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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살아요1

신앙

by 해이나

불안이라는 파도


그 잔잔한 파도가 발가락을 간지럽힐 때는 그저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서면 되었다.


그런데 그 파도가 어느 순간 쓰나미가 되어 나를 향해 돌진한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손이 덜덜 떨리고 발은 얼어붙어 한 걸음도 뗄 수가 없다. 눈앞에서 눈물과 정성으로 쌓아 올린 아름다운 나의 도시가 파괴되고 무너져 내리고 폐허가 된다. 지금까지 나의 노력과 삶의 여정은 무의미하며 단지 남은 것은 공허와 허무, 적막, 생명이 사라진 텅 빈 공간, 내려앉는 잿빛 먼지들, 그뿐이다.

어차피 망할 것.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허공에 메아리쳐 울리는 소리, 죽음! 공허! 무의미! 실패! 넌 끝났어!


그때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얼굴을 돌려, 폐허를 향한 시선을 돌리게 한 이들이 있다. 아니야. 끝나지 않았어. 괜찮아. 지나갈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너를 죽일 수 없어. 다시 일어날 거야. 걱정하지 마. 잘하고 있어. 잘 될 거야. 힘내.


토닥토닥, 어깨를 토닥여주고, 쓰담쓰담, 뒷머리를 쓰다듬는, 눈물을 닦아주고, 두 손을 마주 잡아주는

신앙, 사람, 글




신앙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고 어디 가서 말하기가 망설여지곤 한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나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욕을 먹을 까봐 그렇다.

그럼에도 고등학교시절, 온갖 스트레스와 질병에 둘러싸여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사면이 막혀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나를 살린 것은 기도와 말씀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내 내에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해 아침에 눈뜨기를 거부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굴러다닐 때 나를 일어나게 한 것은 말씀이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자학하고 자아비판하며 스스로를 못살게 굴던 나에게 자존감을 준 것은 기도와 말씀이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아가 12:10)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낮고 낮은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그 사랑이 어두운 내면에 빛이 되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하고, 메마른 광야에 꽃이 피게 한다.


열심히 산다고 애를 쓰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인생의 굴곡 앞에 무너져 내리곤 했다. 첫 임신의 계류유산, 남편의 교통사고,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몰린 첫째의 학폭,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발병, 남편의 학위&직장문제, 가정이 흔들리던 오해의 시간들, 그 외 여러 사건사고들.


능력과 열심, 노력과 성실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었다. 그때마다 함께 고민해 주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해 주신 귀한 신앙 공동체가 있어서 마음을 다잡으며 시간들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이번 둘째의 우울 앞에서 처음에는 둘째가 주변 사람들의 눈길에 극도로 민감했기에, 병원진료와 가정 안에서 조용히 견디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불안이 들고일어나며 상황이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결국 절박한 마음에 교회분들께 연락을 드렸다. '기도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교회 사모님들은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아시고는 함께 기도해 주시고, 둘째의 세례와 성찬식을 도와주시고, 대학생 언니들은 둘째에게 밥을 사주시고, 말씀공부도 함께 해주시고, 힘든 몸을 이끌고 어렵게 주일예배에 나간 날 "어서 와!" 큰 미소로 둘째를 꼭 안아주신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했다. 세상과는 다른 관점, 눈길. 비판이나 비웃음이 아닌 함께 자녀를 키우며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마음 공유. 힘든 일에 함께 기도하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기쁜 일에 서로 축하하고 선물로 정성을 표현하는 모임. 세상에는 없는 귀한 사랑 공동체.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나도 도와드리리라, 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리라, 마음을 합하리라 마음을 다지고는 한다.


덕분에 오늘도 감사하게 살아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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