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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돌아보기

by 오행

홍보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 부서 이동을 요청하여 직무를 바꾼 지도 꽤 됐다. 이 업에 흥미를 잃어 팀을 옮긴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홍보팀에 있었을 때가 더 괜찮았다. 그러니 24년 전 유행했던 god의 노랫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 수밖에 없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god. (2001). 길.


30대 중반을 지나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힘이 닿을 때까진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사람이라, 지금이 아니면 커리어 패스를 바꾸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자 잘하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 전공을 살려 취업했지만 이 전공조차 나와 잘 맞는지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심층적인 적성 찾기에 돌입했다. 누군가는 10대 때 혹은 20대 때 끝냈을 탐구를 이제 와 하다니…. 우리의 명수 옹께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고 하셨지만, 일단은 긍정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적성(適性)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
- 표준어국어대사전
명수옹.jfif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가장 먼저 실천한 건 직장인 적성검사였다. 무려 49,000원이나 결제하고 직장인 경력 진단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12년가량 직장 생활을 이어온 나에게 전문직이 제일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와 버렸다. 예시로 나온 직업들은 전문자격증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나에겐 그런 시험에 다시 도전해 볼 만한 총명함이 남아 있지 않은데 말이다. 역시 명수 옹이 옳았던 것인가.


게다가 생각보다 번아웃 지수가 낮게 나왔다. 나도 불치 수준의 '회사가기싫어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진짜 번아웃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직장인들이 으레 겪는 성장통을 스스로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고 있었나 싶었다. 적성 찾기고 뭐고 지금 다니는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에 아차차 했다. 생각해 보니 매번 이런 식이었던 거다. 늘 행복한 변화를 꿈꾸다가도 여러 핑계를 대며 현실에 안주했다. 내가 자처한 고달픈 인생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생각을 되짚어 봤다. 일단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했다. 많고 많은 관심사 중에 내 커리어와 연결할 수 있는 분야를 좁혀 나갔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홍보팀에서 근무하며 글에 대한 흥미를 잃은 줄 알았지만 그건 회사가 다루는 콘텐츠가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쓴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만의 상념에 대한 글을 써 가기 시작했다. 일할 때와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문체로 담아내니 글짓기가 흥미진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안 되는 레퍼런스를 가지고 브런치스토리 개설을 신청했고 한 번에 승인이 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당장 인생에 찾아온 큰 변화는 없지만 나만의 글 공간이 생긴 것에 감사하며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무료한 삶에 작은 탈출구가 생겼다는 생각만으로도 활력이 도는 요즘이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적성을 되짚어 보고 변화를 찾고 싶은 사람들. 남은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 그분들께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차근차근 나아가자고, 남은 인생에서 제일 이른 시간은 바로 지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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