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하우절이 ‘실수의 여지’의 사촌을 ‘낙관적 편향’이라 했다면, 시장에서의 ‘똑똑함’의 사촌은 아마도 ‘멍청함’일 것이다. 똑똑하다 믿으며 시세를 예측하지만, 시장은 그 오만한 생각들을 '터무니없는 확신'이나 '뇌동'이라는 이름의 멍청함으로 증명하며 우리를 비웃곤 한다. 미천한 경험과 식견으로 빚어진 ‘나만 옳다’는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투자의 관건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넘어, 생각의 한계를 인정하며 흐름을 겸허히 따르는 것이다.
시장에서 수많은 뱁새의 가랑이가 왜 찢어졌는지 아는가? 왜 찢어진 가랑이를 벌리고 시장 앞에서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아는가? 그것은 자신의 분수를 잊고 황새의 보폭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뱁새는 뱁새답게, 자기만의 보폭으로 ‘조금씩’ 그리고 ‘누적’이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 소박하고도 정직한 발걸음만 꿈을 현실로 만드는 통로다.
보폭을 줄이면 시장의 풍경이 보인다. 시장이 자꾸만 상처를 주는 이유는 자신의 보폭보다 더 큰 수익을 탐냈기 때문이다. 황새를 흉내 내지 마라. 매일의 작은 수익을 정성껏 모으는 '뱁새의 누적'을 실천해야 그 소박한 반복이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룰 것이다.
투자 행위에서 행해지는 지독한 복기와 반복의 진정한 목적은 기법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계곡과 깨달음의 비탈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심리를 변모시키는 '심리의 변신'에 있다. 인간의 본성, 망각, 그리고 뿌리 깊은 나쁜 습관이라는 위기의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변신이며, 깨달음의 비탈길을 끝까지 오르기 위한 수행이다.
“또 기다려야 해요. 맨날 기다려야 해요. 아니라면 기다려야 해요.” 수많은 이들이 토로하는 이 말에 투자의 진리가 있다. 서서히 만들어지는 자리를 배우고 익혀서 아는 것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과일을 영글게 하듯, 투자의 실력 또한 물리적인 시간을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영글어 간다. 잃지 않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며, 수익을 챙겨 누적을 만든 뒤에도 다시 다음 기회를 위해 기다림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기다림은 실력의 가장 높은 단계다.
기다림은 실력의 숙성 시간이다. 억지로 익힌 과일은 맛이 없듯, 서둘러 취한 수익은 결코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스스로 영근 수익만이 당신의 계좌를 살찌울 것이다.
“내 비밀을 말해 줄게. 비밀은 아주 단순해.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들은 이 단순하고도 위대한 비밀은 투자의 본질을 관통하는 예리한 화두다.
투자에서 ‘마음으로 본다’라는 것은 요동치는 가격에 현혹되지 않고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이며, ‘눈으로 본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가격의 움직임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기계처럼 손절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인간의 보통 뇌로는 버겁고 불편한 일임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 방의 유혹, 성급한 선취매, 전체를 다 먹으려는 탐욕으로 흐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 본성을 억누르기보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 가는 '성장의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인간의 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의지라는 연약한 끈 대신 마음의 길목마다 든든한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 추격과 뇌동을 막아서는 수호신, ‘원칙의 장승’을 세워라. 등락의 흔들림을 견디고, 부분보다 전체를 보며, 누적의 마법을 신뢰하는 원칙이 소중한 곳간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어야 한다.
본성을 이기려 하지 말고 반복의 시간으로 길들여라. 조금씩 길들이며 나아가는 반복의 시간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값진 수익이다. 마음의 길목에 세운 원칙의 장승이 곳간을 지키는 유일한 수호신이다.
‘하나는 외로워서 둘이랍니다.’ 파동은 지독하게 외로움을 탄다. 파동은 홀로(외봉·외바닥) 먼 길을 떠나기를 주저하며, 쌍을 이루고 나서야(쌍봉·쌍바닥) 제 갈 길을 가곤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항상 반대로 붙여놓고 간다’라는 의미 또한, 파동이 제 길을 가기 전 짝을 찾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연속해서 고점과 저점을 끊임없이 갱신할 확률은 극히 낮다. 파동은 늘 겹치고 등락하며 숨을 고른다. 그러니 마루나 골의 끝자락에서 조급하게 추격할 이유가 없다. 추세선이 우상향하며 반등할 때 매도하고, 우하향하며 눌림을 줄 때 매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프로 스포츠에서 약팀이 강팀을 한두 번 이길 수는 있어도, 경기 횟수가 거듭될수록 승리는 결국 강팀의 차지가 된다. ‘유리한 방향’으로 지속해서 칩을 던지는 행위는 곧 강팀에 베팅하는 것과 같으며, 반복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은 투자자가 도달해야 할 확신에 찬 확률적 사고다.
짝을 이루면 확률이 높아진다. 파동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 짝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면 강팀에 베팅하는 것과 같다.
계곡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원칙의 길로 들어서 보지만, 시장은 늘 ‘줬다가 뺏고, 챙기면 더 가고, 버티면 반대로 가는’ 식의 끝없는 조롱으로 우리를 시험한다. 그 조롱 앞에 다시 절망의 계곡으로 내동댕이쳐지기를 반복한다. 시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만만치 않으며, 「돈의 심리학」에서 경고하듯 인간의 본성에서 탐욕을 지워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우리는 ‘머리로 견딜 수 있는 것’과 ‘가슴으로 견딜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대한 틈새를 너무나 쉽게 간과한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인내를 말하지만, 실전에서는 돈과 심리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오랜 시간 단련하지 않고서는 그 정서적 압박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감각에 굳은살이 박인다는 것은 보통의 인간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 냉혹한 진실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야만 버틸 수 있다. 「행복 = 결과 – 기대치」라는 공식을 가슴에 새기라.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수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 기대치가 낮아질 때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고, 그 작은 행복감은 더 오래 버티게 한다.
버티는 힘은 의지보다 평온함에서 나온다. 절망의 계곡으로 굴러떨어지는 이유는 마음의 기대치가 시장이 주는 결과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당신의 경험은 아마도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0.00000001%와 당신이 머릿속으로 세상의 원리라고 ‘생각하는’ 내용 80%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깨닫게 된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원칙과 생각들이 감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말이다. 생각이란 그저 미천한 개인의 경험에 뿌리를 둔 채, 세상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은 붙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자꾸만 생각으로 그려내는 파동, 그 터무니없는 확신은 실제 시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오직 자기 안에서만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허상이다. 미미한 경험을 가지고 세상의 원리를 다 아는 양 고집 피우는 오만을 버릴 때, 비로소 시장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소음일 뿐 시장의 원리가 아니다. 내 안의 감정 파동이 잦아들수록, 시장이 선물하는 수익의 파동은 더 크게 다가온다. 자신의 초라한 경험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 지독한 겸손함이야말로, 모든 번뇌를 내려놓는 방하착의 시작이다.
죽고 못 살 것 같던 뜨거운 사랑도,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간절한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갈대처럼 흔들리는 감정의 기복을 가진 인간이 어찌 유유히 흐르는 장강과도 같은 파동의 거대한 흐름을 쫓아갈 수 있겠는가. 현명한 이가 사랑하는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지 않듯, 상수는 ‘파동 또한 인간의 감정처럼 수시로 변한다’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친 사람이다. 그는 결코 부분에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으며, 오직 늘 변하는 파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뿐이다.
돈은 자생적으로 불어나는 누적의 힘으로 커지는 것이지, 실력과 노력의 가면을 쓴 욕심과 탐욕으로는 붙잡을 수 없다.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욕심을 체념시키고 다스리는 길은 지치지 않는 반복뿐이다. 반복과 복기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허무한 세월은 깨달음으로 승화될 것이다. 꼬리는 본질이 아니나, 때로는 전체를 흔들며 좌우한다. 하지만 반복을 통해 꼬리의 흔들림을 극복하면, 시장의 조롱은 어느덧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게 된다. 배워서 아는 것이 감각으로 체화되기까지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의 조롱을 농담으로 받는 자가 상수다. 감정이 변하듯 파동도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어제의 확신에 오늘을 걸지 않는 냉정함이 계좌를 지킨다. 시장이 꼬리를 흔들며 비웃을 때, 함께 웃어줄 수 있는 여유로움은 지독한 반복의 결과다.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결국 변하기 마련인 인간의 본성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매일 마주하는 눈동자를 보면서도 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 그것이 관계를 지속하는 길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파산하지 않는 방법은 항상 틀릴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불리한 결과가 언제든 덮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의 토대 위에 실수의 여지를 ‘크게 크게’ 두어야 한다. 여지가 넓어야 비로소 파동의 큰 흐름을 온전히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으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이 지독한 모순을 줄여가는 과정이 곧 시리고 아픈 경험이며 ‘나이 듦’이라면, 수시로 변하는 파동의 모순을 줄여가는 과정은 바로 ‘반복과 복기’다. 결국 세상사의 이치는 매한가지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할수록 실수의 빈도는 줄어들고, 실수의 여지를 크게 둘수록 파산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여백을 크게 두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는다 실수의 여지를 크게 둔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향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완벽함을 믿는 오만한 자는 작은 흔들림에도 부러지지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실수의 여지를 넓게 열어두는 자만이 시장의 모순을 뚫고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
“낙관주의는 중간에 차질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믿음이다. 현명한 낙천주의는 확률이 나에게 유리하며, 중간에 많은 고난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맞춰져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이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투자의 근간이 되는 확률적 사고는 낙관주의에 기반한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유리한 방향이 옳을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이 있어야만 장기적인 복리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복기와 반복의 과정에서 비로소 잉태되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상수는 시간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시간은 곧 돈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자 인간이 하는 일의 주체는 결국 시간이라는 인식 뇌리에 새긴 자다. 그는 인간의 지울 수 없는 본성인 '성급함'과 근거 없는 '희망'을 현재형으로 마주하며 극복해 나간다. 시간이 주는 복리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오늘도 그는 자신의 본성을 다스리며 묵묵히 유리한 방향에서 자리를 기다린다.
투자는 유리한 확률에 베팅하고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자가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현명한 낙관주의자는 눈앞의 일시적인 시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에게 시련은 확률이 완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인 정거장일 뿐이다.
“내가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계산하고 해결해야 할 분석적인 문제가 아니라, 누가 긁어주어야 할 정서적 가려움증 같은 것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불확실하다는 현실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스토리에 집착한다. 세상이 당신 생각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당신밖에 없는 탓도 있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우리는 세상의 원리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적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머릿속의 한정된 모형만으로 거대한 세상을 설명하려는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주식시장은 결코 예측의 대상이 아니며,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고 인덱스펀드에 장기 투자하는 편이 현명한 길이다. 물론 큰 흐름을 읽고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몇 해 정도 시장을 잘 만나 우월한 이익을 거두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견디기란 절대 쉽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쉽게 얻은 이익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필연적으로 탐욕을 부른다. 그렇게 탐욕에 휘둘리다 보면 결국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뒤처질 확률이 높다. 장기투자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여유롭고 덤덤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데이트레이딩에서의 장기투자, 즉 ‘검증된 원칙의 반복’ 역시 이 평온한 덤덤함과 결을 같이 해야 한다.
통제의 착각은 정서적 가려움증일 뿐이다. 시장에 개입하려는 욕구가 잦아들 때, 투자의 평온이 시작된다. 시장을 제 뜻대로 굴복시키려 드는 자는 시장이 던지는 작은 물보라에도 쉽게 휩쓸려 무너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