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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행복권 Oct 21. 2023

이름 생각

박준걸 상병에게 맞아, 이마가 벌겋게 부었다. 그는 앞니가 톡 튀어나와, 박토끼라고 불렸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자신을 놀리는 말들에 과격하게 반응했다. 그런 그가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을 던졌고, 내 이마를 정확히 맞추었다. 그는 열이 뻗쳐 쓰레기통을 바닥에 던졌지만, 그것은 놀라운 탄성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하였다. 아악!


그는 내 이마가 벌겋게 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당황했다. 그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나를 살폈다. “야 인마! 일부러 그런 게 아냐. 난 그냥 화가 나서 바닥에 던졌는데... 그러니까 왜 축구할 때 그런 말을 했어!” 


일병 ㅇㅇㅇ! 괜찮습니다. 찍힌 것도 아니라서 그냥 두면 저녁이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말실수해서 죄송합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허파를 두들기며 나는 겨우 대답했다. 나는 자꾸 터지는 웃음을 심호흡으로 누르고, 그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담배를 건넸다. 나는 찌그러진 쓰레기통을 안고, 그가 건넨 담배를 물었다. 여전히 웃음이 나왔다.


담배 두 대를 연이어 물던 그가 손을 달달 떨면서 말했다. “웃는 거 보니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네. 앞으로 축구할 때는 입 다물고 해라. 이 자식아!” 나는 그 말에 마음을 놓고 편하게 웃었다. 낄낄. 나는 쓰레기통에 맞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군대의 일병은 회사의 대리와 같다. 실무 담당자로서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선임의 지시를 따르고, 후임을 교육한다. 일병은 기상부터 취침까지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나 역시도 10초 이상 입을 다물 일이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이동할 때는 군가를 불렀고, 훈련 때는 구령을 외쳤다. 일과 이후에는 부대 잡일을 하면서 수많은 잔소리와 더 많은 우스갯소리를 했다.


특히 소대 대항 축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푸시푸시! 푸시하라고 인마! 머뭇거리고 있는 후임들을 향해 크게 일갈했다. 나이스 패스! 나이스 슛! 운동장을 누비는 선임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원래 목소리가 큰 데다 경상도 출신의 강한 억양은, 우리 팀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쉼 없이 질러대는 외침에, 상대 팀 선임들은 “축구할 때 입 좀 닥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10초 동안 입을 닫았다가 다시 푸시푸시! 슛 슛! 을 외쳤다.


엇비슷한 기량을 가진 22명이 모두 최선을 다하는 경기에서는 한 골이 승부를 가른다. 후반전 40분이 넘어서 우리 소대에 기회가 왔다. 수비수 측에 있던 내가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공을 중앙선 넘어서까지 몰고 나왔다. 상대팀 수비수들은 시끄러운 나에게 모조리 붙었다. 어디서든지 큰 목소리로 끊임없이 지껄이면 주목을 받는 법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수비수들이 더 가까이 붙기를 기다렸을 때까지 기다렸다. 곧 수비수들이 나를 둘렀다. 이때다! 나는 측면 미드필더 박준걸 상병에게 긴 패스로 공을 보냈다.


공은 정확하게 박준걸 상병의 발 앞에 떨어졌고, 그는 중앙선을 조금 넘자마자 골대를 바라보며 뛰어갔다. 나는 그의 슛이 이 지난한 경기를 끝내기를 바라면서, 습관처럼 소리를 질렀다. 중거리 슛! 중거리 슛! 중거리 중거리! 가자 중거리!! 그는 내 큰 목소리에 갑자기 당황해서 멈칫했다. 그것 때문인지 그의 슛은 골대를 한참이나 빗겨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소대의 응원단과 상대 소대의 응원단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응원단이 웃는 것이 의아했다. 아무리 슛이 골대를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웃을 일인가? 나는 응원단을 돌아봤다. 그들은 나를 가리키면서, 손바닥을 가로로 펼쳐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내가 곧 죽을 목숨이라고? 나는 그 제스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았지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랐다. 고개만 갸웃거리며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나와 박준걸 상병을 제외한 우리 팀원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박준걸 상병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 보았다. 나는 상황이 이해가 안되었다. 하릴없이 나이스 중거리만 외쳐댔다.


결국 우리 팀은 상대팀에게 한 골을 허용했고 경기에서 졌다. 우리 소대는 벌칙으로 한 달 동안 중대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했다. 상대팀은 중대장 포상으로 2명이 2박 3일의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박준걸 상병에게 불려 갔다. “야! 인마! 내가 우습냐! 선임 이름으로 놀려? 그것도 상대 소대도 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자동차 압착기에 머리가 끼인 듯 머릿골이 아팠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토끼라고 놀린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다들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나는 상대 소대가 있는 자리에서 그를 놀린 적이 없다. 


그는 멍한 내 표정을 보고, “야!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냐?”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그때까지 왜 박준걸 상병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지를 몰랐다. 박준걸 상병님, 정말 몰라서 그렇습니다. 알려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그는 내 대답을 듣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축구할 때, 네가 내 이름 부르면서 준걸이 슛해 준걸이 슛이라고 말했잖아! 인마! 우리 소대랑 다른 소대에 웃음거리 만들고!” 생각지도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했다. 흐으흠... 흠흠.... 박준걸 상병님 그게 아니고, 그 슛이... 낄낄... 어.... 이게 아니고... 깔깔깔....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박준걸 상병의 화를 돋우었다. 그는 내 웃음을 멈추려고 일부러 과하게 행동했다. 옆에 있던 스테인리스 쓰레기 통을 바닥으로 던지며, “그만하라고 이 자식아!”라고 화를 냈다. 그 쓰레기통이 바닥을 한번 퉁기고 내 이마를 찧은 것이었다. 그렇게 한 대를 맞고 나니, 웃음이 잠시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터져 나왔다. 중거리 슛이라고 말한 것이, 박준걸 상병에게는 준걸이 슛이라고 들렸다니. 그거 때문에 소대원들이 웃었다니.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이 맞구나. 낄낄


제대한 지 13년이 지났다. 더 이상 일병으로서 끊임없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강사로서 수강생들에게 강의 시간 동안 쉼 없이 말을 한다. 쉬는 시간에도 앞자리에서 쉬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계속 말을 건다. 나는 당시 일병이라서 말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라서 끊임없이 지껄였던 것이다. 그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강의를 시작하면, 나는 수강생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출석을 확인한다. 일부러 이름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해 본다. 박준걸 씨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웃음이 차오른다. 수강생들의 이름을 천천히 말할 때마다 목청이 미세하게 떨리며 웃음이 나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미소 짓는 나에게, 수강생들은 선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한다. 모두 박준걸 씨 덕이다. 


뉴스에서 북한 관련 뉴스를 본 날이면, 밤에 군대 꿈을 꾼다. 쓰레기통이 튀어 올라 내 이마를 두드리고, 나는 중거리 슛을 이야기하며 크게 웃는다. 내 옆에는 담배를 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박준걸 상병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남자들은 군대 꿈을 꾸면 식은땀을 흘리며 깬다. 나는 군대 꿈을 꾼 날이면 어떤 날보다 기분 좋은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연락처도 없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하지만 꿈속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박준걸 씨! 지금 이 글 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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