제로 솔제니친을 우대해 솔제니친 거리도 지정하고, 2008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러 주기도 했다.


솔제니친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작품만은 언제나, 어떤 체제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고골에서 도스토예프스키로 이어지는 러시아 문학 전통의 한 갈래를 이어받은 대표적인 작가로 본다. 이 전통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고, 때로는 자학적이다. 그러나 억압적 체제와 인간의 관계, 양심과 생존의 문제, 그리고 자유에 대한 사유와 열망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솔제니친의 작품 속에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인간 탐구가 그 바닥에 깔려 있다. 제일권에서도 글렙 네르진은 억압 속에서도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자아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바깥 세상에서는 ‘벨로모르’을 문 나쟈가 또한 그렇다. 나쟈의 이름 나제즈다가 바로 ‘희망’이란 뜻이 아니던가!


내가 『제일권』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사유하는 수인’의 이미지 때문이다.

창살은 몸을 가둘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수인은 사유를 멈추지 않는 한 자유롭다.

모스크바의 밤 하늘에 내뿜는 한줄기 ‘벨로모르’의 연기는 그러므로 ‘자유’다.

그리고 그 연기에 오늘날 러시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추신: 러시아 이름에 대하여>


러시아 소설은 대부분 길다.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그 복잡한 관계를 기억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러시아식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름 자체가 장벽이다. 러시아식 이름은 이름-부칭-성의 순으로 이뤄진다. 부칭이란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자인 경우에는 아버지 이름 + ‘비치’, 여자인 경우에는 아버지 이름 + ‘브나’를 쓴다. 그래서 『닥터 지바고』에서 예를 들면,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는 이름이 유리이고, 안드레이의 아들이며, 성은 지바고하는 뜻이다. 그의 아내 안토니나 알렉산드로브나 그로메코는 이름이 안토니나이고 알렉산드르의 딸이며 성은 그로메코다. 물론 지바고와 결혼함으로써 성도 지바고로 바뀐다.


더 복잡한 것은 애칭이다. 내게는 러시아인들이 애칭에 ‘목숨 건다’고 느껴진다. 애칭은 상하관계보다는 주로 친소관계를 반영한다. 공식적으로 호명하거나, 윗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또는 모르는 사이에 예의를 갖춰 부를 때는 ‘유리 안드레예비치’와 같이 이름과 부칭을 부른다. 그러나 친구나 연인 부부 가족 등 친밀한 사이라면 ‘유라’라고 애칭으로 부른다.

문제는 이 애칭이 하나로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변형된다는 것이다. 보통은 ‘유라’라고 부르지만, ‘유로치카’라고 하면 더 친밀한 느낌이다. 지바고의 아들 알렉산드르도 보통은 ‘사샤’이지만, 더 귀엽게 부르면 ‘사셴카’가 된다. 이 경우에는 엉뚱하게 ‘슈라’라는 애칭도 있다. 더 귀엽게는 ‘슈로치카’다.


러시아 소설을 보면 같은 사람의 호칭이, 조금 과장하면, 수십가지로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특히 이름으로 크게 ‘장난치지’ 않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대화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 묘미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번역서의 경우, 번역자가 이름을 통일하거나, 한두가지만 사용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복잡하고 헷갈린다.


친절한 번역서는 책 앞이나 끝 부분에 등장인물 목록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실어주기도 한다. 그런 것이 없을 때 나는 노트나 메모장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메모해 목록을 만들면서 책을 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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