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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랑

결혼 20주년, 사랑하는 남편 이야기

by 해이나

우리 부모님 처럼 살지 말자!


이것이 저의 결혼의 큰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아버지는 유독 어머니에게만은 함부로 하셨습니다. 부부동반으로 외출하시면 밖에서는 웃고 대화하시다가, 집에 오면 밖에 있었던 일을 거론하며 어머니에게 화를 내셨지요.


어머니는 지금도 사리분별이 분명하시고 암기력이 뛰어나시고 생활력이 강하십니다. 하지만 수많은 강점의 어머니를 아버지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셨습니다.


아버지가 던지신 쓰레기통의 파편들이 쓰레기와 함께 굴러다니고, 피아노 의자를 집어 던져 마루가 파이고, 상을 뒤엎으셔서 온 바닥이 음식찌꺼기가 되던 여러 날들.


갑자기 소리지르면서 시작되는 구타와 공포의 시간들. 어머니에게 쌍욕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던 고모, 할머니, 작은 아버지.


부엌 한 구석에서 난로를 켜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용히 울던 엄마의 모습.


저는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엄마는 아빠랑 왜 살아요?"

"그냥 결혼하고 아이 생기니까 사는거지. 너희 때문에 사는 거야."


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저는 어머니같이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여기를 탈출할거고 절대로 남자에게 매이거나 생활비를 타며 살지 않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사는 여성이 될거라고 수도없이 되내였습니다.




저는 교회 사모님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는 유교걸에 모쏠이었고 남편도 거의 모쏠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둘다 서로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데이트에 무지한 덤앤더머 머저리 바보들이었습니다. 서로 바빠서 주중에는 보지 못하고 간신히 만난 주말에 잡은 데이트 코스가 서초역에서 교대역까지 한겨울 칼바람 맞으며 걷는 거였습니다.


어색해서 손도 못잡고 팔장 끼는 것도 어쩔 줄 몰라 하던 사이에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시댁에서 경제적 형편으로 반대를 했는데 남편이 하겠다고 우겼습니다.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저는 '안되면 안되는 거지 뭐.' 하고 있다가 남편이 한다고 그래서 '아 그러면 결혼 하나보다.' 그랬습니다.


소심한 저는 아빠를 유독 많이 닮은 제가, 남편을 함부로 대하게 될 그날이 올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싫어지고 화가 나면 다 뒤집어버리는 성질머리를 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빠를 닮았으니 어쩔 수 없는 DNA의 힘이라며 합리화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주고 받은 모든 핸드폰 문자를 한글에 입력하고 인쇄해서 앨범에 붙여놓았습니다.


결혼 이후에 초반에는 남편 눈치를 많이 보았습니다. 옷도 다른 방에가서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들어가서는 볼 일 보는 소리가 날까봐 숨죽이고, 치킨을 먹을 때도 손으로 먹으면 안될 것 같아 젓가락으로 치킨을 집고 오물오물 먹고, 한 살 연하인데도 경어를 사용했습니다.(지금도 사용하지만)


하지만 남편은 제가 뭘하든 늘 믿고 지지하고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뭘 사든, 사지않든, 꾸미든, 안꾸미든, 치우든, 안치우든 그럴만 하니 그럴 것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내 행동으로 날 평가하지 않고, 날 믿기 때문에 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럴만하니 그렇게 했겠지.


남편의 믿음 안에서 사니 숨죽이고 눈치보던 소심함이 조금씩 날개를 펴고 자유롭고 편안한 기쁨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숨겨진 애교본능이 튀어나와 모두를 놀래키기도 했습니다.


결혼 초 남편이 자주 물었습니다.

"나 사랑해?"

"음... 내가 사랑을 잘 몰라서.... 확실한 건 참 고맙다는 거에요. 당신은 제 은인이에요."

"괜찮아. 내가 사랑하니까 그럼 된거야."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씩 맥락없이 말하곤 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요."




우리의 평화로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소심한 노력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약속하고 시작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벌이가 더 많고 운전을 전담하고, 저는 집안일을 거의 다 하고 자녀일을 전담하다시피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가 정말 하는 일이 많습니다. 주말 부부로 안간힘을 쓰며 혼자 두 딸을 양육한 시간도 꽤 깁니다. 남편은 그런 저의 고생을 알고 고마워하고, 저도 그걸 알아주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물론 저희도 큰 위기가 몇번 있었습니다. 그건 다음에....)

저에게 '고맙다'는 논리가 아닌 관계의 표현입니다.


1. 화가 나면 이메일로 편지 쓰기, 보내기 전에 여러 번 읽어 보고 고친 후 보내기

2. 운전해 주는 남편에게 차에게 내리기 전 항상 "고마워요." 말하기

3. 아내의 요리를 먹으며 남편은 항상 "와. 맛있겠다. 잘먹을께." 말하기

맛이 없어도 남기지 않고 다 먹기. 다 먹은 후에 "고마워, 잘먹었어." 말하기

4. 집에 있으면 집안일 함께하기

5. 집에 없으면 놀러 나간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로 나간 것이므로

빨리 들어오라고 연락하지 않기

6. 서로가 맞벌이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믿고, 서로의 일을 가치롭게 존중하고 배려하기




함께 있더라도 그 사이에 공간을 두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서로를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를 바다가 춤추며 흐르도록.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자기 빵을 건네되 한쪽의 덩어리만을 먹지 말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되 각자 홀로 오롯하라.
한 가락 음률을 위해 함께 떨리는 류트의 현들조차도 서로 떨어져 있듯이.
그대들의 마음을 건네되 서로의 마음에 가둬두려 하지 말라.
오로지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으니.

함께 서 있되 서로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신전의 기둥들조차 서로 떨어져 서 있으며,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지 못하니까.

<칼릴 지브란, 예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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