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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랑

사랑하는 우리 둘째

by 해이나

저번주부터 다시 항우울제를 계속 복용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마음의 생각을 다잡았다. 브런치에서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하신 많은 훌륭한 분들의 에세이를 미친 듯이 읽어대고, 눈에 보이는 활자들을 읽고, 공지영 씨의 '딸에게 주는 주는 레시피'를 읽었다. '내가 건강해야 둘째를 잘 돌볼 수 있다'를 계속 생각하며 입맛이 없는 가운데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고 밥도 꼭꼭 씹어 넘겼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고난 가운데 삶의 도전을 꿋꿋이 이어가신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삶의 의지에 대한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래. 별거 있어? 오늘도 열심히 사는 거지.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뛰는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둘째는 학원 중간에 다시 집에 와서 울면서 침대에 누웠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둘째의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 같았으면 다시 불안이 미칠 듯이 밀려올 텐데 오늘은 손이 조금 떨리는 것 외에는 괜찮다.

얼른 집에 와서 살펴보았는데 둘째의 눈가가 벌겋다.


"울었어? 왜 울어. 시험 기간인데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우는 거야?"


"아니. 모르겠어. 그냥 눈물이 계속 나."


"괜찮아. 공부는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지. 건강이 제일 중요해. 일단 푹 자자.

엄마가 대구탕 끓일 거거든. 푹 자고 일어나면 밥 먹자."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요리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있어, 여자가 집안일하고 요리하는 것에 반감이 있었다.

맛집에 가도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른다. 그냥 깨끗하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 보이면 다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에게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중 절대적인 것이 음식이라고 생각하기에, 못하나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요리를 잘한다고 말해준다.


오늘 나의 소심한 사랑 고백은 '대구매운탕'이다. 비록 시판 매운탕 소스가 첨부된 대구를 사 왔지만, 무를 잘라 국물을 우려내고 대구를 깨끗이 씻어 올리고, 미나리와 양파, 콩나물을 올린다.


늘 그렇듯 반신반의하지만 둘째를 향한 나의 사랑을 자신 없는 요리 속에 담으며, 이 음식을 먹고 둘째가 힘을 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둘째는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 같았다. 뒤집는 것, 기어 다니는 것, 걷는 것이 또래보다 빨랐고, 기어오르고 넘어지고 매달리는 데 능숙했다. 잠깐 눈 돌리면 서랍장 위를 기어오르고 있고 간장 그릇을 엎어서 혼내고 씻겨 놓으면 다시 간장 그릇을 엎었다. 갑 티슈를 다 뽑아놓고 아무 이유 없이 마트에 드러누워 성질도 부렸다. 기차와 자동차, 공룡을 좋아하고 파란색 토마스 기차 신발을 사달라고 했다.


5살이 되자 책을 좋아하고 말이 잘 통하고 농담을 이해했다. 나는 첫째와 다른 둘째만의 매력을 좋아했다. 유치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활동도 흥미를 가지고 즐겁게 했다.


바이올린을 하다가 힘들어져서 플루트를 불었고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고 플루트 3중주 활동도 했고 플로어볼 선수로 뛰기도 하고 미술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4학년 중창대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1등을 했다.


5학년 때 다닌 수학학원에서는 가장 아래에서 두 번째 반에서 시작했는데 일 년 만에 가장 위에서 두 번째 반이 되었다. 학교에서 늘 칭찬을 받았고 중학교를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이가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잘 구분하는 메타인지가 뛰어난 아이라고 하셨지만, 난 그것이 메타인지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자학을 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잘못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스스로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기질이 있었다.


친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학교선생님도 모두 다 좋은데, 내가 민감해서, 예민해서 모든 것을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으나 도움받는 것은 어려워했고 리더로 모임을 주관하다가도 모든 친구들에게 다 잘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 역할을 힘들어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냥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한 일환일 것이라 생각했다. 힘들지만 조금만 버티고 대학을 가고 시야가 넓어지고 사회생활도 경험하면,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너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관심을 공부와 대학에 쏠리게 하려고 애썼다.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의 틈바구니 안에 넣으려고 했다. 다양한 선배들의 대입이야기를 이야기해 주었고 공부와 관련된 서적도 미리 읽고 추천해서 읽게 했다. 처음에는 아이도 좋아했다.


하지만 점점 지치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결국은 터졌다.


누구는 지금까지의 내신이 아까우니 버텨야 한다고 했다. 수능으로는 이 등급이 안 나올 거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다.


뭐가 맞고 옳은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아프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하셨다. 객관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보고 도와주려면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너무 이입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내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내가 좀 더 자유롭게 키웠더라면. 좀 더 놀게 했더라면.

좀 더 일찍 상담을 알아볼걸. 해외여행도 데리고 다닐걸.

더 많이 보고 느끼게 해 줄걸.


너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는데

최선이 아니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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