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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뱀의 해

by 오행

작년 12월 말, 가족 모임에서 언니에게 선물을 하나 받았다. 언니와 형부가 여행지에서 사 온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에는 귀여운 뱀이 자수로 놓여 있었는데 언니는 내년이 뱀의 해라서 나에게 주는 거라고 했다.

“너 뱀띠잖아.”

“아, 내년이 뱀의 해구나.”

당시엔 그저 ‘와! 뱀의 해구나. 내년은 나의 해인가 그럼?’ 정도의 긍정적인 생각이 스쳐 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2025년을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나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신 차려 보니 서른일곱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만 나이를 쓴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식 나이'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마음은 열일곱인데 몸은 서른일곱이 되었다니. 아뿔싸. 나 너무 막살았나? 싶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나였는데 애매한 나이인 서른일곱이 되자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인생에 관한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뱀의 해가 주는 감흥이 이렇게 클 줄이야.


그렇게 뒤늦은 자아 성찰이 시작됐다. 아기였던 한 살, 어린이였던 열세 살, 청년이었던 스물다섯 살을 지나 내 인생에서 네 번째로 맞이하는 뱀의 해. 정신 차려 보니 마흔아홉이 되기 전에 고민과 생각의 갈래들을 가다듬고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한동안은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 깊게 고민할 예정이다.


생각의 갈래들을 글로 남기면 복잡했던 것들이 단정하게 정돈되는 기분이 들어 브런치를 시작한다. 나의 소소한 생각들을 동년배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도 있고.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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