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보며, 그 친구는 A형치고 대범하지, 그 친구는 B형치고 차분하지,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던 시절.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의 성격을 16가지로 나눈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4가지 유형으로만 사람을 구분하던 사람들에게 이 검사는 재미 그 이상이었다. 성격유형검사라는 점에서 혈액형과는 달랐고, 나름 신뢰할 수 있는 기원을 갖추고 있었다. MBTI 검사 결과는 이제 자기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분야가 됐다.
전문가들은 MBTI가 세간의 인식만큼 신뢰성이 높진 않다고 한다. 때문에 16가지 유형에 갇혀 자신을 한정하거나 타인을 규정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의 긍정적인 부분을 좀 더 보고자 한다.
우리가 MBTI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해 볼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지표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예전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지인들의 사고(思考)나 행동을 MBTI 등장 이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내 기준으로만 바라봤던 세상을 이제는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 조금 더 조심하고, 배려하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 장단점을 파악하고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풀어내기 위해 힘쓰고 있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 만났던 친구도 과거에 스쳐 간 인연을 떠올리며 그때도 MBTI가 유행했다면 그 사람과 조금 덜 싸우지 않았을까, 라고 이야기했다. MBTI의 순기능을 축약한 아주 좋은 예였다.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도 그렇다. 유튜브를 통해 조용한 ADHD나 성인 ADHD 같은 개념이 널리 퍼지고 나니, 정신없다는 표현으론 부족했던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여러 정신적, 심리적 증상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타인의 특장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뚜렷해졌다. 과거에는 손에 잡히지 않던 개념이 훨씬 더 명확진 느낌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MBTI를 넘어서는 다음 유행은 뭐가 될까 궁금하다. 과몰입을 피하는 선에서 또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