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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호흡한다

눈앞이 깜깜할 뿐인데 숨이 막히다니.

by 오공부

예전에 여행으로 한 숙소에 머물렀는데, 그곳은 자는 방에 창문이 없었다. 자려고 불을 끄자 완전한 어둠을 만났다.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을 본 건 처음이라 놀란 나머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눈앞이 깜깜할 뿐인데 숨이 막히다니.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것만 같은 상태가 되니 어둠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일제히 곤두서며 잠이 확 깼다. 결국 방문을 살짝 열어 빛이 새어 들어오게 했던 기억이 있다.



완전한 어둠이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꼈던 것일까? 해석할 시각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나의 뇌가 위험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여기가 여행지의 숙소가 아니라 끝도 없이 무한히 열려 있는, 텅 빈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아무튼 그날의 일은 나에게 있어, 시각과 호흡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믿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요즘 수영을 배우며 다시 그날 밤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서 눈을 뜬 채 수영하는 것과 눈을 감고 수영하는 것의 느낌이 하늘과 땅차이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영 초보인 나는 아직도 호흡이 어렵고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물 밖에서 '파-!'하고 숨을 쉴 때가 많다. 그런데 물안경 없이 눈을 감은 채로 수영을 해 봤더니 그 두려움이 훨씬 커졌다. 분명히 평소와 다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도, 내가 지금 어디인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어서 무서웠다. 무서우니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무언가를 할 때 눈을 뜨고 있다는 건 '지금 여기'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행위란 걸. 물안경을 쓰고 앞을 바라보면서, '여긴 물 속이고, 나는 지금 수영을 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도록 하는 것.



앞이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곳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되새기고 있는 거였다. 이건 또 다른 의미의 호흡이었다. 폐에 산소를 공급하듯이, 마음 또는 뇌에게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역할을 시각이 하고 있었다.



귀마개에 이어 물안경 역시 나의 수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란 걸 깨달으면서 물안경을 쓸 때마다 조금은 각별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렌즈에 샴푸를 묻히게 되었다.(샴푸를 묻히면 김서림이 방지된다고 들어서 해 봤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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