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이 사회의 바닥으로 붙어버리는 느낌이야." 그녀가 말했다. 꼭짓점에 서 본 적도 없지만, 점점 밀려나고 뒤쳐져서, 사회의 가장 끝에 눌린 기분이라고. 그녀의 말에, 나는 내 신발 끝을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섣부른 위로의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꿈을 꾼 적이 있어. 지독한 악몽이었는데, 그게 예지몽인지는 몰랐네." 그녀는 '악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은 임용 시험에 계속 떨어질 거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 계속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거고. 그 사이 사범대로 진학한 제자들은 졸업할 거고. 몇은 임용 시험에 통과할 거고. 그중에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발령이 나는 제자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 먼저 정교사가 된 제자가, 자신에게 아직도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냐고 묻는 그런 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언어는 항상 정확했다. 국어 교사로서 한글 맞춤법을 준수하는 정확한 단어를 구사했고, 표준 발음법을 따르는 세련된 발음을 구사했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에 한 치의 어색함도 없는 적확한 문장 성분을 조합하여 말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그건 무람없는 짓이었다. 그건 그냥 꿈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분명히 '예지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렇게 기간제 교사 생활이 길어질 줄은 몰랐어." 그녀는 '기간제'라는 말을 할 때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임용 시험 준비를 했지만 불합격했다. 부모는 교사 임용 시험 말고 교육 행정직 시험을 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교사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집 근처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구하고 있었고, 그녀는 기간제 교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부모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임용 시험 경쟁률이 50:1을 넘던 시절이었다.
기간제 교사로 드디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그녀는 매일 들떴다. 일층부터 사층까지 전 교실을 뛰어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국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교실에 들렀다.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봤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심각한 표정으로 꾸짖기도 했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았다. 방과 후 수업에 야간 특별 수업까지 하고 22시 50분이 되어서야 학교를 나올 때에도 명랑한 발걸음이었다.
"그렇게 일할 때만 해도 내가 십 년 넘게 임용 시험에 통과 못할 줄을 몰랐어. 학생들은 내가 인터넷 강사처럼 수업을 잘한다고 이야기를 했거든. 동료 교사들은 내가 엑셀을 잘 다룬다고 똑똑한 선생님이라고 말했어.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까, 내가 이미 임용시험에 통과한 사람 같은 거 있지. 당장이라도 시험을 치면 수석으로 합격할 것만 같았어."
물 가득 머금은 크레파스로 자신의 과거를 색칠해하는 듯한 그녀의 이야기였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힐링 에세이나 자기 위로서를 읽지 않았던 나의 독서 습관을 원망했다. 그런 책들 어디엔가는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어떤 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녀를 그대로 방기했다. 나는 그저 들어주는 게 다였다.
"내가 뭐라도 되는 줄만 알았지. 그래서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어. 어떻게 고등학교 2학년이 진로가 없을 수가 있냐면서. 그렇게 꿈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성적도 오르지 않는 거라면서. 나중에 크면 뭐가 되려고 그렇게 집중력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냐면서. 내 말을 듣고 학생들은 주눅 들고 울기까지 했지. 그때 학생들 모두 기억나. 이름도. 얼굴도. 그 표정도."
네가 화를 냈다고? 나는 그녀의 말에 크게 놀랐다. 내가 아는 그녀는 누군가의 삶에 오지랖 넘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학생들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안 그래.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훈수를 둘 처지도 아니고. 그때는 왜 그랬나 몰라. 그때는 마치 학교에 참 교사는 나 혼자인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정신 못 차린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심하게 꾸짖기도 했어. 그런데, 그때 가장 서럽게 울던 학생이 이번 달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정식 발령이 난 거야. 이름을 보고, 설마... 했는데, 그 애가 맞더라고. 미리 인사까지 왔거든."
그래서, 그 애가 너를 찾아와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야? 선생님은 아직도 기간제 교사하냐고? 이런 미친! 나는 다리를 심하게 떨면서 불안해하며 말했다. 제발 그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시뻘건 얼굴로 흥분한 나를 보면서, 그녀는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