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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당신을 어디로 몰고 가는 걸까요?

- 방랑, 젊음 그리고 사랑. 헤르만 헤세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by 가을에 내리는 눈

배우 윤여정님을 좋아한다. 그분의 늘 선한 그 얼굴이 좋고 그분의 다소 특이한 정감있는 목소리가 좋다. 물론 그분의 연기는 참으로 좋다. 무리가 없고 그저 물 흐르듯 언제나 자연스럽다. 연기를 잘 모르는 나지만, 무릇 연기란 저런 것 아니겠나 그리 생각했다. 오스카쪽도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한 것 같다.


언젠가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제부터는 좀 사치스럽게 살아야 하겠다"고. 이건 무슨 얘기인가?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나의 삶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사치스러운 것 아니겠나?' 신선했고 부러웠다. 그리고 나 또한 저런 사치스러움은 배워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후 나는 지금까지 쭉,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끝까지 그렇게 사치스럽게 살다가 가고 싶다.


얼마 전 런던에서 아들 녀석을 만났을 때다. 어디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곳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며, 다 아들이 했다. 나는 그냥 그의 뒤를 졸졸 따른다.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낀다. 지금껏 내 삶에서 모든 것은 다 나의 책무였다. 그걸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 그랬어야 했다. 아들은 어리고 분명 내가 그들의 가장이고, 나 또한 내가 직접 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것이 몸에 밴 것이니! 아무튼 흐뭇하고 든든하고 듬직했다. 아,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이구나? 그 편안함, 스트레스 프리의 상황, 그의 다음 행동에 대한 자식 자랑 섞인 궁금함까지.


그러나 삶에서 어떤 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결코 다른 눈군가에게 맡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식에게는 더욱 안된다. 오롯이 나의 영역이어야 한다. 낙엽이야 어쩔 수 없이 그냥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지만 우리네 인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젊을 때 그리고 한없이 좋았을 때 그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내지르는 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어떤 결정들은 정말 나의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처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삶은 슬프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그 마지막 편 4부에서 신들의 왕 보탄이 사랑하는 딸 여걸 브륀힐데는 결국 자신이 고민하고 깊이 생각했던 자신의 계획을 실행한다. 보탄이 '그녀의 생각이 바로 나의 생각'이라고 까지 말했던 그녀. 자신을 위해 아버지 보탄을 위해, 형제자매들을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결단한다. 그렇게 아버지 보탄이 오랜 시간 생각해 왔던 새로운 세상은 찾아온다. 신들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렇게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신들의 왕 보탄이 결단하고 그의 딸 브륀힐데가 실행에 옮긴 그 큰 그림에 들어맞기는 한 것일까? 다시 신들의 세계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가 되면 좋겠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예쁜 것을 좋아한다. 부디 나의 삶도 끝까지 예쁜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그렇게 유지되어 가기를. 어디로 몰아가더라도 바람이 아닌, 그런 자연이 아닌, 타인이 아닌 바로 내가 곱게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수 있기를!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 헤르만 헤세

시든 나뭇잎 하나가 여기 내 앞에서 흩날린다.

방랑, 젊음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때가 있고

그러니 그들의 끝도 있다.


그 잎은 딱히 정해진 길 없이 이곳저곳을 떠돈다,

그저 바람이 몰고 가는 곳으로.

처음에는 숲에서 가만히 멈춰 선다, 그리고는 결국 썩는다...

나의 이 삶의 여정은 과연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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