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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눈물1

믿음

by 해이나

나이는 한 살 어리고 말을 할 때 장난꾸러기 표정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지만, 책임감이 높고 목표지향적인 남편.


남편과 나는 둘 다 이성적인 사람이라 감정보다는 이성과 판단을 우선시하고, 결론에 이르는 사고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서로의 사고를 이해하는 만큼 웃음의 포인트도 비슷하고 서로의 유머를 어이없어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동시에 각자가 사회생활을 통해 겪는 비탄, 절망, 후회, 자책, 괴로움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울기 때문에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남편은 최근 나에게 두 번째 눈물을 보이며 아내보다 눈물 많은 남편이 되었다.


그의 첫 번째 눈물은 믿음을 주었고, 두 번째 눈물은 고통을 나누었다.



<가상 외도 체험 >


나는 자격지심이 심했고 이성 간의 영원한 사랑이 있을 리 없다 여겼다.


영원한 사랑. 그런 건 판타지에서나 존재하지.

남편이 나를 과연 얼마동안이나 사랑할까,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의무와 책임으로 가장 역할만 하겠지.

직장에서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똑똑한 직장동료를 만나면 그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런 여성은 세상에 정말 많을 테니.


"여보, 혹시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흔들리면, 사랑은 선택이라는 것,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기억해 줘요."

남편은 콧웃음을 치며 단호하게 답했다. "무슨 그지 같은 말이야." 마음 흔들릴 일은 없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개꿈을 꾸었다. 남편이 날 버리는 꿈.

남편은 얼음같이 차갑고 냉정한 표정과 말투로 다른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날 떠난다고 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남편의 잔인한 뒷모습을 보며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의지하고 사랑하는지 느꼈다. 버림받으면 죽을 것 같았고, 먼지만도 못한 쓰레기 인생이 되는 거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나가는 남편을 쫓아가서 다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잘못했어요. 가지 마요. 그럼 나 죽어요. 나 버리지 마요."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났다. 울부짖다가 깨어나서 그런지 귀가 멍멍하고 뭐가 현실이고 꿈인지 구별이 안되고 정신이 하나도 없으면서 몽롱했다. 분명히 알겠는 것은 남편이 나를 떠나면 너무나도 외로울 거라는 것이었다. 당시 주말부부로 평소 서로 바쁜 일상을 보내며 남편을 냉정하게 대했는데 더 소중하게 대하고 말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내 심장의 반이 되어버린 그, 그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남편은 10박 11일의 일정으로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신기한 일, 놀라운 일, 재미있었던 일 등의 여행 에피소드를 들으며 짐을 정리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스마트폰의 사진을 함께 보는데 사진 속에 한 여성이 계속 보였다.

"이 분은 누구예요?"

직장 후배인데 다른 곳에 출장을 갔다가 휴가를 내고 이곳에 여행을 하러 들렀다고 한다. 중동지역이다 보니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 여성으로 치안상황이 무서웠고, 마침 여기에 직장선배인 남편이 여기에 출장 온다는 것을 알고 오후일정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일주일 동안 오후에 이분과 함께 밥을 먹고 관광을 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친구가 많은 남편에게는 가능한 사고였을지 몰라도, 남자형제 없이 여중여고를 나온 유교걸인 나에게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떻게 일주일 동안 둘이 함께 지내면서 아무 마음이 없을 수 있는가. 아니, 아무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일주일을 함께 보낼 수 있는가. 나라면 치안이 걱정되는 나라에 관광을 안 가면 안 갔지, 유부남 선배에게 일주일을 동행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절대로.


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똑똑해 보이는 여성분의 아름다운 사진 속 미소를 보며 남편이 이분을 좋아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남편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교회의 아는 분들께 전화를 걸어 이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평범한 상황인 건지, 내가 오해한 건지 여쭈어 보았다. 남편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교회 선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미쳤구나. 이건 이혼 사유야."


며칠이 흘렀다. 바쁜 직장일로 대화할 겨를이 없는 며칠 동안, 나는 남편의 정서적 외도를 의심하며 계속 괴로웠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홀로 기도하며 많이 울었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하겠어. 난 쓰레기 같은 존재구나. 이혼해야겠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집은 어떻게 분가하나. 부모님께는 어떻게 알리나.


딸들이 없는 곳에서 남편과 다시 대화하고자 직장에서 일찍 나왔다. 모두 다 공부하느라 정신없는 조용한 스타벅스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대화가 생중계되는 것 같아 민망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처녀와 유부남이 해외에서 일주일을 같이 있어요? 누가 이걸 이해해 줘요?"

아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던 공부를 멈추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을 듯하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체면을 차릴 정신이 없었다. 나는 상처와 고통을 정리하며 상황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남편의 눈물. 남편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오해야. 관광 다니는데 무섭다길래 옆에 따라가 준 것 밖에 없어."


직장에서 계약기간 종료를 앞두고 무급으로 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초주검이 되도록 일한 날에도, 교수님께 논문작성으로 인격모독을 당하고 온 날에도, 교통사고로 종아리뼈가 세 토막으로 부서지고 마취도 안한 제정신으로 뼈를 두 번을 맞출 때에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고 다만 힘듦과 지침을 토로하던 그였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울고 있었다.


내 마음이 진정되며 눈물의 의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심과 결백, 믿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 없음으로 벌어진 이 상황을 미안해하고, 나와 딸들이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말했다. 다시는 오해를 살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모든 말 속에 담긴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짐을 생각했던 상황이 반전되고, 오히려 굳은 확신을 주었다.

아. 진짜구나. 이 사람은 정말 나를 배신하지 않겠구나.


상처난 마음이 아려서 아무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눈물로 각인된 믿음의 확신은 이 상황을 종료시켰다.


이후로 우리는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비슷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를 의심하거나 파해치지 않고 서로의 핸드폰을 보지도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 사랑. 사랑에 대한 믿음. 영원히 나와 함께 할 한 사람. 하나님이 주신 진짜 내 반쪽.

이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다. 나의 보잘것없음이 그에게는 충만함이 됨에 감사하다.


내게 보여준 그의 첫 번째 눈물은 믿음의 증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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