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러나 실감 나지 않은
“폐암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지 평소보다 숨이 좀 찼을 뿐이었다. 어떤 병색도 없었고, 활기찬 생활이었다. 건강한 모습에 얼굴 혈색도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요컨대 암이란 ‘어마어마한’ 진단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숨소리가 좀 거칠게 느껴졌다. 약간 오르막이긴 하지만, 그렇게 숨이 가쁠 만한 길은 아니었다.
“왜 그래? 힘들어?”
“그러게… 힘이 드는 것은 아닌데 숨이 좀 차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외에는 아무런 징후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 걷는데 숨이 차는 건 이상하지 않아? 병원에 한 번 가 봐야 하지 않겠어?”
“알았어. 내일 한번 가보지 뭐…”
하지만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다니던 동네 의원 의사는 큰 병원 진단이 필요하다며 대학병원 예약을 잡아줬다. 대학병원에서는 관찰이 필요하다며 입원을 시켰다. 심장 박동 등을 체크하는 기구를 옆구리에 채웠다.
60을 전후한 나이에도 철부지인 우리 둘은 마치 여행이나 온 것처럼 병원 생활을 즐겼다. 워낙 큰 병원이다 보니 돌아다닐 곳도 많았다. 커피샾, 식당, 빵집, 옥상 정원, 앞 마당… 아내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프리랜서인 난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으니,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겼다. 병실에서는 침대 위에 설치된 모니터 터치 스크린으로 식단을 검색하면서 메뉴를 선택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심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적절한 치료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입원 사흘째 오후 담당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불러냈다. 그것은 뭔가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폐암이란 진단명을 밝혔다.
‘폐암’이라… 흡연자도 아닌데 폐암이라… 나도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간접 흡연 피해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폐암이라니, 저렇게 멀쩡한데 폐암이라니… 충격이기 보다 그저 약간 멍한 느낌이었다.
“담담하시네요.”
“네… 그럼 어때야 합니까?”
침묵. 그리고 잠시 후,
“사모님께 직접 말씀드리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말할까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니, 폐암이라고 한들, 저렇게 건강하니,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것이란 생각, 아니 믿음이 솟아올랐다. 물론 아무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그에 근거한 기도와 정성이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란 강한 믿음이 솟구쳤다. 그래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러니 진단명 따윈 대수롭지 않아…
“선생님께서 직접 알려주시지요. 강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른바 ‘투병’이란, 우리와는 영원히 관계 없을 것 같았던 그 ‘투병’이란 생활이.
우리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쾌활하게. 그것은 어쩌면 암묵적인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불편한 현실,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기로.
아니면 정말 철부지라, 그 병의 심각성을, 미구에 닥칠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고 한들, 모든 것을 덮어두고 애써 외면하면서 ‘괜찮을 거야”란 말만 끝없이 되뇜으로써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과 13개월 후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