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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 생긴 시인 백석, 그가 세상을 보는 눈

- 아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 그의 시 '여승'

by 가을에 내리는 눈

미쉘 파이퍼, 기니스 펠트로우, 위노나 라이더, 장만옥,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그 사실 모르지요! 남자 배우의 경우에는 제 점수가 좀 짜서, 좋아하는 배우가 별로 없어요.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로버트 레드포드, 그리고 홍콩 영화 '첨밀밀'의 남자 주인공 여명? 유난히 그 영화에서의 그의 푸릇푸릇 순수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한국의 시인들 중에는 이상이 잘 생겼고, 빛을 내뿜는 듯한 눈매와 날카롭게 오뚝한 콧날 선이 인상적인 시인 김수영, 그러나 제 눈에는 시인 백석님 만큼 머리 좋으면서 동시에 얼굴까지 잘 생긴 남자는 다시 없을 듯 합니다. 1912년 생이니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훨씬 넘는 그 옛날 태어나신 분인데 그때 그분의 키가 무려 185센티미터 (지금의 키로 굳이 환산한다면 196센티미터에 달한답니다!)에 그 선한 눈매, 여성보다 고운 하얀 피부, 헤어 스타일은 지금보다도 더 세련된 형태이고, 몸에 착 붙게 그야말로 타이트하게 그리고 팔 소매 길이 정확하게 맞춰 입은 그의 양복 차림새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로버트 레드포드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이 양반이 자신의 화양년화, 눈부신 나이 25세 때 함경도 함흥의 어느 여자고등학교에서 그 멋진 외모와 차림으로 영어를 가르키고 있었다니, 그 당시 그 학교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과연 좋아졌을까요 어땠을까요? 당연 좋았겠지요? 오늘은 그의 시 한 편을 통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그의 시 '여승', 시의 얘기는 이렇습니다.


오래전 집을 나간 남편을 찾아 어린 딸을 데리고 어느 광산촌 작은 장터 한구석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던 여인, 시인은 그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삽니다. 배가 고픈 지 어디가 아픈 것인지, 칭얼거리는 어린 딸아이의 엉덩이를 서럽게 때리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던 그 여인. 그때도 그녀는 파리하고 늙은 모습이었지요.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시인은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납니다. 물론 두 사람 다 서로를 기억하지요. 그런데 그 여인은 이제 승려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그동안의 얘기를 듣습니다. '도라지꽃이 좋아 어린 딸은 결국 돌무덤으로 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시인은 이 여인이 출가하던 날의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사찰의 마당 한쪽에서 여인의 치렁치렁 하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 그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락과 함께 떨어져내리는 여인의 눈물방울들도 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고. 사뭇 엄숙하고 진지하기까지 한 시인의 그 안타까움, 그 아련함. 그 옛날 금광 근처 시장에서 보았을 때도 또 지금도 그녀의 그 쓸쓸한 낯은 늙어있다고, 산 꿩도 슬픈 지 꺼이꺼이 섧게 운다고 그렇게 자신의 심정을 써놓았습니다.


백석 시인의 눈을 보면 마치 사슴의 눈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 선하고 맑고 따스하지요. 사슴의 눈은 직접 보았고 백석 시인의 눈은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그래도 저는 그것을 뚜렷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시집의 이름이 '사슴'이었던 것 또한 그러니 그냥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평안도 정주 출신이라 그의 시 속의 평안도 사투리, 그리고 지금은 쓰이지 않은 고어들의 어려움을 뺀다면, 이 시인의 시에서 우리가 그냥 읽어 단박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시인의 시가 좋습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는 대체로 좀 어렵습니다, 제게는 특히.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디 해설이나 설명 부분이 외국 시의 경우 처럼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시라는 것이 그저 읽는 사람 자기 마음대로의 해석이 허용되는 분야라 해도 저 자신 이해를 못하면 시를 읽는 의미도 그 재미도 없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늘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벌써 몇 달째 머릿속에 넣고 끙끙 거리는 국내 시 한 편이 있지요. 읽고 또 읽어도,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 난해한 귀절 몇 개. 언젠가 한국의 대형 서점에 들를 기회가 오면, 몇 백 페이지는 된다는 그 시인의 전집을 뒤져볼 생각입니다, 거기 어딘가에는 나오겠지요?


'섶벌같이 나아간'이라는 귀절을 보고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이 사람이 집에서 치던 벌통을 들고 읍내에 팔러 나갔나, 아니면 일벌처럼 열심히 돈을 벌러 도회지로 갔나, 뭐 이런 뜻으로 이해를 했는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일 나가는 일벌 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집을 나가버린 남편, 처음에 나갈 때부터 아예 돌아올 작정은 하지 않은 것이지요. 벌들은 저녁이 되면 다시 자기 집 벌통으로 돌아오건만! 아내를 버리고, 어린 자식을 두고 그리 집을 나가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인간일까, 저는 화가 났습니다. 결국 어린 딸은 죽고, 예쁜 꽃무덤은 커녕 그저 들짐승들이나 겨우 피할 수 있는 험하고 날카로운 돌무덤에 그렇게 묻히고. 아내는 먹고 살아낼 방도로 승려가 되고.


이 모든 것들을 시인은 그녀와 함께 서러워하고 세상과 함께 슬퍼하고, 그렇게 함께 웁니다. 옥수수를 살 때도 그리고 그 후 길에서 다시 만난 여승의 모습으로의 그녀를 보고도, 집으로 돌아와 몇 날 며칠 한참을 마음을 다잡고 그제서야 비로소 이런 시 한 편을 써냅니다. 그 여승을 위해, 먼저 간 그녀의 어린 딸을 위해, 그리고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비슷한 상황과 처지의 많은 다른 이들을 위해. 그러나 벌처럼, 쏘아놓은 화살같이그렇게 집을 나간 그녀의 남편을 위해서는 단 한마디의 기원이나 기도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언제 어느 곳에서 여러분에게 합장 기도하는 여승을 만나시거든, 그분에게는 아무쪼록 이 시 속의 그 여인과 같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과 삶의 회한이 없기를, 그저 수도자의 마음으로 혹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출가한 승려이기를 마음으로 빌어주세요.


우리네 삶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글쎄요 늘 언제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겠지요. 잠깐의 고난과 고통,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희망을, 저는 백석 시인의 그 잘 생긴 얼굴을 보면서 그리고 그의 따뜻한 눈동자와 늘 아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제 손에 꼭 잡고 살아갑니다.


얼굴이 참으로 잘 생긴 시인, 똑똑한 시인, 더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혼이 맑고 잘 생긴 사람, 그래서 저는 백석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의 시를 좋아합니다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 '여승', 백석시인이 1936년 그의 나이 24세 때 쓴 시입니다. 단연 그의 리얼리즘 시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지요. 현재 여승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과거 처음 만났던 금광촌 주변의 작은 시장 장면으로 넘어가는, 그 구성이 참으로 소설적입니다. 현재 -> 과거 -> 시인의 상상 혹은 짐작 속의 과거, 사실 이 시인은 1930년 그의 나이 18세 때 단편 소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습니다. 그 이후 주로 시를 썼지요. 대한민국의 시인들이 압도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혔고, 가장 사랑하는 시에도 그의 시가 여러 편 선정되었구요. '여승', 대단한 시인의 대단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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