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리째 빼앗기는 자아
죽음, 상실은 늘 갑작스럽게 옵니다.
불의의 사고에 의한 것은 당연히 전혀 예측치 못했던 것이므로 갑작스럽습니다.
그러나 긴 투병 끝에 죽음에 맞닥뜨렸다 해도 갑작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치유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좀 쉬울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닥쳤을 때,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일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예고된, 즉 얼마간 투병하다가 맞는 죽음인지에 따라 받게 되는 충격이나 슬픔의 강도나 양태는 다를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갑작스런 죽음이 더 충격적이고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 상으로는, 세상에 갑작스럽지 않은 죽음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심각한 병으로 진단을 받고, 일정 기간 투병하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마침내 죽음을 맞는, 어느 정도는 예측한 죽음도 실제 맞닥뜨리면 갑작스러운 죽음과 같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 전혀 예기치 못한,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과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점점 쇠약 해지거나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른 경우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의 경우 충격이 훨씬 덜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충격과 슬픔의 결이 다를 뿐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합니다.
그 길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년, 10년…아니면 3년?
그 기준은 당사자가 얼마나 견뎌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아무튼 그런 긴 투병은 다소 예외일 수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 아내는 폐암 확진 1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효자가 없을 정도의 긴 병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 기간 내내 단 한번도 간병인을 쓰지 않고 24시간 직접 돌보았습니다.
입원 중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세탁, 목욕 등을 위해 집에 들리는 두어 시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병상을 비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은 전화와 e메일로 모든 것을 처리하면 되는 프리랜서로서의 제 업무 특성 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병상을 지키면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 암 확진을 받았을 때는 죽음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시 아내가 걷거나 움직일 때 숨이 차는 것 외에는 너무나 멀쩡하게 건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도 많이 작용했습니다.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특히 내가 헌신적으로 돌보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이란 존재는 무섭도록 정확하게 제 속도를 지켜가면서 진행돼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몸은 하나 둘 기능을 잃어갔고, 마침내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각오를 단단히 한 것이지요.
이제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나는 이렇게 하리라… 나름 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했습니다.
우선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산 속에서 깊이 애도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리라.
구체적인 행동 계획까지 여러가지 생각했습니다.
이미 대화도 할 수 없는 그 사람 병상을 홀로 지키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기다리는 뼈아픈 고통, 그리고 엄습하는 외로움을 속에서 그 시간을 견뎌내는 방편으로 그런 생각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그 날이 왔습니다.
‘숨이 턱에 찬다’는 말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알았습니다.
마지막 시간, 내게는 그녀의 호흡이 배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턱으로 점점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 호흡은 그냥 입에서만 잠깐 머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호흡은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그 사람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평안을 찾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큰 위안을 주었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처럼 느껴졌고, 아무리 소리쳐 울어도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슬픔이 내 온 몸을 가득 채웠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바로 그 입술에 머물렀던 짧은 호흡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방금 살아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죽어버린 것입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고통 속에서도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모든 계획과 결심은 그 순간 깡그리 날아가버렸습니다.
머리 속은 텅 비었고, 고통스러운 흐느낌과 눈물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슬픔 만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순간은 ‘갑작스럽게‘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한 순간에 몸이 홱 돌아가버린, 그래서 바로 직전과는 전혀 다른 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갑작스런 사고사와 그렇지 않은 경우, 충격과 슬픔, 그리고 애도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서서히 진행된 죽음을 맞은 경우는 그 과정에서 이미 충격과 슬픔을 미리 겪고 있고, 따라서 애도도 어느 정도는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유족의 경우는 당연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압축되어 일어납니다.
즉 온갖 감정이 순간적으로 뒤섞이면서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서히 진행된 죽음의 남겨진 유족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차원은 달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아픔과 슬픔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것입니다.
저에게 아내의 죽음은 그랬습니다.
13개월이란 투병 기간은 너무나 짧았고, 나는 그 사람을 충분히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았고, 잘 못해준 것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내게는 갑작스러운 것으로 느껴졌고, 그것이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또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이 더 길었다면 좀 나았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그녀의 죽음은 내게는 갑작스러운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