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이 100번째.
그러나 첫 번째처럼 진땀이 난다. 수 없는 연습과 실전에도 익숙해지진 않고 갈수록 긴장감만 더해진다. 생각했던 말도 면접관 앞에만 서면 잊어버린다. 합격의 압박감과 불합격의 트라우마 때문일 거다. 친구들은 계속된 탈락에 일찌감치 그만두고 알바로 생활한다. 오직 나만 가망 없는 도전을 한다.
그리하여 술자리 멘트도 바꿨다. 전엔 정치, 여자 얘기로 밤을 보냈으나 요즘엔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봤으면.’ 후회로 밤을 보낸다.
그렇지만, 대학 간판에 목숨 거는 사회와 부모의 등쌀에 적성에 맞지 않는 과에 입학하여 군대 제대하고 편입 늦어져 졸업하니 30살 가까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머리는 굳어 공무원 시험도 회사도 매번 떨어져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 되었다. 자기 고집대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 합격한 사람이 부러웠고, 동기의 여성들이 일찍 취직해 기반 잡는 걸 보면 분노가 들었다.
“젠장! 여자는 군에 안 가잖아!”
“공부만 한 여자랑 어찌 경쟁이 되나!”
“군 가점도 없다!”
“알바가 평생 직업이 될 거다!”
“결혼도 연애도 이번 생은 망했다.”
친구들의 농담이 슬프다. 나도 그만두고 어머니 식당 일을 돕고 싶지만, ‘꼬박꼬박 월급 받는 직장인이 최고지! 자영업은 골치만 아프다. 아줌마들 월급 주고 건물세 주고 세금 뜯기고 빚 주고 남는 거 없다. 힘들어도 직장인이 최고지. 돈 버는 거 쉽더냐!’ 어머니의 닦달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고생하는 어머니를 실망하게 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아버지가 계셔서 고민을 털어놓았더라면 ‘해봐!’ 하고 찬성했을 거다. 엄마와 식당 일을 같이하셨던 아버지는 넉넉한 풍채만큼 사람도 좋았다. 퍼주기를 즐겼고, 웃음이 떠나지 않아 아버지 곁에 있으면 우울한 이도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세상은 아버지처럼 착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각별했던 고등학교 후배 아저씨가 돈을 빌려서는 야반도주하였다. 후배 아저씨는 아버지가 개업한 지 한 달 지나서 가까운 곳에 개업했다. 고등학교 후배란 걸 알은 아버진 온 애정을 쏟았다. 얼마나 가까웠으면 다들 ‘전생에 형제였을 것이다.’고 했다. 형제가 없던 아버지는 그 말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 가게가 어려워 천만 원만 빌려주세요. 안정되면 갚겠소!”
아저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 그 많은 돈을. 우리도 대출이 있어서.”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내가 미안하지요. 괜한 부탁을 해서.”
아저씨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안타까운 아버지가
“내 어떡해서든지 돈을 마련해 보겠네!”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2주 후
“여기 천만 원! 허허!”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도 후배를 도울 수 있어 만족했다.
다음날, 아버지는 아저씨 가게로 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낮인데, 아무도 없지?”
아저씨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걱정으로 이틀을 기다린 아버지에게 폐업 차량이 보였다.
아버지가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요?”
그러자 기사 아저씨는
“새로운 가게가 들어올 거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전했다.
아버지는 사색이 되어 엄마에게 왔다.
“왜, 왜 그래요?”
엄마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후배 가게가 없어졌어.”
그러며 아버지가 쓰러졌다.
병원에서 눈을 뜬 아버지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어떡해! 어떡해!”
엄마는 자신마저 정신을 놓는다면 끝이라는 생각에 아버지를 다독였다.
“내가 알아볼게요.”
엄마는 가게를 닫고서 며칠을 뛰었다. 그 결론은 ‘아저씨가 사기를 쳤다는 거였다.’
엄마는 경찰에 신고했다.
“아주머니만 당한 게 아니에요”
경찰이 또! 하는 얼굴로 엄마를 보았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후배라는 것도.
“꼭! 잡아 주세요.”
엄마는 눈물로 사정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찰은 엄마를 위로했다.
다음날 사기당한 걸 알은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돈 어찌할 거요?”
가장 연장자가 따지듯 묻자
“내 어떻게든 갚겠소.”
아버지와 엄마는 연신 굽실거렸다
그 모습이 딱했던지 가장 연장자는
“성실한 부부니, 약속은 지키겠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지인들이 떠나자 아버진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사정이 있을 거야. 돌아올 거야 ”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후배여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다.
그러자 엄마는
“사람이 냉정했어야지. 그저 허허하더니만!”
아버지를 원망하며 울었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아버지를 엄마와 나는 안타까움, 미움,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일로 아버지는 말수도 줄었다.
그런 아버지가 딱해서 직원들이
“사장님 웃으세요.”
“털어내요!”
위로에도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 3년을 온갖 병과 우울증 앓고서 세상을 떠났지만, 사기 친 아저씨가 잡혔단 소식은 지금도 없다.
아버지가 떠나자 엄마는
“수민아, 학원은 나중에 보내줄게.”
젖은 음성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10살 된 해였다.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며 반드시 성공하여 호강시켜 주리라 결심한 나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친구들은 과외며 학원엘 다녔지만, 내겐 교과서와 학교 수업이 전부였다. 어쩌다 공부가 힘들 때면 아빠를 원망했지만, 그것도 잠시 좋은 추억이 많아 미소가 나왔다.
2
면접 전날 친구들이 100번째 면접 파티를 열어줬다.
“100번째 축하한다!”
“이번으로 끝내자!”
“파이팅!”
친구들이 입 모아 위로했다.
“고마워.”
나는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넌 우리의 희망이다!”
포기한 친구들은 내가 영웅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도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도 푸념하지 않는 건 슬프게도 내 환경이 가장 좋다.
민구는 작은 집에서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혼자 돌봐야 한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세상을 떠나 서다. 석민은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 혼자 살아야 한다. 성구는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으나, 현재는 치매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 그들에겐 희망, 꿈은 사치다.
‘대출 있는 가게 있는 게 뭘 잘 산다고. 후!’
가슴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넌 지금도 간판 이름이 창피하니?”
석민이 배시시 웃었다.
두 친구도 관심을 가졌다.
“어릴 적 얘긴데.”
내가 쑥스러워하자
“놀려서 미안하다! 그땐 시샘이 나서.”
석민은 말끝을 흐렸다.
중학생 시절
‘수민 식당’
내 이름의 간판이 보이자 고개를 숙이며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고서 엄마에게
“후~ 왜 내 이름이야. 창피하게!”
투덜거렸다.
그런 날 엄마는 어이없게 보시며
“어때서, 멋있기만 한데.”
혀를 끌끌 차셨다.
나는 털썩 의자에 앉아 씩씩거렸다.
“친구들이 놀려! 멋진 이름도 많잖아!”
그런 내게 엄마는 꿀밤을 주며 야단쳤다.
“별소리! 친구가 잘못이지. 당당해!”
어릴 적은 창피해서 얼굴을 숙였는데 지금은 엄마의 사랑이 담긴 간판을 활짝 웃으며 본다.
‘팔자들 참 모질다!’
씁쓸한 얼굴로 친구를 한 명 한 명을 찬찬히 보았다.
경제가 계속하여 나쁘진 아닐 거다. 태풍이 지나가면 햇빛도 비칠 것이다. 다행히 엄마 손맛을 보려는 단골손님이 있어 아직 버티고 있다.
그리 술을 마시며 담소 나누는데, 가게 TV서 **자동차 노조의 데모 소식이 나왔다.
“또! 귀족 노조가 무슨 욕심이 많아!”
“저것들은 경제가 어려워도 데모야!”
“다 같이 망하자는 거야 뭐야. 쯧쯧!”
사람들이 쓴소리 한다.
저들도 사정이 있겠지만, 모든 게 어려운 요즘 월급 받는 게 축복이지. 취직 안 되는 청년은 모든 걸 포기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이기심만 채우려는 저들이 못마땅하다.
3
아침 문을 열 때 엄마가
“청심환 가져가!”하는 따뜻함을
“됐어! 처음도 아닌데. 괜찮아!”
밝고 자신 있게 거절했다.
엄마의 염려를 덜어주려는 것과 내게 용기를 주려는 것이지만, 매번 같은 후회를 했다.
“가지고 올걸.”
내 나직한 속삭임을 들은 옆 사람이 힐끗 본다.
그녀는 갓 대학 졸업한 20대 초반의 여자다. 순간적으로 다리를 스캔했다.
‘이런 상황에 눈이 가다니. 참!’
남자의 어쩔 수 없는 본능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생 끝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핑크 꿈에 젖어서 하고 싶은 걸 워드에 적었다.
첫 번째로 이성을 사귀는 거였다. 남중 남고만 다녔던 나는 여자에 환상을 가졌다.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순종적이며 못난 남자도 이해하고 품어주는 천사일 것만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면 예쁘고 착한 여자 사귀어야지!”
“나만 사랑해 주는 여자 사귈 거야!”
“섹시한 면도 있어야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고된 입시를 견뎠다.
그러나 신입생 환영회에서 쾌청하게 깨졌다.
“**학번 환영해요!”
과대표 선배의 환영 인사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신입생 소개가 있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생 이석호입니다. 취미는 독서고 미남인 게 특기입니다.”
굵은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소개했다.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금수저인가 보다. 흥!’
삐죽이며 주변을 보았다. 여자들은 하트 눈으로 바라보고 남자들은 인상을 구겼다.
배는 아프지만, 눈에 확 들어온 외모다. 난 학교에서 잘생긴 편에 속했다. 선생님도 친구도 그리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도 미남이라 하여 그런 줄 알았다. TV 나오는 아이돌은 화장이 짙은 거로 알았는데 실제로 아이돌 같은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차례가 왔다.
“김수민이라 해요. 취미와 특기는 따로 없지만, 묵묵히 노력하는 남성이 되려고 해요.”
나름 남자답게 말하고서 자리에 앉았지만, 짝짝짝! 무미건조한 박수에 ‘아이 씨! 내가 어때서!’ 화가 올라왔다.
소개가 끝나자 술판이 벌어졌다.
“자! 오늘은 죽을 때까지 먹자!”
여학생은 하나같이 이석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너는 나랑 먹자!”
3학년 남자 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속물들!”
선배는 여학생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선배는 나보다 한참 떨어진 외모였다. 그러자 떠났던 햇빛이 돌아왔다.
“기운 내! 나도 대학 오기 전엔 여자의 환상을 가졌지. 여자들이랑 지내봐. 그렇지 않다는 걸 알 거다.”
그래도 한편엔 나의 매력을 알아줄 여자가 있을 거라 희망했지만, 그 작은 바람도 무참히 부서졌다.
“다음은 신입생의 노래자랑이 있겠습니다.”
다른 신입생은 자신 없이 노래방 기계로 향했지만, 지역 가요제에서 대상까지 받은 나는 만세를 불렀다. 내가 달콤한 발라드를 부르자 여자들이 집중했다. 그걸 보자 우쭐해져 더욱더 감미롭게 불렀으나 끝이 나자 바로 돌아섰다.
‘역시 외모구나.’
씁쓸한 입맛만 다셨다.
그런 일을 겪고 나자 얼굴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얼굴을 약간 고치면 인기가 많아질 거라는 정신승리가 들어왔다.
그래서 대뜸 “얼굴 고쳐볼까?”엄마에게 슬며시 던졌다.
엄마는 조용히 내 얼굴을 보더니 “네 얼굴이 어때서”그러시며 담담하게 식사했다.
나는 다시금 말하였다.
“그건 아들이니까 못나도 잘생겨 보인 거지. 세상엔 나보다 잘생긴 사람 있더라. 쌍꺼풀과 턱을 약간 깎으면 되는데 앙!”
귀여운 행동을 했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실력이나 쌓아!”엄마의 핀잔만 먹었다.
그렇지만 그때 수술을 했어야 했다.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내가 취직하려면.
4
-딩동
만수의 문자다.
벌써 100번째네. 그래도 기운 내라. 이번이 끝이길 바란다. 친구 파이팅!
그는 나의 친구 중 유일한 금수저다. 70년대 강남땅을 산 할아버지 덕에 졸부가 된 억세게 운 좋은 녀석이다. 취직 걱정은 안드로메다 얘기다.
‘걱정되면 도와줘!’
말로만 호의를 베푸는 만수가 은근히 밉다.
만수는 신입생 환영회서 만났다. 첫인상은 허름한 차림과 처진 걸음새에 지독히 가난한 줄 알았다. 소개도 모깃소리로 자신감이 없었다. 특별전형으로 들어왔을 거로 생각하자 희망을 놓은 세 친구가 떠올랐다.
‘못난 놈들 특별전형으로 입학하자고 말했는데.’
그런 아쉬움이 들자 만수가 대견했다.
다음날, 연민이 생긴 내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의 악수에 만수는 수줍게 손을 주었다.
“힘내!”
나의 친절에 어리둥절한 표정. 역시 기운이 없다.
“나도 어렵지만, 밝게 산다!”
만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자신만 불우한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런 나의 마음을 만수가 배신했다.
두 달이 지난 후였다.
커피 가게에서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데 검정 옷의 사내가 왔다.
“도련님. 가셔야 합니다.”
사내는 정중히 말했다.
“안녕”
만수는 시무룩하게 떠났다.
“어, 그래”
'무슨 일이지?'
난 궁금한 얼굴로 만수의 등을 보았다.
다음 날
“어제 무슨 일이야?”
내가 만수를 보고서 물었다.
“미안해. 사실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만수는 준 재벌 집안 외동아들이었다. 그에게 기대가 컸던 가족은 꼬마 때부터 이것저것 가르쳤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넌 왜 항상 그 모양이야!" 늘 꾸지람과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만수는 자신의 그릇보다 훨씬 큰 기대를 하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허름한 차림을 했다고 했다. 내 그릇은 일반인 수준이다. 알려주려고.
그리고 하루만이라도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고 싶다고 했고 어제도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만수의 말이 끝나자 정신이 붕괴했다.
‘많이 가졌다고 불행하다니. 쩝!’
“미안, 말 못 해서. 속이려고 한 것 아니야. 사실을 말하면 네가 떠날 것만 같아서 그랬어.”
만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친구 해 줄 거지!”
그의 간절함에 수민은
“그래.”
떨떠름하게 말하였다.
드라마에서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얼떨떨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소개는 못 하겠다.
5
“아들은 잘하고 있나?
김 순심은 손님이 없는 틈에 의자에 앉자 혼잣말을 한다.
남편이 살아있을 적엔 남편은 계산을 자신은 요리를 서빙은 종업원으로 분담했지만, 지금은 가게를 줄여서 종업원 한 명과 가게를 운영한다. 잘 나가던 시절엔 가게도 크고 종업원 5명을 썼다.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의 한 말이 생각난다.
“엄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볼래요.”
아들의 느닷없는 말에 순심은
“무슨 소리냐!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사람대접받아!”
다그치듯 설득했다.
그러자 아들이
“앞으론 학벌이 의미 없어. 그리고 우리 형편에 무슨.”
그동안 깊이 생각한 말을 하였다.
순심은 엄마를 생각할 만큼 자란 아들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냉정하게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해! 딴생각하지 말고 대학이나 가!”
호통 쳤다.
그러나 계속된 불합격에 축 늘어진 아들을 보면 그때 아들의 뜻대로 하도록 했더라면, 후회가 들었지만, 그도 잠시‘아니야! 그래도 대학은 졸업해야지.’ 도리질했다.
자신의 시절엔 대학 졸업해야 편하게 살아서다.
‘너무 내 고집만 부렸나?’
순심은 자책해본다.
갖은 생각이 났다. 못난 엄마 만나서 계속 낙방하는 게 아닌지? 어렵더라도 학원이나 과외를 시켰더라면 후회가 들었다.
아들이 지쳤는지 '엄마! 식당 일을 같이할까.' 자주 말한다. 지쳐서 하는 말인 줄 알지만, 자영업이 쉽더냐. 그리고 경제가 어려운 요즘 언제 폐점할지 모른다.
“어떻게든 버터야 하는데.”
불확실한 지금 아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
“이럴 것이 아니지. 아들에게 응원 문자라도 보내야지.”
순심은 휴대폰을 꺼내었다.
6
그녀는 28살에 2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다.
그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어서 기술자 남자랑 살면 밥 굶지 않았다.
“시집을 가야 하는데!”
엄마는 혼기 놓쳐 집안일만 돌보는 딸을 한심스럽게 보았다. 그때는 꽉 찬 나이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후~”
“네가 뭐가 빠지나. 얼굴도 친구 중에 가장 예뻐 머리도 좋아. 눈 낮춰!”
엄마의 타박에 순심은 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던 순심에게 희소식이 왔다. 전기 기술자인 도시 남자가 결혼할 여자를 찾는다고 한다. 엄마는 중매쟁이에게 재빨리 딸을 말했다.
“잘됐네! 내 남자에게 전하리다. 호호!”
떡고물 받을 생각에 아주머니는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는 잰걸음으로 집에 들어와서
“너 중매 들어왔다!”
헐떡거리며 딸에게 알렸다.
“그래요.”
순심은 좋았으나 담담한 척했다. 여성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다.
“일요일 오후 2시 제비 다방이다!”
D-day
“엄마 저 어때요?”
순심은 한껏 차려입고 엄마에게 보였다.
“아이고 예쁘다! 실수하지 말고 잘해!”
“걱정하지 마!”
문을 열자 앞날이 꽃길이라고 말하는 듯 햇빛이 밝게 비췄다.
“어디 가느라고 그리 쫙 빼입었데!”
“선보러 가잖아요. 오늘 잘 되길 바란다. 참 예쁘다!”
“그래! 파이팅!”
동네 이웃들이 응원했다.
다방 문을 열기 전 손거울로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녕! 저 사람이야!”
다방 주인이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는 긴장되는지 연신 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안녕하세요.”
순심이 인사하며 자리에 앉자 남자는 벌떡 일어섰다.
“앉으세요.”
순심의 말하자 남자는 뻣뻣하게 앉았다.
얼굴도 둥글고 몸도 둥글고 눈도 둥글었다. 세련미라고는 전혀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청년이었다. 양복이 어울리지 않았다.
‘도시 남자는 멋진 줄 알았는데.’
순심의 마음에 실망감이 들어왔다.
“뭘 드시겠어요?”
남자가 용기 내서 물었다.
“커피요.”
순심은 새침하게 말하며 ‘공짜 커피 마시며 적당한 때에 헤어지자.’ 마음먹었다.
“엄마 왔어요.”
순심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잘 됐어?”
엄마가 궁금한 눈으로 앉지도 않은 딸에게 물었다.
“특별히 잘생기진 않았어. 그래도 마음은 좋더라.”
순심은 시뜻이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찡그리며 충고했다.
“네 아버지 봐라. 인물만 좋으면 뭐 해. 백수 만난 덕에 평생 고됐지. 할머니 말이 맞았어. 네 아버지 처음 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인물값 한다! 그만두라!’그런데도 무시했더니 결혼과 동시에 바람피우고 엄마만 보면 돈 달라고 했지. 너도 겪어보고선! 그 돈만 모았어도 넌 고등학교는 졸업했을 거야”
엄마는 다짜고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또, 그 소리! 나만 공부 못했나!”
틈만 나면 하는 소리가 지겨운 순심은 목소리를 높였다.
“넌 성나지도 않아!”
순심도 엄마도 마음에 불이 났다.
그렇지만 틀리지 않아서 한참 만에 순심은'결혼할까!'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그럼, 잘 생각했다!”
활짝 웃었다.
한 달 연애해서 결혼했다. 처음엔 사글세에서 시작했으나, 성실한 남편 덕에 몇 년 지나지 않아 조그만 아파트를 샀다.
처음 입주한 날
“이게 정말 우리 집이지!”
순심은 감격해서 울었다.
“방이 두 개니 태어날 아이에게 예쁘게 꾸며서 줘야지!”
아내가 활짝 웃자 남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7
“더는 못하겠어!”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소리를 높였다.
“아니! 왜 그래요?”
순심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툭하면 욕이야! 나보다 한참 어린놈이. 상사면 다야! 아버지 잘 만나 승진한 주제에!”
“심 부장이 또 뭐래요?”
평소 하던 심 부장의 불만과 다르게 이번은 심각했다.
사장 아버지 만나 능력 없이 초고속 승진한 심 부장을 회사 사람 모두 싫어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허리를 굽실거렸다. 심 부장은 회사에서 왕이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반말과 개인 심부름을 시켰고 여직원 성희롱도 다반사였다.
“그게… 후!”
남편이 불만을 말하려다가 아들이 태어나자 끊었던 담배를 꺼냈다.
그걸 본 순심은‘여보!’급히 제지했고 남편은 담배를 휴지통에 버렸다.
“흠!”
순심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성심이 여린 남편이어서 언젠가는 그만둘 거란 걸 알았다. 여태껏 다녔다는 게 대견하다.
‘그래도 책임감이 있어서.’
설핏 웃은 후 이어 말했다.
“우리만의 가게 해요!”
아내의 뜻밖의 소리에 남편의 입술이 올라갔다.
“그게 쉽나?”
내심 좋았으나, 책임 없는 사내로 보이는 것 같아서 딴말했다.
“내 소싯적 따놓은 한식 자격증이 있으니, 열심히 하면 세 식구 굶진 않을 거예요.”
아내의 진심 어린 사랑에 남편의 눈에서 고마움의 눈물이 나왔다.
친절하고 손맛도 좋은 부부여서 손님이 많아 살림이 불어났다.
“우리 수민이 남들 다 하는 학원엘 보내줄게!”
엄마의 엷은 미소에 수민은 햇살처럼 밝게 웃었다.
그리 행복한 나날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실의에 찬 남편보다 앞날이 걱정인 순심이다. 이 일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괜찮아! 김 서방은 어때?”
엄마의 물음에
“기운을 못 내요.”
순심은 겨우 기운을 내어서 말했다.
“그래도 수민을 봐서 살아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젖어오자 순심은 참았던 슬픔이 터졌다. 그리 모녀는 한바탕 울음이 오갔다.
8
-딩동
문자 알림 소리에 휴대폰을 보았다.
엄마의 문자였다.
긴장 말고 편안하게 해!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또 떨어지면 다음에 하면 된다. 밥 챙겨 먹어. 사랑해!
아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더듬더듬 눌렀을 엄마가 떠오르자 울컥했다.
‘엄마도 참!’
엄마의 문자에 긴장이 풀린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 아들 강해. 사랑해!
나의 가슴에 햇살이 들어왔다.
잠시 후
“10번, 11번, 12번 들어오세요.”
여성 스태프의 호명에‘아버지! 이번엔!’ 마음속으로 빌고서 힘차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