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추락에서 정신과 치료까지
남자가 아내를 잃는다는 것.
저의 경우에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13개월은 짧지 않은, 어쩌면 길다면 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사고나 예기치 않은 재난 등으로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하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큰 일’에 맞닥뜨리기 위해 대비하는 기간으로서 꽤 긴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막상 일을 당하고 나니 현실은 갑작스런 재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 그때는 사실 아내도 겉으로는 건강해 보였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식사도 잘하고, 업무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상정할 수는 없었고,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이 강했습니다. 아니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병마는 빠른 속도로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고, 어느 순간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이 툭 끊어지는 순간은 오고야 맙니다.
어느 날 주치의가 저를 불러 선언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쓸 약이 없습니다. 임종 단계에 들어서셨습니다.”
그리고 일은 사무적으로 진행됩니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지요.
호스피스 병원에서도 물론 마지막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습니다만, 각오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져 먹고, 그녀를 떠나 보낸 후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슬픔을 극복하고, 어떻게 애도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름대로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 의도, 계획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나는 그 사람 손을 잡고 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손을 잡고 함께 왔지만, 다음 한 걸음은 내가 손을 잡고 같이 갈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으니까요.
그 사람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모든 것을 멈춤과 동시에 저의 몸과 마음, 영혼에서도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공허함. 그리고 그 빈 공간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 찼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그 사람은 나의 전부였기에 나의 삶도 그녀의 마지막 숨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 무엇보다 큰 고통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공허함만 남았는데, 슬픔만 남았는데, 육신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과 영혼이 그대로 이 땅에 남아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공허함이든, 슬픔이든 고스란히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때 나는 그냥 온전히 슬픔에 모든 것을 맡겨버렸습니다. 그냥 슬픔의 바다에 몸을, 마음을, 영혼을 던져버린 것이지요.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꼭 내가 나서야 할 문상객 접대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온전히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고, 우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그냥 미친 듯이 슬퍼하고 애도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내 사랑하는 사람은 한 줌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버리고, 집에 돌아온 날, 함께 했던 가족 친지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그날, 처음으로 그 사람의 부재 속에 밤을 보내야 했던 그날. 그날은 생각 외로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머리 속까지 텅 비고, 스스로의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런 알 수 없는 상태로 멍하게 꼬박 밤을 샜고, 새벽 동이 터오는 시간이 되어서야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꽤 오래 잤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시간은 고작 30분. 그렇게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의 밤은 그로부터 조금씩 제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름다웠던 추억. 거기에 투병 생활 중 무너져가는 그 사람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온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눈물 되어 흐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슬픔은 내 몸과 마음을 점령해 나갔고, 내 일상은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져 나오고,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으며, 종일 멍한 상태가 계속되고, 15분, 30분 정도 씩 깜빡 잠이 드는 경우를 제외한 불면의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원고를 작성해 메일로 보내면 되는 프리랜서 직업이었기에 이런 생활이 가능했고, 또 직업이 그랬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 ‘망가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저는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오로지 슬픔에 침잠해 스스로를 고립시켜 집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플 때 낫게 해주십사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냥 내 생명도 거두어 가주십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4~5일을 굶어보니까 그대로 누워있으면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식을 해서는 죽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물을 먹지 않으면 훨씬 빨리 생명이 끊어질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물도 끊었습니다. 그리고 이틀째인가 사흘째인가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조여오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그 목소리는 계속 “조금만 참으면 편안해질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너무 숨이 막혀 나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그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정말 조금 더 참았으면 죽었을까? 잠이 깨 버린 것, 조금 더 참지 못했던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온 몸이 쑤시고, 견딜 수 없이 아파왔습니다. 죽음은 둘째 치고 당장 너무 아파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던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열이 40도가 넘으면 너무 아플텐데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병원에 오지 않았느냐고… 주사에다 영양제까지 맞고 집에 돌아오니 허탈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거두어 가주십사고 기도해놓고 막상 이렇게 되니까 아프다고 병원으로 쫓아가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심지어 가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너무 슬펐습니다.
사람은 어처구니 없이 죽기도 하지만, 또한 한 목숨 끊어지는 것이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 속에서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삶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며칠씩 굶다가 배가 고프면 폭식을 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3,4일은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지만, 한번 배가 고프면 또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수면과 식생활이 엉망이 되니까 그 다음에는 변비가 오더군요. 생물학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이 생명활동의 3가지 핵심 요소인데, 그 3가지 모두가 흐트러지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열이 올라 몸이 아플 때도 그랬지마는 생애 처음 겪는 변비 또한 상상 외로 고통스럽더군요. 약을 먹어도 그때 뿐… 근본적으로 생활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었습니다.
그렇게 6~7개월이 흘렀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우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도서를 검색해서 몇 권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한편 호스피스 병원에 있을 때 상담을 해 준 사회복지사란 직함을 가진 상담가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 그룹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상담가는 국내에는 그런 전문적인 곳이 없다면서 정신과 치료를 권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라니… 그러나 과거에는 정신과라는 말만 들어도 큰 일 나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이 나이에 정신과 치료라는 것이 흠이 된 들 어떠랴 싶어서 권고대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은 그야말로 폭풍 노도와 같은 마음을 완전히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라앉게는 해 주었습니다. 그냥 약간 우울하고 슬픈 감정은 있지만,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널뛰기’는 없어졌고, 그러니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로써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터질 위기에 있는 둑을 약이라는 돌맹이로 막고 있는 형국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의사는 이 약이 의존성이 없다, 즉 중독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의존성이 없어서 중독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중독과 다름없는 상태로 몰아가더군요.
실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형제 자매 모임이 있어서 지방에 내려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보니까 약이 없는 겁니다. 그때부터 불안해지고, 급기야는 잠도 오지 않고, 그래서 그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고 말았습니다.
의존성이 있건 없건, 중독이 되었건 아니건 아무튼 그 약 덕분에 일단 삶이 안정을 찾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견딜 수 없는 맹렬한 슬픔에 고통받고 계십니까?
그로 인해 삶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저는 감히 정신과, 아니 요즘은 정신건강의학과라고 하죠. 아무튼 그 치료를 받으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내가 이기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견딜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약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는 것이 낫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 슬픔은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을 되찾음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이 애도하고, 그 슬픔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약의 도움을 기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