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 빅토르 위고의 그 슬픔

- 빅토르 위고의 시 '내일, 동 틀 무렵에'

by 가을에 내리는 눈

시 만을 전문적으로 쓰는 시인의 작품과 소설가들이 써내는 시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때 궁금했던 때가 있었지요. 네, 물론 둘 다 좋지만 대문호 소설가들의 시는 '압축된 우주의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할까요? 헤르만 헤세의 시가 그렇고 빅토르 위고의 시가 제게는 그랬습니다. 사실 헤르만 헤세도 빅토르 위고도 그들의 작가활동에서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그들을 그저 위대한 소설가로 많이 알고 있지만. 기회 될 때마다 그 두 사람의 시들을 읽어 보세요, 그 깊이와 진하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영혼의 울림을 느껴보세요.


빅토르 위고의 나이 41세 때 그의 사랑하는 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결국 작품활동을 중단해야만 했지요. 무려 13년이 지난 후에 그는 비로소 그 딸에 관한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내일, 동 틀 무렵에' (불어를 영어로 번역한 버전을 토대로 제가 우리말로 번역, 오늘 처음 소개합니다)라는 작품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너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낼 수가 없구나' 하는 대목에서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하지만 빅토르 위고는 그로부터도 30년 가까이 더 살았으니, 저의 시 몰입이 너무 심했던 것이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손깍지를 끼고, 슬픔 가득, 터덜터덜 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정말로 낮 조차도 내게는 밤과 같으리니', 딸 아이의 무덤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시린 마음이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오지요?


문득 서로우 (sorrow)와 그리프 (grief)의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서로우는 소중한 사람 혹은 아끼는 물건을 잃은 것에 대한 깊은 마음의 아픔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말, 그리고 그리프는 비교적 짧고 격렬한 서로우, 이렇게 설명하고 있네요. 어린 딸 아이를 잃었을 바로 그때의 빅토르 위고의 황망함과 충격은 당연 그리프의 상태였을 것이고, 그래도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딸을 그리워하는 시를 쓸 수 있었을 때는 서로우의 단계로까지 많이 진정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리 짐작해 봅니다. 시간은 약이라잖아요? 그에게도 꼭 그러했기를 바라봅니다.


초록빛깔의 잎과 빨간색 열매, 보랏빛이 어울리는 꽃다발은 멀리 집에서부터 들고 갔을까요 아니면 무덤 가까운 마을에서 샀을까요? 시인은 그 예뻐하던 어린 딸에게 무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요? '너는 알지?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내가 알고있다는 것을,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 그리 일찍, 혼자 먼저 갔느냐고 눈물 속 아쉬움의 말도 있었을까요? 너의 그 아름다운 눈빛과 따뜻한 보살핌 속에 아빠는 오늘도 잘 살고 있다고, 그 고마운 마음도 전했겠지요?


과연 어떤 것이 시이고 또 어떤 것은 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은 시, 물론 많지요. 하지만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그런 시 또한 없다고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몇 날 며칠을 마음속에서 갈고 다듬고, 드디어 용기 내어 자신의 마음 밖으로 꺼낸 것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그 속에 자신의 진정성과 애정이 배어있다면, 그것은 분명 시이고 이 세상 그 누군가는 그 시를 좋아할 겁니다.


시 속에서, 시를 통해 나를 보려는 노력을 저는 얼마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여러 시인들의 다른 시들 속에 불쑥 저를 던져 넣습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많이 당황하는 저를 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저 또한 그런 상황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면서, 그 속에서 제가 그 시를 그리고 그 상황을 보는 눈이 달라져감을 느낍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낯선 환경 즐기기 게임에 용감하게 저를 집어넣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강해지는 아집, 나만이 옳고 나만 옳아야 한다는 말 안되는 똥고집, 여전히 나 안에 갖혀있는 나만의 세계 속 일상, 이런 것들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감히 권합니다. 한번 '시에서 나를 보다', 이런 내 삶 풍성하게 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세요. 뜻밖의 긍정적 결과들을 목도할 수 있을 겁니다.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유언장의 한 귀절이 가슴에 남습니다. '내게는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은 언제까지나 열려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는 거부한다. 그저 바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단 한 사람의 기도이다.'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시 전문을 소개합니다.


<내일, 동 틀 무렵에 (Tomorrow, at Dawn, Victor Hugo 1856년)>

내일, 동이 틀 무렵에, 저 먼 시골 어딘가가 밝아오는 그때에,

나는 길을 떠나리라. 너는 알겠지,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숲을 지나고 산들을 넘어서 갈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너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낼 수가 없구나.

내 두 눈은 그저 내 생각에만 고정시킨 채,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을 그냥 무시한 채, 작은 소리 하나도 듣지 않고, 혼자서, 그 무엇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기에, 그저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손깍지를 끼고, 슬픔 가득, 터덜터덜 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정말로 낮조차도 내게는 밤과 같으리니.


다가오는 저녁의 그 황금빛 노을도, 저 멀리 아르플뢰르로 향해가는 배들도 나는 굳이 보지 않으리니,

그리고 내가 마침내 도착했을 때는 너의 무덤에 초록빛깔 호랑가시나무와 꽃이 활짝 핀 보랏빛 헤더의 꽃다발을 놓을 것이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 아르플뢰르 -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의 생마르땡 지구에 있는 도시. 그 옛날 프랑스 북서부의 주된 항구 도시였다. 유명한 생마르땡 성당이 있고, 아르플뢰르 수도원 박물관에는 로마시대의 유물과 고고학 수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호랑가시나무 - 특이한 모양의 초록색 잎과 빨간 열매로 유명. 성탄절 그림 엽서 및 장식의 주요 재료.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의 재료로도 알려져있다.


# 헤더 - 보랏빛이 아름다운 군집 식물로 프랑스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자란다. 아일랜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에도 나온다.



keyword
이전 14화안남미로 지은 냄비밥, 웬만한 국산쌀보다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