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대로 던지면 만고 땡이다.

by 황금지기


조정 구간에서의 잦은 진입은 심리를 끊임없이 흔들고, 결국 추격과 뇌동이라는 파멸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 시세에 현혹되어 중간 진입점조차 거르지 못하는 것은 “돈은 추세 추종을 따른다”라는 시장의 절대 규칙을 망각한 탓이다. 예측에 의한 선취매, 역진입, 그리고 조정 구간에서의 무리한 욕심—이 모든 무리함은 '터무니없는 확신'에 불과한 집착일 뿐이며, 투자자의 생명줄인 호흡과 간격을 무너뜨려 제자리에 맴돌게 만든다.


모든 파동을 다 취하려는 욕심은 치명적인 독이다. 이것저것 다 탐내는 마음 때문에 정작 쉽고 유리한 방향조차 놓쳐버린 채, 계좌에는 먹구름만 가득하고 잦은 손실의 비에 돈 농사를 망치기 일쑤다. 투자의 성패는 습관에 달려 있다. 시세를 이리저리 쫓아다니지 말고, 그저 유리한 방향의 길목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시장은 “항상 반대로 붙여놓고 가지만, 결국에는 추세 흐름대로 간다”라는 확률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주 반대로 붙이지만, 자주 망각할 것이다.


실력의 핵심은 하지 말아야 할 구간을 거르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잘 기다릴 수 있다면, 그리고 추세 흐름대로 칩을 던지는 행위만을 반복할 수 있다면, 당신을 괴롭히던 고통은 끝이 나고 ‘만고 땡’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밤잠을 설치지 않을 방법을 택하라. 돈을 관리함에서는 밤잠을 설치지 않고 안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최고 수익률을 노려야 한다거나 소득의 몇 퍼센트를 저축하라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최고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면 잘 자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보수적으로 투자해야만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그러나 이게 내가 밤에 잘 자는 데 도움이 될까? 라는 기준은 모든 금융 의사결정에서 누구에게나 최고의 이정표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아야만 시장에서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 견뎌내는 시간 속에서 엄청난 복리의 혜택과 실력, 감각이 향상되는 시간의 힘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버텨낼 힘을 얻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돈을 잃는 아픔보다 무서운 것은 심리가 흔들릴 때 찾아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다. 건강을 잃으면 스트레스는 극점에 달하게 되므로, 언제나 심리가 편안한 매매를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 시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방하독선(放下獨善)’ 하라 이른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늘 곁에서 다정하게 속삭인다.


최고의 수익률보다 최상의 숙면을 선택하라. 건강을 갉아먹는 수익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다. 복리의 마법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시장에 머무느냐에 달려 있고, 그 장기전의 승부처는 당신의 건강이다.




세상사 항상 겹치면서 등락할 뿐이다. 인간사의 이치가 그러하듯, 실력 또한 무리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비록 ‘병아리 눈물만큼’일지라도 반드시 우상향하게 되어 있다. 버티는 시간 그 자체가 경험이며, 그 경험은 다시 실력의 단단한 바탕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단 하나, “파산하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것이다.


파동을 다루는 기술은 결국 지지저항에 따라 생겨나는 공간을 따먹는 게임이다. 지지대는 무너지면 저항대가 되고, 저항대 또한 돌파되면 지지대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오직 유연한 대응만을 생존법으로 삼아야 하는 근거다. 꼬리가 몸통이 될지, 몸통이 꼬리가 될지는 오직 확률의 영역이지만, 유리한 방향으로 칩을 기계적으로 던진다며, 그 끝에는 지지저항의 원리에 따른 확률적 우위가 기다리고 있다.


지지저항을 보면 유리함이 보인다. 유리한 방향은 파동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므로, 변화된 방향에 맞춰 대응해야만 최후의 생존자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블랙잭에서 카드 카운팅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확률의 게임’을 하고 있을 뿐, 결코 확실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이 옳을 확률이 높지만, 틀릴 확률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안다. ‘겸손’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확률이 유리해 보인다고 해서 너무 큰돈을 건다면 틀렸을 때 그만큼 큰돈을 잃기 때문에 게임을 지속할 돈이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해도 내 앞에 있는 칩을 몽땅 걸 수 있는 순간은 없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상수는 자신이 확률 게임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는 자신이 옳을 확률이 높을 때조차 틀릴 확률이 공존함을 잊지 않는 겸손에 의존한다. 반면, 많은 이는 결정적 단서를 찾은 형사처럼 확신에 사로잡혀 ‘이번에는 다르다’라며 판돈을 건다. 상수는 이곳에 확실한 것은 없으며 단지 ‘유리할 뿐’이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그들은 판돈이 올려지는 순간부터 확신에 차 있었다. 그 확신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단호한 명령 같았고, 마음 밖으로 밀어내기에는 이번 확신의 몸매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시장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 예상한 일과 실제 벌어지는 일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실수를 대비한 방책을 세우고 계속해서 버틸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확신에 차 모든 칩을 던진 이들에게 결과는 늘 잔혹하게 반복될 뿐이다.


확신함은 도박꾼의 마음이고, 유리함은 투자자의 마음이다. 아무리 유리한 패를 쥐었어도 칩을 몽땅 걸지 마라. 어떤 파동에도 확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유리할 뿐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실수를 대비한 여지)’의 목적은 예측을 불필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고 확실성이 아니라 확률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안전하게 헤쳐 나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버틸 수만 있으면 확률이 낮은 상황에서도 이득을 취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아주 큰 이득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자주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불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우리는 예측이 틀렸을 때를 대비한 여지를 두어야 한다. 항상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낙관적 편향이 부르는 악마인 레버리지를 낮추지 않는다면 시장의 흔들림을 견뎌낼 수 없다. 작은 손실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빠져나오는 결단력이 없다면, 결국 정서적 붕괴가 찾아오게 된다. 심리가 무너진 인간은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르며 파산의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몬다.


그러므로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손절이라는 원칙은 결코 철회해서는 안 된다. 손절은 깨달음의 비탈길을 오르는 투자자의 안전띠다. 또한, 유리한 방향으로 확률 게임을 지속하길 원하는 자에게 시장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수업료이기도 하다. 살아남는 자만이 복리를 누릴 수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파산의 가능성을 ‘0’으로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패배하는 이유는 틀렸을 때의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손절은 상처가 아니라, 다음 기회를 사기 위한 저렴한 비용이다. 아무리 높은 승률도 파산의 위험 앞에서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이다.




“매몰 비용(환불받을 수도 없는 과거의 노력에 얽매인 의사결정을 하게 만든다)은 사악한 역할을 한다. ‘미래의 나’를 ‘과거의 나’의 포로로 만든다. 이는 마치 낯선 사람이 나 대신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과 다른 사람일 때 세웠던 금융 목표는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시간을 질질 끌 게 아니라, 가차 없이 버리는 편이 낫다. 그것이 미래의 후회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더 빨리 이런 결단을 내릴수록, 더 빨리 새로운 복리의 마법을 시작할 수 있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손절은 단순히 손실을 확정 짓는 고통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나’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선물하는 결단이다. 파동이 매 순간 변하듯 사람의 생각도 변하기에, 세웠던 계획이 시장과 맞지 않는다면 손실은 짧게 자를수록 좋다.


파동은 언제나 위아래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 존재다. 상방의 확률이 높아 보여도, 조금만 밀리면 하방의 확률이 높아졌다가도 상방으로 추세를 돌리기도 한다. 변하는 파동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고집으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가차 없이 버릴 때, 비로소 새로운 복리의 마법이 시작된다.


예측이 죽여야 현상이 살아난다. 파동이 변하면 생각도 변해야 하고, 생각이 변하면 대응도 변해야 한다. 손절이라는 가차 없는 결단은 과거의 늪에서 건져 올리는 구원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놀이공원의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입장료를 내듯, 변동성, 불확실성, 의심, 후회는 수수료다. 흔히 친절함과 성실함이 인격에서 나온다고 믿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체력에서 나오고, 여유로움과 덤덤함은 든든한 계좌에서 나온다고 정의하는 것이 훨씬 옳다.


매일 복기하고 공부하며 노력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올 행운을 알아보기 위함이며, 동시에 위험을 지속해서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노력만으로 성공한다는 오만을 버리고, 상당 부분이 ‘행운’에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겸손해져야 한다. 확률의 세계에서는 한 끗 차이로 대담함이 무모함이 되고, 무모함이 대담함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행운과 우연이 삶을 흔드는 투자에서 겸손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겸손은 인문학적 소양 위에서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다.


겸손은 행운이 머무는 자리를 식별한다. 이룬 성취 속에 숨어 있는 운의 존재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지면 지속 가능한 실력이 행운을 부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공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변해가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는 바로 꾸준한 반복이며, 그 반복이 쌓여가는 시간을 온전히 믿어보는 것이다. 두 가지 법칙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는 올바르게 소비한 시간이 결국 욕심을 깎아낸다는 ‘나이 듦의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습관이 몸에 익을수록 성취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반복의 법칙’이다.


돌이켜보면 늘 실패의 끝에 남겨진 정답은 결국 탐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탐욕은 결코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본성이겠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크기를 줄여갈 수는 있다. 삶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거대한 부는, 실력이 시간의 본질을 정서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수용했을 때 비로소 당신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탐욕을 깎아내는 것은 시간과 반복이다. 실력은 돈이 되지 않는 고독한 시간을 묵묵히 버텨내는 인내의 산물이다. 자본이 스스로 자본을 불려 나가는 그 지루하고 정체된 시간을 아무런 동요 없이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한 ‘정서적 근육’—그것이 바로 진짜 실력이다. 기법은 찰나의 수익을 줄 수 있으나, 정서적 근육은 영원한 자유를 선사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좋은 경우도, 나쁜 경우도 결코 없다. 세상은 크고 복잡하다. 행운과 리스크는 모두 실재하며 식별하기가 어렵다.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나를 판단할 때도 남을 판단할 때도 겸손을 찾고 용서와 연민을 생각하라.”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생각만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실제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투자의 세계에서 '주관적인 판단'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결코 개입되어서는 안 될 존재일 뿐이다.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하지 않았던가. 족함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시장에서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파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세운 원칙을 장기간 고수하기 위해 가장 쉽고 편안한 유리한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도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변동성이 다반사인 이곳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다. 끊임없이 이익을 챙기며 누적하는 것이다.


탐욕을 멈추어야 위태롭지 않다. 시장의 등락 때문이 아니라, 그 등락에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주관적 해석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맞는가, 틀리는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옳았을 때 얼마를 벌었고, 틀렸을 때 얼마를 잃었는가이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투자의 성패는 옳았을 때는 얼마나 길게 수익을 극대화했는가(How Long), 그리고 틀렸을 때는 얼마나 빠르게 손실을 끊어냈는가(How Fast)가 좌우한다. 시장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어디까지 몸통이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바다다. 상황은 언제나 바뀐다는 경제학의 초석처럼, 파동은 변하고 겹치며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가능성의 세계다.


상수는 나폴레옹의 정의처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갈 때, 지극히 평범한 원칙을 평상심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돈이 움직이는 모든 전장에서 최대의 적은 '생각'과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성급함, 희망, 탐욕이라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원칙을 세웠던 '과거의 나'와 탐욕에 눈먼 '지금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기에, 인간의 본성에만 의존해서는 그 어떤 기법과 원칙으로도 장기간 살아남을 수 없다. 가장 어리석은 파멸은 ‘터무니없는 확신’을 맹신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확신은 유연한 대응을 살해하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가장 어리석은 파멸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확신’을 맹신하는 것에서부터 싹튼다. 투자는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수익의 길이와 손절의 속도를 다루는 게임이다. 과거의 내가 세운 원칙을 배신하는 ‘지금의 나’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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