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내 우울의 정도가 약물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병원에 갔다.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다음에 갔을 때 물어봐야겠다) 최소 1.5년은 된 것 같다. 며칠 전 불안과 무기력이 세게 온 날 결심을 하고 바로 다음날 전화를 했더니 가능한 날짜가 7월이라 살짝 좌절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자리가 생겨서 어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엔 나를 담당했던 의사가 아니었고, 성별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어서 조금 긴장을 했다. 과거 의사 선생님은 공감을 많이 해줬는데, 이번 의사 선생님은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내가 털어놓는 우울과 불안의 원인을 심드렁하게 듣다가 최근 3개월 사이 야근과 주말출근이 늘어났다는 말에 처음으로 '아, 그런 거라면 스트레스가 상당하셨겠네요.'라며 공감을 했다. 수치화할 수 있는 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했던 자율신경균형검사는 모두 평균치를 웃도는 매우 훌륭한 수치가 나왔다. '나 이렇게 평온하다고? 의사가 이거 보고 그냥 돌려보내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는 나에게 약물치료를 권했다. 내가 출력된 (자율신경균형) 검사결과지를 가리키며 의아해하니, 이 검사는 시시각각 결과가 바뀌기 때문에 참고만 한다고 했다. 그는 내 우울의 정도가 약물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했다.
오늘부터 약 복용 시작이고 효과가 나타나는 건 시간이 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챗GPT가) 했으니 지켜봐야겠다. 약 이름이 세 글자인데 너무 안 외워진다. 아무리 낯선 단어라도(낯설수록 오히려) 두세 번 반복해서 보면 외워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안 외워지는 건 이상하다. 내 무의식이 약을 거부하고 있는 건가? 정신과 약은 환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효과가 감소하기도 한다던데. 아직 약에 대한 신뢰는 없지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