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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Dec 24. 2018

김춘수, 이소룡 그리고 아이유

'Hands+' 편집자의 글

*이 글은 지난 1년(2018년) 동안,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공예 잡지(계간) 'Hands+'편집위원 활동을 마감하며 기고했던 글(편집자 글)을 옮긴 것입니다. 



학창 시절 김춘수 시인의 ‘꽃’을 좋아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특히 좋아했던 구절입니다. ‘시’라는 장르가 조금 어렵게 여겨졌을 때 “시가 참 쉽고 편안하구나!” 느꼈습니다. 20대 청춘시절, ‘나만의 꽃’을 찾아서 때로는 무모했고, 또 때로는 무책임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1973년 7월 20일, 서른 두 해의 짧은 생을 마친 무도인이자 영화배우기기도 했던 이소룡(Bruce Lee)은 ‘절권도’라는 생애 유일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이 책 헌사(Dedication)에는 이런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유용한 것을 찾고 그것만 흡수해라. 필요 없는 것은 버려라. 본질적으로 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취해라.” 어느 무림고수의 일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제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올려져 있는 아이유. 아이유가 80년대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의 곡을 리메이크한 ‘어젯밤 이야기’는 소방차를 보면서 자란 제게 소방차도 기억나게 하고 또 아이유도 생각나게 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 뮤지션이 30여 년 전 스타의 노래를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존경의 헌정’이며 ‘결절 없이 이어지는 예술’의 속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 ‘김춘수’와 영화배우 ‘이소룡’, 가수 ‘아이유’를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도 알고 계시듯이 우리 삶은 ‘누구’를 ‘무엇’을 어떤 ‘때’를 만나느냐에 따라 정말 드라마틱한 반전을 일구어 냅니다. 시 속에서는 ‘그’가 ‘나’를 만나 ‘꽃’이 되었고, 무예에서는 ‘필요 없음’이 ‘유용함’을 만나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노래는 또 어떤가요? 추억의 노래가 후배 가수의 ‘존경’ 만나 멋진 ‘뮤직비디오’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일상의 유용함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공예’는 ‘효용’의 유효기간이 다 되면서 일상에서 조금은 멀어진 ‘예술’로 남겨지기도 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사라짐을 가볍게 여기는 생각’입니다. 원래 ‘효용’이라는 것의 속성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떤’ 식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수많은 ‘변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짐’에 대한 경계는 ‘공예’를 바라보는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하고, ‘임자’를 만날 때까지 지키고 기다려 주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여러분께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지금도 김춘수의 ‘꽃’과 이소룡의 ‘절권도’, 아이유의 ‘어젯밤 이야기’가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것들로 보이시나요? 우리 기억 속에서 잊히고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도 될 것들이었나요? 


‘쏜 살’보다 수만 배 빠른 5G의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소룡이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유용한 것을 찾고 그것만 흡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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