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그리움과 소망, 그 고백. 나태주 '나는 아직도 아내가 그립다'
지금 아내에게 불쑥 전화를 거세요, 그러고는 뜬금없이 그립다고, 보고싶다고 말해 보세요.
젊은 아내는 이 사람이 분명 무슨 사고를 쳤구먼 이리 생각할 것이고, 나이 든 아내는 어이쿠야 결국 올 것이 왔군 놀라며 당신의 정신 상태를 걱정할 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두 사람 모두 지긋이 혼자 웃음을 지으며 좋아할 겁니다. 갑자기 다가온 삶의 새로운 기쁨과 달콤함을 느낄 겁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전화하세요.
'그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나고 함께 하는 친구'라는 개념의 'FWB (Friends With Benefits)'라는 다소 낯선 용어가 있습니다. 들어 보셨나요?
혼자 사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상호 감정의 근거리 교류와 상호 지원, 보다 적극적 형태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선택을 통한 서로의 경제적 이익의 달성, 무엇보다 상호 성적 욕구의 해결의 수단으로 이런 윈-윈의 전략적 이익 추구 친구를 갖는 것이지요. 글쎄요, 우리나라에서의 실상은 어떤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사실 오래 전부터 많이 퍼져있는 또 다른 형태의 관계 지속 프레임입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아찔한 계곡 저 아래로는 시퍼런 강물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계곡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줄다리가 겨우 하나 있습니다. 엉성하게 엮은 것이라 사뭇 불안합니다. 사고도 가끔 일어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매 순간 긴장을 하고 조심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나친 긴장 탓에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실수 그리고 그로 인한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만일을 위해' 얼마 전 그 줄다리 바로 아랫쪽에 안전 그물망 같은 것을 새로 설치했습니다. 설사 줄다리에서 삐긋해서 떨어진 경우라 해도 그 밑 안전망에 걸리게 되니 이제 큰 위험은 없습니다.
그후 처음의 그 줄다리에서 떨어지는 일이 크게 줄어 들었습니다. 다른 안전 장치가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긴장을 완화시킨 것이지요.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평소의 풀 스윙을 할 때 골프 공이 훨씬 멋지게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본게임보다 연습게임에서 더 좋은 스코어를 내는 경우와도 비슷합니다.
의무감 혹은 묶여진 속박의 상태가 언제나 꼭 좋은 것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지요. 어찌 보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맞는 말일 수도 있구요. 행복을 위해 택한 것이 정작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 자체 문제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적극 나서서 그 장애물을 제거해야지요.
지금 당신 곁에 있는 그 고마운 존재에게 당신의 고마움을 표현하세요. 말로 행동으로 눈빛으로, 그리 적극적으로 드러내세요.
'한 길 사람 속' 절대 알 수 없어요, 말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해는 싹트지요. 그러니 가끔은 당신의 버선을 뒤집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세요. 굳이 보고 싶지 않다고 처음에는 슬쩍 발을 뺄 겁니다. 그래도 막무가내식으로 뒤집어서 들이미세요.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봅니다, 하지만 아주 자세히 볼 겁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배우자에게서 배우자' (상대방의 장점과 경쟁 우위 요소를 적극 배우고 수용하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때로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배우가 되자'라는 말도 했지요. 상대방을 속이거나 가면을 쓰라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상호 이익과 관계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적 충동을 조금 뒤로 하고, 우선 상대방의 그것을 먼저 고려하는 그런 태도와 자세를 취하자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오디션에 임하는 배우의 자세로, 마음을 담아 그렇게 하자 이렇게 말했지요.
전통적 결혼이라는 개념 아래에서든 아니면 낯설게 보일 수 있는 상호 필요와 이익에 의한 친구의 개념 하에서든, 결국 '혼자인 것 보다는 둘이 더 낫다'는 명제를 만족시키는 형태라면 그것을 택하고 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저는 그리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침에 보고 나온 아내가 오후가 되니 그리운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부부는 젊으니까, 또 나이 든 부부는 그동안 살아온 정과 의리가 넘치고 가득해서, 늘 그렇게 서로를 아끼고 어여삐 여기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급작스런, 난생 처음의, 다소 당혹스러운 그 전화를 받고 좋아할 아내의 모습이 제 눈에 보입니다. 제가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의 시를 봅니다.
처음 이 시인의 이 시를 읽었을 때는 '나는 아직도 아내가 그립다'라는 구절을 보면서 사별을 하셨나? 헤어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지요. 그 뒤 이 시인의 다른 시들을 더 많이 읽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아, 시인과 그의 아내 이제는 모두 나이가 들어 한 집에서 각기 다른 방을 쓰는 그런 지혜로운 선택을 했구나, 그 또한 좋은 방법이다 그리 생각했지요.
'아내는 안방에서 혼자 자고 나는 문간방에서 혼자 잔다' 이런 현실적 필요에 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혼자 자는 시인과 혼자 자는 아내는 가끔은 조금 떨어져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배우자 일방이 그립고 안스러울 겁니다.
코 고는 소리 안 들어서 좋고 상대방 잠 깰까 노심초사 하지 않아서 좋고, 하루 종일 함께 있었으니 잠자는 이 시간만이라도 잠시 떨어져 있어서 그것 또한 좋고.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코 고는 소리 들으며 함께 자던 그때가 그리운 순간도 있겠지요.
좋은 것들만 쏙 뽑아서 그것들만 가질 수 있다면 그리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결국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지요. 그래서 선택을 하지요, 최선을 위해 아니면 차선을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차차선을 위해. 정 안되면 그저 최악은 피할 수 있는 방식을!
시인님, 마음만 있으면, 그리고 정말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굳이 아내의 협력이나 허락이 없어도 '아내의 꿈에 들어가 놀다 올' 수 있답니다. 아내분은 벌써 그렇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아내도 나의 꿈속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님이 그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고 여전히 아내가 그립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그렇다고 말하세요. 가끔은 그립다고, 많이 그립다고, 내 꿈을 꾸어달라고. 그리고 내가 당신의 꿈속에 들어가게 해달라고도 말하세요. 발도 다시 따뜻해지고 무엇보다 마음이 더욱 따뜻해질 겁니다, 아내도 시인님도!
그것이 진정한 배우자, 반려자, 짝이지요. '동무', 마주 보며 서서 함께 춤을 추는 사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