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불안해서 병원을 가야겠다고 말하기 전부터 상황은 안 좋았다.
1월에 수술을 받고 난 후, 둘째는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엄마 나 2월까지만 좀 쉴게요.
초등학생 때에도 보지 못한 둘째의 쉼이 시작되었다.
초등학생부터 두 딸들은 방학과 상관없이 언제나 10시 전에 집을 나섰다.
공부든 예체능이든 체험학습이든 매일 뭔가를 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장 미친 듯이 바쁘게 산 것은 아빠. 그다음 조금 덜 미치게 바쁘게 산 것이 엄마.
그러니 다 함께 모두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이자 삶이라 여겼다.
어리다고 안 봐줘.
첫째보다 둘째가 더 부지런했다. 더 욕심 많고 공부도 더 잘했다.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으며 선생님의 칭찬을 독식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고1 겨울방학부터 학원을 가는 날에는 갑자기 복통 혹은 두통을 호소하며 갈 수 없다 하였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예 공부에 손을 놓고 침대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3월이 되고 개학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책임감이 뛰어나고 성실한 우등생인 둘째이니까.
3월이 되어 원래 다니던 학원을 다시 다니고 학교생활을 하고 학교 친구들을 보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좋아진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학원숙제를 안 하기 시작했고 집에 와서는 복습 혹은 과제 등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왜 이러나 싶었다.
2년만 버티면 대학인데,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 마지막 수능이어서 재수도 어려운데.
지금 성적 유지만 하면 인서울 어느 정도는 무난히 들어갈 텐데 제정신인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할 거면 특성화고로 전학을 가든지.
엄마 아빠 믿고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너만 힘드니. 엄마 아빠도 소싯적 힘들었다.
엄마 아빠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넌 부모님에게서 뭘 배운 거니.
둘째의 힘듦을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 건지, 힘듦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푸시해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무작정 기다려줘야 하는 건지, 남은 2년 버티고 끝내도록 끌고 가야 하는 건지.
남편과 나의 기준으로는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았다. 우리 둘의 인생은 멈춤도, 쉽도 없었다.
울더라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그와 나의 삶이었다.
그래서 둘째의 아픔과 연약함을 완전히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고, 나는 이 와중에 우울증이 재발하였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야지
너는 나보다 더 잘살아야지
나보다 더 능력있고 더 부지런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자녀를 키우며 은연중 생각했던 것이었다.
둘째의 힘든 시기를 겪으며 자녀를 향한 나의 요구, 욕구를 모두 반성하게 되었다.
방학 중에는 좀 쉬게할 걸.
자녀의 방학에도 남편과 나는 쉬지 못했다. 그래서 자녀도 쉬지 않고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모든 식구는 아침에 다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어리석었다.
내가 다른 부모에 비해 자녀들과 많이 대화했기에, 더 많이 함께 활동하고 웃었기에, 잘키우고 있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교육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고 교육관련 영상도 늘 시청하기에, 자녀들이 착하고 순하고 부모와 사이가 좋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지만, 계획적이고 이성적이며 부지런한 부모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지를 못했다. 부모의 기대와 높은 수준을 버릴 수가 없어 구멍난 마음을 감추고 메꾸어보려 혼자 애쓰다가 절망에 빠졌다.
미안해. 더 빨리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 기준으로 세상 바라보지 않기
내 기준으로 자녀 바라보지 않기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인정하고 기다려주기
모든 기대를 내려놓기. 아이의 마음에 집중하기. 살아있음에 감사하기.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