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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일 Sep 18. 2021

천덕꾸러기 잡초 씨앗

9화

공은 허름한 초가집 댓돌 옆에 있습니다.  

“개 아저씨. 공을 가져갈게요.”

잡초 씨앗이 말하지만 귀찮단 듯 아무 말도 없습니다. 흡사 유령이라도 나올 듯이 으스스했습니다. 공을 들고 나오려는데 집주인 부부가 들어와 마당의 허름한 평상에 앉습니다.

잡초 씨앗은 오도 가도 못하고 댓돌 뒤로 숨었습니다.

“휴~”

아저씨의 긴 한숨이 들려옵니다.

“여보. 우리도 이제 떠나요.”

"듣기 싫어!”

아저씨가 짜증을 냅니다.

“그렇지만, 여긴 희망이 없잖아요. 우리 딸을 생각해서 도시로 갑시다.”

아주머니가 간절히 애원합니다.

개 아저씨는 귀찮단 듯 잠만 잡니다.

“밥이나 줘!”

아저씨가 말을 툭 던집니다.  

“이젠 쌀도 떨어져 가요.”

그렇지만 아저씨는 무시한 채 방에서 곤히 자는 딸을 봅니다.

“우리 딸 참말로 예쁘기도 하지.”          

부부가 방에 들고서야 집을 나와 친구들에게 갑니다.

“왜 이리 늦었어?”

“미안해.”

잡초 씨앗은 밤에 본 부부가 생각나서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 그러니?”

할아버지 바위가 온화하게 묻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들과의 놀이에도 멍하니 있습니다. 바위 친구들의 재미난 얘기에도 침묵만 합니다.

아마 잡초 씨앗은 강한 호기심도 있나 봅니다.

“잡초야! 잡초야!”

매끈이의 연거푸 부름에 화들짝 놀랍습니다.

“왜 그러니?”

잡초 씨앗이 묻습니다.

“너야말로 왜 그러니?”

“나 잠시 쉴게.”

잡초 씨앗은 바위 할아버지에게 가서 잠을 청합니다. 낮에 일어나 궁금증을 알기 위해서지요. 해가 떠오르니 잡초 씨앗이 무거운 눈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립니다. 먼 거리와 해의 강렬한 심술에 맞서기 위해서 마음을 단단히 하는 의식이지요.

“어딜 가려고 하니?”

바위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밭 너머 초가집에요.”

잡초 씨앗의 말에 바위 할아버지의 눈이 커집니다.

“그 먼 데까지 무슨 일로? 게다가 해의 심술까지 받으면서.”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잡초 씨앗은 씽긋 웃습니다.

그리고 바위 할아버지에게서 멀어집니다.

바위 할아버지는 잡고 싶지만, 워낙 잡초 씨앗의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움직임이 느려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해의 심술은 정말 짓궂었습니다. 잡초 씨앗에만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헉! 헉!”

잡초 씨앗의 숨찬 소리가 밭에 조용히 스며듭니다.  

그러나 친구 바위는 아랑곳없이 단잠만 잡니다. 그만큼 밤에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단 말이지요. 잡초 씨앗은 바위의 체력이 부러웠답니다. 해의 방해와 체력의 열세에 고단함에도 궁금증을 알려고 고난의 길을 가는 의지에 고개를 숙입니다.

겨우 초가집에 도착한 잡초 씨앗의 몸은 땀으로 가득합니다.

“쳇!”

포기시키지 못한 해가 눈을 흘기며 아쉬워합니다.

일을 나갔는지 부부는 없고 개 아저씨만 멍한 눈으로 하늘을 봅니다.  

잡초 씨앗은 마당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개 아저씨에 묻습니다.  

“아저씨! 궁금한 게 있어요.”

개 아저씨는 오랜만의 손님에 반가운 미소를 보입니다.

“뭐든 물어봐.”

“어젯밤 주인 부부가 왜 한숨 쉬며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싶어요?”

개 아저씨는 잡초 씨앗이 이상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보입니다.  

“신기한 아이구나.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끝까지 묻는 잡초 씨앗에 항복한 개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그건, 척박한 환경 때문이고 주범은 말썽꾼 해야. 무슨 심술인지 어느 날부터 일 년 내내 퍼붓기만 하는 강렬한 열기에 누군들 살 수 있겠어. 뭐든 적당해야지. 그래서 마을 사람 모두 떠나 남은 사람은 내 주인 부부만이야. 내 주인이 워낙 마을 사랑이 강해서 아직 남은 게지. 그러나 곧 떠나겠지.”

“부부가 떠나면 아저씨도 떠나나요?”

“그렇게 되겠지. 부부가 날 끔찍이 좋아하거든. 그리고 나도 이곳이 싫단다.”

그러고선 늘어진 하품을 합니다.

잡초 씨앗은 얄미운 해를 빤히 보고 해는 잡초 씨앗을 노려봅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해를 보는 잡초 씨앗입니다.

‘난 사랑받고 싶어도 받지 못했는데. '

잡초 씨앗은 의도적으로 미운 행동을 하는 해를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해를 봅니다.

‘너 따위가 웬 상관.’

하찮은 땅의 생명이 주제넘게 참견하는 게 아니꼬운 해입니다.

바위 할아버지에 가는 잡초 씨앗이 미운 해는 보다 평소보다 배로 심술로 퍼붓습니다.

“헉. 헉.”

잡초 씨앗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쓰러져라, 쓰러져라’ 하고 해는 마음으로 심술을 부립니다.

“이제 정신이 드니?”

바위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하~”

잡초 씨앗이 긴 한숨을 쉽니다.

“너란 얘는 주변 친구들에게 걱정만 시키는구나.”

바위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에 잡초 씨앗이 부끄러워합니다.

‘해가 기뻐했겠지.’

잡초 씨앗이 쓴웃음을 보이며 해에게 진 자신을 야단칩니다.  

그런 잡초 씨앗을 걱정스레 보는 바위 할아버지입니다.

“너란 얘는…….”

잡초 씨앗은 놀이에도 흥미 없습니다, 축구도 친구들의 재미난 이야기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갔습니다. 잡초 씨앗의 관심은 한 가지입니다. 어찌하면 집주인 부부의 근심을 덜어주고 예전처럼 사람들로 활기찬 마을이 될까? 다른 이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문제일 수 있지만,

잡초 씨앗은 바위 할아버지에게 고민을 말합니다.  

“넌 참 이상하구나. 너랑 상관없는 일이다.”

바위 할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말립니다.

고민에 여위어가는 잡초 씨앗을 더는 볼 수 없는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별 할아버지에게 고민을 말해보렴. 해결해 주실 거야.”

“정말이에요?”

잡초 씨앗이 반가워합니다.

“그러나 만나기 힘들어.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바위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듭니다.

잡초 씨앗의 눈이 반짝입니다.

잡초 씨앗은 어른 별들에 부탁합니다.

“별님 할아버지 별을 만나게 해 주세요.”

잡초 씨앗의 부탁에 별들은 황당해합니다.

“그분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별님 부탁이에요.”

“안 돼!”

별들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잡초 씨앗의 계속된 애원을 이해할 수 없단 듯 친구들과 바위 할아버지는 봅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사는 주변인들은 잡초 씨앗의 행동이 그저 철없어 보입니다. 겨우 찾은 행복을 또 버리려고 하는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도 행복한데 넌 왜 고난을 자처하니?”

단짝 매끈이가 그만두라는 말투입니다.

“나도 모르겠어. 이런 나도 힘들어.”

“하~”

매끈이가 모르겠단 듯 한숨을 쉽니다.

“바위 할아버지. 친구들아, 우리도 별님에게 별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 부탁해요”

잡초 씨앗이 안쓰러운 매끈이가 건의합니다.

“그러자꾸나. 모두 힘 모으면 들어 주실 거야.”

바위 할아버지가 말에 모두 동의합니다.

“별님! 잡초 씨앗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별님은 많은 이들의 외침에 당혹해합니다.

“바위 할아버지까지. 도대체 왜 이러시나요?”

별님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바위 할아버지를 봅니다.

“잡초 씨앗이 너무 안쓰러워서, 말씀이라도 드려보세요.”

“이건 감정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별님은 차갑게 말하지만, 바위 할아버지와 친구들은 굽히지 않습니다. 잡초 씨앗은 자신을 돕는 바위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고마워 눈물 흘립니다.

“왜 저런데.”

해는 쓸모없이 고생하는 저들이 그저 한심스럽습니다.

“알았어요. 말씀드려 보겠어요. 하지만 만나 줄지는 몰라요.”

며칠을 계속되는 외침에 별님은 손을 들었습니다.

잡초 씨앗의 가슴이 고동칩니다.

“별 할아버지.”

별님은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오랜만이구나. 무슨 일로 왔느냐?”

별님은 그간의 사정을 말합니다.

“정말 특이한 아이로구나. 한번 만나볼까?”

별 할아버지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날 만나보려는 이가 누구니?"

"접니다."

잡초 씨앗은 공손히 대답하고 별 할아버지를 봅니다. 다른 젊은 별보다 빛이 많이 희미합니다. 별 할아버지는 잡초 씨앗을 보며 말합니다.

"집주인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하는구나. 그렇지?"  

별 할아버지의 인자하게 묻는 말에 잡초 씨앗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

별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고 말을 계속합니다.

"그건 엄청난 고통과 무한의 희생이 필요하단다."

별 할아버지의 대답에 잡초 씨앗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별 할아버지는 바위 할아버지를 보며 말합니다.

"바위 할아버지는 알고 그만두라고 했겠지."            

바위 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별 할아버지에게 대답을 들으렴."

별 할아버지는 잡초 씨앗의 결심이 대견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게 바라보며 사라집니다.  

"할아버지는 알고 있죠? 대답해줘요."

"그건 네가 죽어야만 돼."

잡초 씨앗과 친구들은 당황합니다.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잡초 씨앗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습니다.

바위 할아버지는 힘든 설명을 합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음. 새로운 나무가 태어나려면 한 나무의 생명이 죽어야 하는 것과 같은 거야. 모든 생명의 탄생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거야. 그보다 네가 척박한 환경에 생명을 태어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을까? 도박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잡초 씨앗은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바위 할아버지의 무거운 눈꺼풀이 더욱 무겁게 내려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합니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친구 모두 걱정하며 우리랑 계속 즐겁게 놀자며 말립니다.

‘아름답지도 않아서 어차피 쓸모없는 나인데. 죽은 들 무슨 상관이야.’

잡초 씨앗은 결심하고 친구들과 바위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친구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땅속으로 들어가면 흙들이 너의 소원을 들어줄 거야.”

바위 할아버지가 슬픈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잡초 씨앗은 친구들과 바위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잡초 씨앗이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흙들이 사방으로 잡초 씨앗을 압박해오고 잡초 씨앗은 힘겨워합니다. 미묘한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아!”

잡초 씨앗은 외마디 비명만 남기고 깊은 어둠으로 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슬픔은 점점 옅어져 갑니다. 친구들은 점점 잡초 씨앗을 잊어가고 재잘거리기 시작합니다. 바위 할아버지도 점점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해는 쓸모없는 일 했다는 듯 비아냥거립니다. 삼 일째입니다. 흙색이 문득문득 파랗게 변했으나 아직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흘째 지나고 파란색이 도드라지자 그제야 관심을 보입니다. 닷 셋째 되는 날 파란색이 절반이 되었고 무슨 일인지 호들갑을 떱니다. 엿새가 되자 예전의 밭처럼 파랗게 되었고 친구들은 기뻐합니다.

바위 할아버지는 직감합니다.

‘잡초 씨앗이 해냈구나.’

바위 할아버지는 파란 밭을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건 잡초 씨앗이 자랑스럽다는 뜻입니다.

“네가 해냈구나!”

바위 할아버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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