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친구가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다.
"새로 오신 팀장님이 말이 진짜 너무 많아.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 많아. 그것도 대화가 오고 가는 게 아니라 혼자서 얘기해. 직원들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아. 그냥 정말 혼자서 하고 싶은 얘기만 해. 그래서 팀장님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면 팀원들 전부 다 모니터만 봐. 한 번 잡히면 30분 동안 그분 얘기를 들어줘야 하니까. 팀장님께는 좀 죄송하지만 팀장님이 툭 던지는 한마디에 절대 반응해선 안 돼. 이거 진짜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야."
처음엔 이 이야기를 듣고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런데 친구는 꽤나 진지했다. 살면서 말이 너무 많아서 사람을 피하기는 처음이라나.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팀장님의 가장 큰 문제는 발화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쌍방소통이 아닌 일방소통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나는 학부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에게 우스갯소리 하나를 들었다.
"졸업하고 나면 SMCRE 하나만 기억에 남는 게 우리 과란다."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SMCRE는 언론정보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커뮤니케이션 모델인데, 1948년 예일대 라스웰 교수에 의해 발표되었다.
SMCRE 모델에서 말하는 S, M, C, R, E는 각각 Sender, Message, Channel, Receiver, Effect를 뜻한다. 화자(Sender)가 메시지(Message)를 채널(Channel)을 통해 전달하면, 청자(Receiver)가 그에 맞는 반응(Effect)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라스웰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Sender와 Receiver가 Message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델은 과거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방향적 소통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이론이라고 해도 최근에는 미디어 플랫폼이 워낙 다양해졌기에 SMCRE 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친구의 팀장님 얘기를 듣고 있으니 SMCRE 모델이 떠올랐다. Receiver와 쌍방소통하지 않는 Sender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과거에는 당연했던 전략이지만 현재는 아니다. 비단 미디어뿐만이 아니다. 상사와 부하직원 간 소통 방식이 일방향적이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아마 이 팀장님의 소통 전략이 실패한 이유도 시대가 바뀌어서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랫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세상이다.
나와 동년배들도 후배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나이가 됐다. 장유유서를 배우며 자란 우리들이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아랫사람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다. 여전히 윗사람에게 치이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그래도 후배의 생각을 읽고 존중하는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1948년에 발표된 SMCRE 모델을 2025년 직장생활에서까지 적용할 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