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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미라보 다리, 직접 보시니 어떻던가요?

- 한 편의 시의 그 대단한 힘!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by 가을에 내리는 눈

다른 나라 어느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다리의 이름을 우리가 알기까지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이러저런 사연과 나름의 뒷얘기들이 있을 겁니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한강의 다리들 중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제가 기억하는 다른 나라의 다리는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 (Pont Neuf, 새로운 다리), 미라보 다리, 런던의 워털루 다리, 런던 브릿지, 역시 런던에 있는 램버스 다리 (Lambeth Bridge,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으로 갈 때 즐겨 이용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브릿지,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대교, 그리고 갈라타 다리, 태국 서부에 있는 콰이 강의 다리 정도?


퐁뇌프는 이름은 '새로운 다리'지만 사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파리에 서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다.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건설되었다. 그 길이도 238미터에 달해서 파리에서 세 번째로 긴 다리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 이어 아마도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낭만의 도시 파리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상징이라고 할까?


미라보 다리는 19세기 말에 건설된 다리다. 3개의 아치, 그곳의 조각품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실 이 다리가 그리 멋지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소박한 느낌이다. 다소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단지 한 시인의 시가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유명해진 것 뿐이다. 시인도 이 다리가 예쁘다거나 그래서 이 다리를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 화가 마리 로랑생이 이사를 가고 그도 따라서 그 근처로 이사 가고, 그래서 이사 간 집에서 강을 건너는 가장 가까운 다리가 이 미라보 다리였을 뿐이다. 그들이 살던 파리 서쪽의 16구 지역의 오뙤이 (Auteil), 그곳에서 다리까지 걸어서 5분. 그러니 거의 매일 이 다리를 지나다니며 그렇게 익숙해졌을 것이다. 세상의 우연이란 참으로!


왜 '미라보' 다리라고 부를까, 그것이 궁금했다. 우선은 프랑스의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미라보 백작의 이름을 따른 것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 인물. 또한 미라보라는 단어가 원더풀/기적같은 (miraculous, 기적의/놀라운/초자연적인) 뭐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남자아이 이름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기적의 다리, 멋진 다리, 놀라운 다리!


피카소가 그에게 소개한 마리 로랑생. 기욤 아폴리네르 자신도 앙리 루소와 함께 포비즘 회화를 통해 미술의 세계에 접근, 전위미술 운동을 시를 통해 추진했다. 그렇게 이 영역에 큰 공헌을 했다. 물론 막스 자콥 등과 함께 전위 시인 (아방가르드)으로 활동했다. 그가 이런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활동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었을 그 광경을 떠올려본다. 아, 이런 대단한 인물이었구나!


그렇게나 사랑했던 연인 마리 로랑생이 돌연 독일 사람과 결혼, 그를 떠난다. 이 시는 그때 지어진 것이다. 떠나간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앙리 루소가 그린 이 두 사람의 초상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제목의 원초적이고 신비감 가득한 멋진 그림이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2년 뒤 191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그 주제에 맞도록 문장을 도형화했다. 시를 가지고 문자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 셈이다. '캘리그램 (Calligrams)'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다. "나 역시 화가다" 그가 남긴 말이다. 시와 그 속의 문자를 적절히 배열해서 마치 쏟아져내리는 비를 그린 것 같은 작품, 문자 배열을 통해 에펠탑을 그린 작품 등은 기발하고 참신하다. 화병에 꽂혀있는 꽃을 묘사한 것도 있다.


화가들과의 활발한 교류 때문인지 그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이 유난히 많다. 피카소가 그린 드로잉도 여러 작품 있고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야수파 화가)가 그린 유화도 있다. 풍성한 덩치의 그의 여러 특징들을 잘 잡아낸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크 샤갈이 그를 위해 그린 그림도 멋지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그의 초상화까지. 기욤 아폴리네르의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리 로랑생은 첫 결혼의 종결 후 프랑스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죽을 때 가족들에게 먼저 간 기욤 아폴리네르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녀의 나이 73세. 그들 두 사람은 지금 파리 근교의 묘지 ('페르 라쉐즈')에 서로 가까이 있다. 죽어서라도 함께 하는 그들이 뜬금없이 부럽다.


그녀는 화가지만 그녀가 남긴 멋진 시가 있다. '진정제'라는 제목의 시인데 이 구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죽은 여자보다 더 비참한 존재는 잊혀진 여자입니다' (권태로움에 있는 여인 -> 우울한 상황의 여인 ->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 -> 병든 여인 -> 버림받은 여인 -> 이 세상에 혼자인 여인 -> 쫒겨난 여인 -> 죽은 여인 -> 기억되지 않는 여인) 우리네 삶이 결국은 다 그때그때의 선택의 총합 아닌가? 자신의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는 듯한 마리 로랑생. 그토록 그녀를 사랑했던 기욤 아폴리네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게, 왜 그랬어?'


이제 그의 시를 본다. 워낙 유명한 시라서 따로 더할 것은 없다. 번역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말 밖에는. 똑같은 시가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구나, 나 자신 놀라면서 뿌듯하다. 자기 자랑한다고 혼나겠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고 그 깊이가 느껴진다.


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슬픔 뒤에도 그때마다 꼭 다시 큰 기쁨이 우리를 찾아왔었나

우리들의 사랑은 그저 의아하게 떠올려본다


밤은 오늘도 오게 그리 두어라 벨 소리는 그렇게 하루의 마감을 알린다

나의 날들은 나를 지나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머무른다


사랑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맞대고 그래, 그냥 그렇게 그 기억 속에 머무르자

다리 아래쪽에서 꼭 잡은 우리들의 두 팔이 만들어낸 그 다리가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애절함에 점점 지쳐만가는 동안에도 그렇게


밤은 그저 오게 두어라 벨 소리가 오늘 하루의 끝을 알린다

하루 또 하루 나의 일상은 나를 지나쳐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과거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 속에 머무른다,

애써


모든 사랑은 지나간다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그렇게

모든 사랑은 흘러 지나가는 법이다

내게 삶은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는가

사랑에 대한 희망은 도대체 얼마나 지독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인가


밤이 오게 두어라 벨 소리가 하루를 마감한다

여러 날들이 내 곁을 지나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머무른다


여러 날들이 여러 주일이 내 시야 저편으로 흘러간다

과거의 시간도 또한 사랑도 결코 다시 오지는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 오게 두어라 벨 소리가 또 하루를 끝내게 그리 두어라

나의 날들은 나를 지나쳐간다 나는 여전히 머무른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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